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오래된 중식당 ‘놈 와 티 팔러(Nom Wah Tea Parlor)’는 1920년에 개업한 가게다. 사진은 뉴욕 차이나타운 특유의 쿨한 분위기로 늘 붐비는 가게의 정면. 차이나타운이 있는 곳이면 현지화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 나라의 중식당도 있게 마련. 한국에는 인천 차이나타운, 명동 중국대사관 길, 서대문구 연희동 일대의 오래된 중국식당 거리가 유명했지만, 점차 더 다양한 식당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여름이다. 서울 지하철은 에어컨 가동을 시작했다. 마음이 바쁜 사람들은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샌들을 꺼내 신는다. 지긋지긋하던 작년 여름의 더위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지만, 올해의 첫 아이스커피를 주문해 마시는 설렘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즈음 계절 메뉴를 준비하는 식당들이 드디어 ‘냉면 개시’ 깃발이나 패널을 내건다. 특히 중식당 앞을 지나치다 그 빨간 깃발을 만나면 가슴이 뛴다. 차갑고 투명한 국물에 겨자를 살짝 풀어 간을 하고, 해파리와 삶은 새우, 시원한 오이채가 고명으로 올라간 중식냉면. 마포 을밀대의 평양냉면으로 여름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명동 ‘향미’의 중식냉면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사람들도 그만큼이나 많다.

중식은 한국인의 외식문화에서 큰 지분을 차지한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으로 대변하는 인천 차이나타운 식의 한국적인 중식은 세대를 아우르며 전후 한국인들의 입학과 졸업을 책임졌고, 세계 어느 곳보다 발달한 한국의 배달 문화로 이제는 직장인들의 점심과 야식을 책임진다. 여기에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발달한 외식 문화는 중식당의 지형도를 바꿨다. 이제는 ‘중국집’이라고만 뭉뚱그려 부르기가 애매할 정도. 대만식 만둣집, 양꼬치 전문점, 홍콩식 딤섬 가게, 훠궈(중국식 샤부샤부)나 마라(중국 사천 지방의 초피, 고추 등을 재료로 한 매운 향신료) 요리 전문점까지 현지의 맛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중식당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이주민이 늘어나고, 한국민들의 해외 경험도 축적되면서 접할 수 있는 식문화도 무척 풍부해진 덕에, 이제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중식 요리를 더 가까이에서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이렇게 요리와 문화를 경험하는 가운데 중식 요리를 다룬 이미지들을 보면, 이전과 다르게 더욱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당장 식당으로 달려가라고 우리를 부추기거나, 저건 꼭 먹어봐야지 다짐하게 하거나, 그림의 떡처럼 아름답고 혹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몇 가지 장면들을 소개한다.

 

영화 <음식남녀> 오프닝, 세 딸을 위한 요리

영화 <음식남녀>의 첫 장면

대만 출신인 이안(李安, 1954~) 감독의 <음식남녀(飮食男女)>(1994) 오프닝은 음식을 다루는 영화를 소개할 때면 도대체 빼놓을 수가 없다. 수많은 사람이 <음식남녀>의 오프닝을 이야기하지만, 거기에 대해 누구도 불평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1994년 영화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은 그 생생함 때문이다. 오프닝은 요리사 아버지가 세 딸과의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산 생선을 젓가락 두 개로 제압하고, 펄펄 끓는 기름을 국자로 오리에 끼얹고, 국물을 조리고 기름에 튀기고 껍질을 벗기며 자르고 뒤섞고 찐다. 중식 요리의 화려한 기술과 만듦새, 그와 대조적으로 묵묵하게 수련하듯이 자기 일을 하는 직업인의 고요한 우아함이 그대로 담겼다. 따뜻한 가족적, 중국적 가치를 오밀조밀하게 감각적인 화면에 담아내는 감독 이안의 초기작인 데다 커리어우먼으로 도도한 매력을 뽐내는 오천련,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헤로인 양귀매의 모습도 볼 수 있어 흥미로운 영화. 아버지가 만드는 화려한 요리들뿐만 아니라, 딸들이 집에서 만드는 소박한 대만 가정식과 1990년대 대만의 도시 풍경은 영화를 보는 내내 쉴 틈을 주지 않고 눈길을 사로잡는다.

 

만화 <심부인의 요리사>, 괴롭힐수록 맛있어진다

<심부인의 요리사> 중 한 장면. 한 페이지에서 나타나는 ‘이삼’의 다양한 감정 변화가 백미

후카미 린코(深巳琳子, 미상~)가 2003년부터 내놓은 이 만화에서 매 에피소드는 이렇게 시작된다. “유가의 안주인 심 부인은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여인이었다.” 옛 중국, 강남 지역 부호인 유 씨의 부인인 ‘심봉선’은 젊고 아름답지만, 성격이 변덕스럽고 식탐이 강한 캐릭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승부욕은 음식 앞에서 더욱 불타오르고, 요리에는 재능이 넘치지만 어딘지 멍하고 순박한 요리사 ‘이삼’을 고용하고서는 더욱 음식(과 이삼)에 집착한다. 심 부인의 말에 따르면 이삼은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더 맛있는 걸 가져온다고. 심술궂은 심 부인, 그의 괴롭힘에 순순히 무릎 꿇는 요리사 이삼의 관계는 사도마조히즘에 가깝다. 그래서 각각의 짧은 에피소드는 요리를 매개로 두 사람의 기이한 관계를 묘사하는 내용으로 구성되는데, 땀을 뻘뻘 흘리거나 눈물을 흘리면서 이삼이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싶어지고 만다. 탄탄한 필치로 중국 복식과 식재료의 디테일을 살려내는 후카미 린코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작가가 혹시 심 부인처럼 중국 음식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합당하게 느껴질 정도. 완간되지 않은 <심부인의 요리사>의 심 부인과 이삼이라는 캐릭터는 그대로 1920년대 상하이로 옮겨져 <심부인의 요리점>(대원씨아이, 2016)이라는 후속작으로 돌아왔다. 역시 생생하고 구체적인 요리 과정의 묘사에, 매력적인 근대 중국의 풍경과 옷차림도 덤으로 구경할 수 있다. 물론 팬이라면 그저 이 커플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쁠 것이다.

 

<마셰코>의 추억, 왕옥방 여사

첫 에피소드인 ‘100인 오디션’에서 처음 등장한 왕옥방 여사. ‘타짜’라는 평, ‘3억 줘서 그냥 보내자’라는 극찬을 들었다. 왕 여사가 방에서 나간 후 남은 음식을 맛있게 먹는 심사위원들의 모습이 인상적

2013년 방영된 요리 서바이벌, <마스터 셰프 코리아>(이하 <마셰코>) 시즌2에서 TOP3 도전자였던 왕옥방 여사를 여전히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까? 젊은 요리사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했던 왕 여사는 이름처럼 호방한 요리를 선보이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는 화교 출신으로, 부친이 인천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 역시 화교 2세인 남편과 화목한 가정을 꾸렸지만 2008년 사별, 우울증을 앓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며느리가 몰래 신청했다는 <마셰코>에서 심사위원들이 극찬하던 순간은 왕 여사를 응원하던 팬들에게도 극적인 모멘트였다. 잘 웃지 않는, 그보다 애교가 없고 한국말이 어눌한 나이 든 여성을 방송에서 보고 반가워하던 시청자들이 그를 가장 응원했다. 비록 방송에서는 그의 과묵함을 무마하기라도 하듯 ‘왕 마마’라는 애칭을 붙이고야 말았지만, 통째로 튀겨 조리하는 등의 터프한 요리와 묵직하고 노련한 주부의 카리스마는 <마셰코> 전 시즌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캐릭터로 남았다. 또 그가 소개한 음식들은 시청자들이 대만 음식에 관심을 끌게 만들었다는 데에서도 의미가 깊었다. 2013년 12월 식당을 개업하고 프랜차이즈 ‘차이나팩토리’와 메뉴를 개발하는 등 잠시 화제가 되었지만 이후 소식은 잠잠하다. 이제 왕옥방 여사도 70대의 노령으로 활발한 활동은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이름도 생소하던 ‘천층병’을 떠올리면 역시 그가 생각난다.

 

만화가 조경규, 중국 음식 마스터

<오무라이스 잼잼> 181화 ‘아버지의 군만두’ 중 한 컷. 조경규 작가는 연필과 펜으로 종이에 선 작업을 해 스캔하여 디지털로 변환한 후, 모든 색칠을 컴퓨터로 작업한다고. 그런데 흔히 쓰는 태블릿 대신 마우스(!)로 일일이 색을 입힌다고 밝힌 적도 있다. 한편 그의 만화에서 식당이나 브랜드는 실제 이름 그대로 수정되지 않고 등장한다. 181화에 등장한 식당들만 해도 서울 연희동의 ‘오향만두’, ‘이품’과 부산 초량동(차이나타운)의 ‘장성향’까지 3곳이다

다음 웹툰 <오무라이스 잼잼>(이하 <오무잼>)의 작가 조경규(1974~). 음식의 국적도, 단맛 쓴맛도 가리지 않고 소개하는 <오무잼>에서도 여러 번 등장했지만, 그는 중국 음식을 좋아해 기회가 생기자 온 가족과 3년을 체류하기도 한 마니아다. 물론 전작인 <차이니즈 봉봉 클럽>에서도 그의 절절한 중식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만화에는 매력이 많다. 오밀조밀 귀여운 작화, 그래픽 디자인이 돋보이는 화면 구성과 통통 튀는 색감, 풍부한 정보량과 작가의 다양한 경험담은 이미 많은 팬을 확보하는 동력이 되었다. 중국 음식의 경우, 한국과 중국의 식당을 섭렵한 데다 음식을 향한 애정이 만화 구석구석에 빼곡하다. 당연히 그 애정이 가장 직접적으로 보이는 대목은 음식을 묘사한 그림에서다. 재미있게도 배가 가장 고픈 시간에 음식의 맛을 떠올리며 채색한다는 작가가 최근 펴낸 <오무라이스 잼잼 함께 완성하는 컬러링 북>은 컬러링북 유행의 자장에 있으면서, 그가 단행본을 펴낼 때면 함께 만들곤 하는 포스터들의 레트로한 그래픽 도감의 형식도 지닌다. 이러한 도감 형식은 작가가 2003년에 펴낸 국수 그림집 <800>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 <오무잼>도 에피소드가 곁들여진 개인적 도감으로 볼 수 있다. 내가 먹어본 것, 누군가와의 기억이 깃든 음식, 그런 음식이 너무 맛있고 좋아서 그것을 차곡차곡 정리해 소개한다는 것은 참 고마운 마음이기도 하다. 작중 등장하는 식당과 브랜드의 실명을 밝힌다는 원칙 또한 국적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중국 여행을 할 일이 생기면 작가의 책과 웹툰을 다시 한번 뒤적이게 된다. 중식 마니아라면 그의 만화는 기본 필독서다.

 

영화 <화양연화>, 국수 사러 가는 길

<화양연화> 속 국수 가게 장면

왕가위(王家衛, 1958~) 감독의 <화양연화(花樣年華)>(2000)에서 치파오 차림으로 1인분의 보온병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만옥의 뒷모습. 고독한 두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시각화한 미장센으로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실제로 홍콩 사람들은 죽이나 누들 수프로 간단히 식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여기에서는 국수 가게에 간 양조위가 작은 완탕을 깨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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