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책의 긴밀한 관계에 관해 이야기를 해볼까요. 소설이 원작인 영화? 영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책? 에이, 그런 당연한 이야기 말고요. 영화와 책이, 서로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이야기들에 대해서 말이에요. 바로 영화를 사랑한 사람이 쓴 책과 책을 사랑한 사람이 등장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사랑은 한결같고 깊지만, 각각 다른 형태를 띠고 있죠. 사람 사이의 사랑도 어느 하나 같은 모양을 한 것이 없는데, 영화와 책에 대한 사랑도 당연히 그럴 테고요.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김혜리 | 어크로스 | 2017

그 첫 번째는 우아한 사랑입니다. 김혜리는 영화에 대한 사랑을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계절에 따라 분류해둔 마흔 편의 영화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가 바탕에 깔아둔 섬세한 결에 계속 경탄하게 됩니다. 보란 듯 드러나진 않지만 우아함은 단단한 골격 위에서만 만들어지니까요. 그리고 그건 제 문장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우아함인지라, 그저 읽어보시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 마음산책 | 2014

두 번째는 낭만적인 사랑입니다. 문학 평론을 할 때의 신형철은, 저만의 느낌이겠습니다만, 달뜬 첫사랑에 푹 빠진 순수한 소년 같습니다. 물론 영민하고 충직한 성정을 지닌 소년일 테고요. 그는 언제나 언급하는 작품들에 대한 사랑을 정확하게 표현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표현의 속내는 대상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었던지라, 정확함보다 낭만이 먼저 눈에 들어오곤 했죠. 영화에 대한 평들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그는 정확 하고자 했고, 그래서 정확했으나 그 바탕은 여전히 낭만입니다. 그가 언젠가 썼듯, 그에게 비평이란 아름다운 것에 대해 아름답게 말하는 것이니까요. 사랑하지 않고선 아름다울 수 없으니, 이게 낭만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가능한 꿈의 공간들>

이영수(듀나) | 씨네21북스 | 2015

사실 앞 책의 수식어가 좀 더 어울릴 사람은 세 번째 사랑의 주인공 듀나가 아닐까 합니다. SF 작가이자 평론가이기도 한 그는 정확하게 사랑하는 법을 아는 사람, 대상과 자신(혹은 주변)과의 중재를 영리하게 해내는 사람이거든요. 지나치게 사랑해서 단점을 지나치지 않고, 그 깊이를 읽어내지 못할 만큼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는 것도 아닌, 적당하고 정확한 사랑의 구현자죠. 그런 그가 2000년대 중반부터 십여 년 동안, 영화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쓴 에세이들을 모아둔 이 책은, 그래서 솔직하고 논리적이며 간결합니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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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는 결핍에서 비롯된 사랑입니다. 열다섯 마이클과 서른여섯 한나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필연처럼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는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사랑을 나누기 전, 마이클이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 글을 읽지 못하는 한나의 결핍된 부분을 마이클이 채워주고, 그런 마이클에게는 한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결핍이 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책이 등장하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서 그치지는 않습니다. 개인과 국가, 시대와 책임 등이 얽혀 결핍이 사랑이 되었다가 죄가 되기도 하는 과정을 훌륭하게 보여줍니다.

 

<루비 스팍스>

책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그것이 아니라면 또 무어라 불러야 할지 애매한 다섯 번째의 사랑입니다. 자신이 쓴 소설 속 인물에 대한 사랑이 흘러넘쳐, 현실로 소환해낸 작가의 이야기거든요. 완벽한 이상형 루비를 만나게 된 작가 켈빈은 더욱 완벽한 사랑을 위해 루비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고, 그때부터 많은 것들이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음, 책에서 시작되었지만 사람 사이의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랑, 이렇게 정의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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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레스모어의 환상적인 책 여행>

마지막은 긴 여정을 함께 하는 사랑입니다. 회오리바람에 실려 낯선 장소에 떨어진 레스모어 씨. 책으로 가득한 집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도 하고, 과거를 치료하기도 하며 자신만의 책을 써내려갑니다. 15분 길이의 짧은 애니메이션이지만, 그 속에 책과 이야기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가득 담아두었죠. 영화가 끝나고 엔딩자막이 올라가면, 아마 많은 분이 자기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될 겁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영화가 된 책들과 책이 된 영화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책을 읽고 나면 그 책에 나온 영화가 보고 싶어지고,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영화에 나온 책을 읽고 싶어진다는 점이겠죠. 길게 이어질 연휴에 책과 영화의 무한 루프에 빠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Writer

심리학을 공부했으나 사람 마음 모르고, 영상 디자인을 공부했으나 제작보다 소비량이 월등히 많다. 전공과 취미가 뒤섞여 특기가 된 인생을 살고 있다. 글을 쓰고 번역을 하며, 그림을 그리거나 가끔 영상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