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 청년 시절의 시드니 베셋(1922)

120여 년 전인 1897년 5월 14일은 재즈의 기원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시드니 베셋(Sidney Bechet, 1897~1959)이 뉴올리언스의 크레올 가정에서 탄생한 날이다. 비록 재즈 역사에서 루이 암스트롱이나 듀크 엘링턴보다 명성이 한참 뒤처져 있지만, 재즈가 하나의 장르 음악으로 탄생하던 뉴올리언스에서 인기를 누리던 뮤지션이다. 브라스 밴드나 프렌치 쿼터 인기 밴드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였고,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재즈의 탄생에 기여한 주역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다소 생소하더라도, 그가 작곡한 ‘Petite Fleur(작은 꽃)’와 ‘Si tu vois ma mere(혹시 내 엄마를 만나거든)’ 두 곡은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Petite Fleur’는 베셋이 1952년 독일 여성과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바친 노래로, 세계적으로 히트하며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
시드니 베셋 작곡 ‘Si tu vois ma mere’는 우디 앨런의 영화 <Midnight in Paris>에 삽입되기도 했다

그가 태어나 자란 환경은 재즈 역사에서 설명하는 초기 모습과도 일치한다. 뉴올리언스의 중산층 크레올 가정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음악이 삶의 일부분이 되었고, 어릴 때부터 음악 신동이라 소문나 거리의 브라스 밴드나 유흥가의 인기 크레올 밴드에 고용되어 플라리넷이나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주하였다. 성인이 된 그는 고향을 벗어나 시카고와 뉴욕, 영국, 프랑스, 가장 멀리는 러시아까지 유랑밴드 생활을 계속한다. 그러나 참을성 없는 불같은 성격 탓에 자주 폭력 사건에 연루되었고, 이는 성공의 길로 들어서려는 그의 발목을 잡았다.

뉴올리언스의 암스트롱 공원에 있는 시드니 베셋 동상

1922년에는 런던에서 폭행 혐의로 미국으로 추방된 적이 있고, 그 후 1920년대 말에는 파리에서 총격 사건에 연루되어 11개월의 징역을 살고 다시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두 사건 모두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가 여성 혐오자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1932년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에 정착하면서 다시 연주 생활을 이어갔으나, 갈수록 공연 일거리가 줄어들고 생계가 어려워져 양복점을 열기도 하였다. 양복점의 뒷마당은 뉴올리언스 출신 재즈맨들이 모여 자유로운 연주를 즐기는 장소로 유명해졌다.

시드니 베셋의 최고 플라리넷 연주라고 평가되는 1939년 ‘Summer Time’. 비브라토와 즉흥성을 적절히 살린 감미로운 연주다
‘The Sheik of Arabi’(1941)는, 빅터(Victor)사에서 새로 개발한 더빙기술 테스트를 위해 혼자 클라리넷, 소프라노 색소폰, 테너 색소폰, 피아노, 베이스, 드럼의 6가지 악기를 연주하여 합성한 곡으로 유명하다

당시 미국의 레코드 회사들은 음반을 많이 팔기 위해 소속 연주자들의 클럽 연주 횟수를 규제하는 갑질을 행사했는데, 이에 따른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그는 1950년 쉰이 넘은 나이에 프랑스 파리로의 이주를 결행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음악 인생은 이때부터 빛나기 시작한다. 이주 첫해 파리 재즈축제(Paris Jazz Fair)에서의 솔로 연주는 대단한 인기를 몰고 와서 새로운 레이블과의 계약으로 이어지고 히트작을 연이어 작곡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Petite Fleur’, ‘Si tu vois ma mere’ 같은 곡들은 파리에서의 안정된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명곡들이다. 그의 음악은 프랑스 특유의 로맨스 영화나 우디 앨런의 영화에 자주 삽입되면서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5년 전 우디 앨런이 한 카페에서 시드니 베셋의 명곡을 연주하고 있다. “우디는 시드니만큼 클라리넷을 잘 불지는 못하지만, 우디도 전설임에는 틀림없다”라고 업로더는 말하고 있다

시드니 베셋이란 이름은 얼마 전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라라랜드>의 한 장면에서도 언급된다. 라이언이 엠마에게 재즈가 편한(Relaxing) 음악은 아니라고 하면서 “시드니 베셋은 그가 음을 잘못 연주했다고 비난한 사람을 총으로 쐈어. 그건 편한 것과는 거리가 있어.(Sidney Bechet shot somebody because they told him he’d played a wrong note, that’s hardly relaxing.)” 하는 장면이 있다. 그 총격 사건이 1920년대 말 시드니 베셋을 프랑스 감옥에서 1년간 살게 했던 바로 그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