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 ‘길’(오웬 윌슨)은 자정이 되면 나타나는 클래식한 자동차를타고 19세기로 타임슬립해 피카소, 달리 같은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그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화 속에 만나고 싶은 과거의 예술가를 끊임없이 그려 넣고 있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21세기 사람들은 길처럼 자정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스크린을 통해 19세기 예술가들을 볼 수 있다. 영화 <내셔널 갤러리> 또한 런던까지 직접 가지 않아도 영국 최초의 국립 미술관 ‘내셔널갤러리(National Gallery)’를 생생하게 보고, 그곳에 그림을 남긴 회화 거장들의 삶을 떠올리게 만든다. 내셔널갤러리 속 회화 거장과 작품들을 ‘영화’라는 또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감상해보자.

 

<내셔널 갤러리>(2014)

National Galleryㅣ감독 프레더릭 와이즈먼

서양 미술사의 거장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 영국 런던에 있는 내셔널갤러리가 필름에 담겼다. 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은 이번에도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그대로 살려 내셔널갤러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대로 보여준다. 2,300여 점의 서양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인 만큼, 피카소, 홀바인, 카라바조,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회화 거장들의 명작이 수시로 카메라에 스친다. 그러나 영화에서 예술작품 투어를 기대했다면 살짝 실망할 수도 있다. 영화의 관심사는 미술품의 유지, 복원 문제 같은 미술관 내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이들은 곧 미술관의 이야기를 아는 것이 그 미술관이 품고 있는 회화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임을 깨달을 것이다. 결국 영화 <내셔널 갤러리>는 관객에게 미술관의 역사와 존재 이유, 그곳에 있는 위대한 걸작과 거장들의 삶에 한 발짝 다가가게 해주는 새로운 큐레이터와 다름 없다.

<내셔널 갤러리> 예고편

 

‘내셔널갤러리’가 품은 위대한 걸작과 거장들을 영화로 만나다

 

<카라밧지오>(1986)

Caravaggioㅣ감독 데릭 저먼ㅣ출연 던 아키볼드, 숀 빈, 잭 버킷
Boy bitten by a Lizard, 1594-5,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좌) / <카라바지오> 스틸컷(우)

영화 <내셔널 갤러리>에는 카라바조의 작품 ‘도마뱀에 물린 소년’과 그의 이야기가 잠깐 등장한다. 카라바조는 후대에 16세기 바로크 회화의 개척자로 불렸지만, 당시 반항적인 화풍으로 비난을 받았고 39세에 짧은 생을 마감한, 이면의 이야깃거리가 많은 인물이다. 데릭 저먼 감독은 이러한 인간 카라바조의 모습에 감독 자신의 삶을 반영하여 동성애와 저항정신이 가득한 인물을 그려냈다. 바로크 미술의 또 다른 거장인 루벤스, 렘브란트 같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뛰어난 예술가로서의 면모도 놓치지 않는다. 대담한 구성과 강렬한 명암대비가 특징인 카라바조의 작품은 재연한 영화 속에서도 고유한 빛을 발한다.

영화 <Caravaggion> 예고편

 

<야경>(2007)

Nightwatchingㅣ감독 피터 그리너웨이ㅣ출연 마틴 프리먼, 에밀리 홈즈
내셔널갤러리 스틸컷(위) / The Night Watch, 1642, Harmensz van Rijn Rembrandt(좌) / <야경> 스틸컷(우)

영화 <내셔널 갤러리>에는 렘브란트의 작품 ‘말을 탄 프레더릭 리헬의 초상’에 또 다른 그림이 숨겨져 있었다는 일화가 나온다. 이것 말고도 렘브란트의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야경’에 관한 것이다. ‘야경’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민병대가 주문한 초상화다. 렘브란트는 민병대원들이 기대한 화려하고 기세등등한 모습과 달리, 낮의 광경임이 어색할 정도로 어두운 색감이 도드라지는 명암 대조 기법으로 그려내어 민병대로부터 많은 불만을 들어야 했다. 이후 그의 명성은 크게 하락했고, 그림은 렘브란트 비운의 운명을 함께한 작품으로 남았다. 그림의 제목이 ‘야경’이 된 이유도 그림의 실제 배경이 낮이었음에도 어둡게 보인 점 때문에 잘못 붙여진 것이다. 영화 <야경>은 이 그림에 얽힌 렘브란트의 이야기를 그렸다.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은 <야경>의 차기작으로 다큐멘터리 <렘브란트의 심판>(2008)을 제작하기도 했다.

 

<피카소: 명작스캔들>(2012)

La banda Picassoㅣ감독 페르난도 콜로모ㅣ출연 이냐시오 마테오, 피에르 베네지트
Bowl of Fruit, Violin and Bottle, 1914, Pablo Picasso(좌) / <피카소: 명작스캔들> 스틸컷(우)

내셔널갤러리는 피카소의 작품 ‘과일 그릇, 바이올린 그리고 병’을 소장 중이지만, 현재 장기 복원 등의 문제로 전시하지 않는다. 영화 [내셔널 갤러리]만으로는 충족하기 어려운 이름, 입체파의 거장 피카소는 <피카소: 명작스캔들>에서 제대로 만날 수 있다. 그의 절친한 친구 기욤 아폴리네르와 예술적 동반자인 조르주 부르크와의 이야기까지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실제 피카소와 기욤 아폴리네르가 연루된 적 있는 ‘모나리자 도난사건’을 다루는 과정과 예술가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전한다.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스크린에 재현한 피카소의 작업실을 보는 것 또한 영화의 묘미. 한편 영화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은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피카소: 명작 스캔들> 예고편

ㅣ영화보기ㅣN스토어

 

<반 고흐: 위대한 유산>(2013)

The Van Gogh Legacyㅣ감독 핌 반 호브ㅣ출연 바리 아츠마, 예로엔 크라베
Sunflowers, 1888, Vincent van Gogh(좌) / <반 고흐: 위대한 유산> 스틸컷(우)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런던 내셔널갤러리에는 이 작품이 있다. 세기를 넘어선 19세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다.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해바라기’ 앞은 관람객들의 단골 포토존이다. 영화 <반 고흐: 위대한 유산>은 당대에는 처참하고 비극적인 삶을 살았지만 사후에야 인정받은, 그야말로 영화적 삶을 산 반 고흐의 처절한 드라마를 다뤘다. 눈에 익을 정도로 유명한 반 고흐의 작품들을 영화 속에서 헤아려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반 고흐: 위대한 유산> 예고편

ㅣ영화보기ㅣN스토어유튜브

 

<르누아르>(2012)

Renoirㅣ감독 질 부르도스ㅣ출연 미셀 부케, 크리스타 테렛
Misia Sert, 1904, Pierre-Auguste Renoir(좌) / <르누아르> 스틸컷(우)

내셔널갤러리에서는 감미로운 색채로 여인을 그려내는 프랑스 인상파 거장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영화 <르누아르>는 마치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색채와 빛이 따라다니는 그의 궤적을 훌륭하게 그렸다. 르누아르와 그의 아들 장 르누아르에게 치명적인 매력을 내뿜는 여인 데데와 얽힌 드라마 속에서, 르누아르의 예술적 삶을 잔잔하게 비춘다. 캔버스에 담기는 데데의 모습은 영상미와 함께 관객들을 더욱 황홀하게 만든다.

영화 <르누아르> 예고편

ㅣ영화보기ㅣN스토어유튜브

(원작 회화 이미지 출처- 내셔널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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