2010년, 팀 버튼 감독의 ‘이상한 나라’에 등장한 미아 바시코프스카는 앨리스에게 몸이 있다면 그의 단단한 광대, 고집스런 입술, 길고 마른 몸을 닮았을 것이란 확신을 관객들에게 심어 주었다. 이것은 어쩌면 일종의 깨달음일지 모른다. 앨리스라는 소녀의 매력은 귀여움이란 모호한 미덕보다는 고집 센, 엉뚱한,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함 같은 구체적인 단어에 있었다는 기분 좋은 자각말이다. 관객들만 느꼈을 리 없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후 미아 바시코프스카의 필모그래피를 보자. 팀 버튼부터 박찬욱까지, 눈 밝은 감독들이 그녀에게서 끄집어낸 ‘귀엽지 않은 매력’은 한정이 없다.

 

1.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Stoker l 2013 l 감독 박찬욱ㅣ출연 미아 바시코프스카, 매튜 구드, 니콜 키드만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는 <아가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와 함께 그의 필모그래피 중 ‘소녀 3부작’으로 분류되는 영화다. 미아 바시코프스카는 이 작품에서 남들과는 다른 본능을 타고난 소녀 ‘인디아’를 맡았다. 인디아는 조용한 소녀지만, 그 조용함은 먹잇감을 노릴 때 발소리를 감추는 맹수의 그것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주목하자. 자신을 억압하던 모두를 제압하고 홀로 선 인디아의 옅은 웃음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은 미아의 절제한 연기로 완성된 온도다.

<스토커> 예고편

 

2. 짐 자무쉬 감독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Only Lovers Left Alive l 2013 l 감독 짐 자무시ㅣ출연 틸다 스윈튼, 톰 히들스턴, 미아 바시코프스카

미국 독립영화의 거장 짐 자무쉬 감독은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로 취향이 사라진 시대에 대한 경멸과 그럼에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삶에 대한 애착을 아름다운 뱀파이어 커플을 통해 담아냈다. 틸다 스윈튼, 톰 히들스턴이라는 노련한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안온한 리듬에 미아 바시코프스카는 엇박자처럼 끼어들어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미아는 몇 백년을 살아도 여전히 철없고 충동적인 사고뭉치 ‘애바’로 분해 종잡을 수 없는 장난기로 반짝거린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예고편

ㅣ영화보기ㅣN스토어유튜브

 

3. 리처드 아요데 감독의 <더블: 달콤한 악몽>

The Double l 2013 l 감독 리처드 아요데ㅣ출연 제시 아이젠버그, 미아 바시코프스카

리처드 아요데 감독의 <더블: 달콤한 악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분신>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이다. 모노톤의 강렬한 콘트라스트가 인상적인 미쟝센, 김정미의 노래 ‘햇살’, 1960년대 일본 그룹사운드의 음악 등 언뜻 서로 상이한 요소들의 조합으로 화제를 불러모았다. 미아 바시코프스카는 상냥하지만 어딘가 열띤 표정으로 묘한 매력을 지닌 ‘한나’ 역을 맡아 소심하고 존재감 없는 ‘사이먼’(제시 아이젠버그)과 갑자기 나타난 그의 매력적인 분신으로부터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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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예르모 델 토로의 <크림슨 피크>

Crimson Peak l 2015 l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ㅣ출연 미아 바시코프스카, 톰 히들스턴, 제시카 차스테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동화 <푸른 수염>을 모티프로 고딕 호러를 만든다고 했을 때, 영화팬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이보다 더 적절할 순 없다’였다. 미아 바시코프스카 역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기괴하고도 치밀한 세계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순 없었다’. 미아는 유령을 보는 소설가 지망생 ‘이디스’로 분해 신경증에 시달리는 소녀의 예민함과 악랄한 존재를 향해 칼을 휘두르는 용감함을 동시에 선보였다. 비록 흥행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기예르모 델 토로의 악몽을 빠져나오는 아름다운 실마리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크림슨 피크>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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