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진가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経惟, 1940.5.25~)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수도 없이 많다. 외설스러운 꽃, 밧줄에 묶인 여자 사진을 보면 그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고, 사별한 부인의 이름은 요코, 아끼던 고양이는 치로, 사랑했던 연인의 이름이 카오리인지도 안다. 동그란 선글라스, 미치광이 박사 같은 삐친 머리와 수염, 도마뱀을 봐도 어쩐지 생각난다. 아라키는 75세인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진가이자 많은 사진가의 미래 지도다. 아라키의 영향력이 미친 사진가들에게 ‘아라키 키즈’라는 이름을 붙여봤다.

아라키가 찍은 꽃
아라키가 찍은 고양이
아라키가 찍은 카오리

 

노무라 사키코(野村佐紀子)

<아라키멘터리>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아라키 옆에서 필름만 갈아대는 조력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걸 보고 아라키의 조수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하던 참에 2004년 관훈동의 한 갤러리에서 어떤 사진전을 보았다. 많이 알려진 이름은 아니었는데, ‘아라키의 애제자’라는 부연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흑백 필름으로 남성의 누드 사진을 찍는 노무라 사키코는 10년 넘게 아라키 곁에서 일을 도운 조수이자 제자다. 전문 모델이 아닌 주변의 평범한 남성을 그들의 침대 위나 방구석, 호텔에서 찍었다. 꾸며진 포즈나 배경을 돕는 도구 없이 피사체의 시선과 긴장감이 도드라진다. 아라키의 많은 사진이 화려하고 강렬하지만, 초기 흑백 사진이나 부인 요코를 기록한 사진을 보면 묘한 긴장감과 고요함이 읽히는데, 노무라 사키코의 사진에서도 비슷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반대로 노무라 사키코는 점점 피사체를 동물이나 여성, 풍경으로 넓혀왔고, 컬러 사진을 찍고 있다.

노무라 사키코가 찍은 남자들

 

히로믹스(HIROMIX)

아라키는 여고생 토시카와 히로미를 유명 사진가 히로믹스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히로믹스는 아라키를 동경했고, 고등학생 때 그의 사진 피사체로 섰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할 즈음 알고 지내던 아라키의 어시스턴트 혼마 타카시(역시 유명한 사진가가 되었다)의 부추김으로 당시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진상인 ‘캐논 신세기 사진전’에 36페이지짜리 사진집을 보내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아라키는 사진전의 심사위원이었고, 지난 인연 때문이 아니라 새롭고 대담한 히로믹스를 최고 수상자로 선택했다. 히로믹스가 등장하자 일본 사진계는 말 그대로 뒤집혔다. 역대 최연소 수상자였고, 여성이었으며, 자동카메라로 자신의 커다란 얼굴과 가랑이 사이에 앉은 고양이, 한껏 차려입은 친구들의 모습처럼 지극히 사적인 것들을 찍었기 때문이다. 하찮아 보이지만 아름다운 것에 대한 지지가 생겨나고 이른바 걸리 포토의 시대가 히로믹스로 인해 열렸다. 수동 카메라를 사용하면 실패 확률이 높을 것 같아 자동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는 히로믹스는 담대한 마음으로 수필, 음악, 영화계에서 활동했고, 최근에는 별다른 소식이 없는 상태다.

히로믹스의 사진들

 

치카시 카사이(笠井爾示)

‘독일에서 버려진 아이’. 아라키는 술자리에 치카시 카사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어릴 적 독일에 유학을 다녀온 치카시 카사이는 다마미술대학교 디자인과에 다녔다. 전공은 버리고 교내 어딘가에 붙어있던 암실에만 정을 두는 나날을 보내다 헌책방에서 아라키의 사진집을 보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 수업에서 다루던 사진가는 만 레이나 신디 셔먼이었다. 치카시 카사이는 아라키의 사진을 처음 본 순간을 어느 매거진에 이렇게 표현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뭐지!” 치카시 카사이는 아라키에게 정식으로 사진을 배운 적은 없지만 한 달에 몇 번은 꼬박 같이 술을 마신다. 그리고 명확하게 자신의 사진은 아라키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밝힌다. 이런 선언이 아니더라도 그의 사진은 명백하게 아라키와 닮아있다. 도쿄의 추잡함, 여성의 나체, 밧줄과 멋없는 셀프사진까지. 마음의 스승님보다 젊은 세대인 그는 인스타그램(@chikashikasai)에 정력적으로 사진을 올린다.

치카시 사카이의 사진들
치카시 사카이가 찍은 아라키

 

치카시 스즈키(鈴木親)

치카시 스즈키는 아라키 키즈로 명한 사진가 중 그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영국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의 섹슈얼리티에 영향을 준 사진가는?”이라는 물음에 “당신네에게 뉴튼(헬무트 뉴튼)이 있다면, 우리에겐 아라키가 있다!”고 대답한 연유로 이 목록에 넣었다. 경제학도였던 치카시 스즈키는 패션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에 흥미를 느끼고 프랑스로 떠났다. 운 좋게 소개받은 <퍼플> 매거진 사람들에게 취미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고, 지금까지 고정적으로 <퍼플>의 사진을 찍는다. 그의 사진은 닦은 듯 반듯하지만 피사체와 완전히 가까운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아라키의 사진과 공통점을 갖는다. 키쿠치 린코나 안도 사쿠라 같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배우를 주로 담는데, 평소 모두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아름답게 찍는 것보다 예쁜지 안 예쁜지 알 수 없는 사람을 찍으면 피사체와 사진을 다시 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의 사진 중앙에는 대부분 검은 기둥처럼 보이는 선이 들어가 있는데 결코 사고가 아니다. 단지 필름 값이 덜 든다는 이유로 사진 작업 초기부터 쓰기 시작한 카메라 교세라 사무라이의 하프 프레임은 이제 그의 사진임을 알리는 표식이 되었다.

치카시 스즈키가 찍은 안도 사쿠라(상), 키쿠치 린코(하)

치카시 스즈키가 찍은 서울

 

메인 이미지 출처 - 아라키 홈페이지
본문 이미지 히로믹스 출처 - 사진집 <히로믹스>, 치카시 카사이 출처 - 본인 인스타그램, 치카시 스즈키 출처 - 본인 트위터

 

아라키 노부요시 홈페이지

 

Writer

매거진 <DAZED & CONFUSED>, <NYLON> 피처 에디터를 거쳐 에어서울 항공 기내지 <YOUR SEOUL>을 만들고 있다. 이상한 만화, 영화, 음악을 좋아하고 가끔 사진을 찍는다. 윗옷을 벗은 여성들을 찍은 음반 겸 사진집 <75A>에 사진가로 참여했다.
박의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