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이주일의 2002년 금연 광고.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라는 당부와 경고의 메시지를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이주일 씨가 직접 시청자들을 향해 전달했다

2016년 12월, 보건복지부는 한국에 판매되는 담뱃갑의 경고 그림 부착을 전면 도입하였고, 지금은 2016년 12월 이후 생산된 모든 담배의 겉면에 꽤 불편한 경고성 사진이 부착된 채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경고 그림의 부착이 시행 초기부터 담배 겉면의 50%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는 개정 법안의 내용에 대해 담배 업계와 흡연자들 사이에서 많은 반발이 일었고, 시행까지의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2015년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에 반대하던 모 의원이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경고 그림 안을 페이스북에 게재하여 ‘과도한 규제’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그해 6월에는 한 흡연자 커뮤니티에서 그림 안 중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그림’을 묻는 설문조사를 하기도 했다. 담배 생산, 판매 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담배판매인회 중앙회도 설문조사를 하여 국민 대다수가 혐오감과 불쾌감을 느낀다는 내용의 결과를 발표했다. 경고 그림과 바뀐 경고 문구의 내용을 문제시하는 시선들도 있었다. 조기 사망을 표현하는 그림이 편부모 가정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피부 노화를 표현하는 그림을 여성 모델로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등 수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2016년 12월 22일, 담뱃갑 경고 그림 의무 부착 시행을 앞두고 보건복지부에서는 2002년 이주일 씨의 광고 이후 14년 만에 환자 본인이 직접 등장하는 증언형 금연 광고를 공개했다. “사람들은 금연 광고가 무섭다고 하지만 현실은 훨씬 더 무섭습니다”라는 나레이션이 포함되었다

이 그림들은 과연 효과가 있을까? 다시 2016년으로 돌아가 보자. 그해 3월 31일 공개된 경고그림제정위원회의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경고 그림의 효과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과학적으로 충분하게 측정한 데이터는 없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강함”(문창진 위원장), “흡연율 감소 효과 연구 어려움”(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경고 그림만으로 흡연율이 떨어졌다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말하기 어려움”(백혜진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이라는 다소 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담배회사가 디자인과 광고를 통해 포장하는 흡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저하되고,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과 위험성을 이해시켜 예방할 것에 대한 기대에는 모두 입을 모았다. 그러니 위원회에 따르면 흡연의 “예방”이 경고 그림 부착의 가장 큰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문구보다 이미지를 채택한 것은, 보다 즉각적으로 그 위험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여기서 어떤 행위의 위험성을 상기시킨다는 목적을 위해 특정한 이미지가 동원된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 사회가 경각심을 느끼게 한다는 목적을 갖고 이토록 구체적인 혐오의 이미지를 법적으로 동원한 사례를 이 외에도 찾을 수 있을까? 이 ‘사회적 혐오’의 모습은 어떤 형식을 취하고 있을까? 이 사진들은 연출일까, 실제일까? 실제 사진이라면, 피촬영자의 동의를 얻었을까? 이 강렬한 이미지들은 우리에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들에 대한 궁금증을 수없이 불러일으킨다.

세계 각국의 담뱃갑에 부착된 경고 이미지와 문구들. 한국은 2003년 세계보건기구의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맺었지만, 내부의 반대로 경고 그림을 넣기까지는 13년이 걸렸다. 미국도 협약국이지만 자국 담배회사들의 반발로 아직 경고 그림을 도입하지 못했다. ©BBC

세계보건기구 담배규제기본협약은 회원국의 자국 내 담뱃갑 경고 그림 표시를 권장하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 규제할 수는 없다. 각 회원국은 자국의 문화와 질병의 경향성에 따라 현실을 반영한다. 한국에서는 10개의 경고 주제 가운데, 담배가 위험성을 높인다고 알려진 질병 중 특히 한국에서 발병률이 높은 암을 3종 채택했다. 폐암, 후두암, 구강암이 그것이다. 나머지 질환은 심장질환, 뇌졸중이다. 간접흡연과 임신 중 흡연은 흡연자의 주변인에게 미치는 위험성을 드러낸다. 조기 사망 경고는 아직 경고 그림을 도입하지 않은 국가들이 가장 간결하고 강력하게 흡연 심각성을 경고하는 주요 소재다. 여기에 성 기능 장애와 피부 노화까지, 총 10개의 주제가 아마도 연구 결과를 통해 한국의 흡연자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경험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경험으로 밝혀진 것 같다. 이 중에는 질환인 것도 있지만, 질환이 아닌 것도 있다. 어쨌거나 이들 모두 시각적인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 혹은 증상들은 어떻게 경고로 활용될 수 있을까.

2016년 12월 23일부터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 시행에 따라 표기된 경고 그림 10종. 경고 그림은 병변 묘사 5종, 비 병변 묘사 5종으로 나뉜다. 정부는 이후 경고 그림을 가리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을 제정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연합뉴스

먼저 폐암과 심장질환의 경우, 개복 수술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후두암과 구강암은 환자의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 표면의 수술 자국이나 종양을 보여준다. 이 사진들은 각각 대한흉부외과학회(폐암, 심장질환), 국립암센터(후두암), 대한치과의사협회(후두암)에서 제공받은 실제 사진이다. 그 외 6개의 이미지는 모두 연출된 사진이다. 뇌졸중은 병상에 누워 고통 때문인지 마비 때문인지 오른팔이 경직된 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몸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마땅할 장기가 피부 속으로부터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수술 장면, 괴로움이나 통증의 연극적 재현, 수술 자국과 종양으로 부어올라 신체 일부가 변형된 실제 사람의 사진은 분명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렇게 사용된 사진들이 묘사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도, 죽음이라는 두려움으로 말미암은 혐오가 극대화된 장면이다. 그런 저차원적인 이미지에는 인간의 존엄이나 ‘인간성’이라 불릴만한 것이 불필요하므로 삭제되었다.

경고 그림 10종이 규정에 부합하게 부착된 모습. 이미지와 문구를 포함해 담뱃갑 앞, 뒷면의 50%를 차지하도록 규정되었다. ©보건복지부

하지만 질병적 증상 이외의 묘사에서는 그와 반대로 인간적인 요소들이 강조되어, 문화적이고 인식 차원에서의 경계를 장려하는 장면들이 삽입되었다. 간접흡연을 묘사하는 이미지에서 어린이의 눈이 붉게 충혈된 것은 그 아래의 문구, 유아 돌연사증후군이나 천식과는 관계가 없다. 주의력결핍행동장애는 어린이나 유아의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증상이 아님에도 한국의 사정에 맞춰 문구에 포함되었다. 임신 중 흡연을 경고하는 이미지에서는 만삭의 임산부가 불 붙인 궐련을 든 충격적인 모습과 태아의 사진을 결합했는데, 이는 문구에 묘사된 태아의 신체적 증상보다는 사회적 터부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성 기능 장애의 유형으로는 남성의 발기부전을, 신체 외형의 증상으로는 여성의 피부 노화를 택했다. 둘 다 담배로 인한 증상이지만, 성 기능 장애의 모델을 여성으로, 피부 노화의 모델을 남성으로 바꾼다면? 아마 효과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두 증상은 매우 성별적으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임신과 출산 이외에 생식기관에서 생겨나는 문제(성 기능 장애 등)를 호소하기 어렵고, 남성의 노화보다는 여성의 노화가 증상보다 질병에 가까운 것으로 치부된다. 조기 사망의 경고에서는 부모와 자녀 1인으로 구성된 가족사진에서 아마도 가장으로 짐작되는 남성의 사진이 훼손되었다. 딸과 부인은 그가 살아남아 지켜야 하는 대상이고, 부모 중 한 사람이 사라지면서 이 ‘정상 가족’은 ‘비정상’이 된다. 상기에서 알 수 있듯, 이들 사진 이미지들은 무척 이데올로기적이다.

‘호주에서의 전쟁’. 호주에서는 자국 내 담배 회사 및 관련 단체들의 반발로 경고 문구 기재, 확대, 경고 그림 삽입, 삽입된 그림의 비율 확대에 이르는 과정을 매우 점진적으로 거쳤다. 사진의 오른쪽 하단 박스 속은 1981년에서 2012년까지 담뱃값이 3배가 되었다는 내용. ©BBC

사실상 이들 이미지의 목적이 ‘예방’이라면, 그것은 경고 그림들이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혐오’가 일으키는 담배 ‘혐오’를 통한 것이다. 그런데 이 혐오의 정도는 어느 정도가 적절한 것일까. 혐오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다시 2016년으로 돌아가서, 그해 4월 담배제조사들의 모임인 한국담배협회(KT&G, 한국필립모리스, JTI코리아, BAT코리아 등 주요 업체들 포함)가 반발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국민건강증진법의 경고 그림 삽입 조항에 규정된 “지나치게 혐오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부분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당시 경고 그림 시안이 “애초 보건복지부에서 개발한 한국형 경고 그림보다 훨씬 더 혐오스러운 수준으로 선정”되었다고 주장했지만, 경고 그림은 2016년 12월 시행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경고그림제정위원회가 밝힌 것처럼, 이렇게 혐오스러운 경고 그림만으로 흡연율이 떨어졌다는 유의미한 데이터는 찾기 힘들다. 심리학자들은 또 금연 공익 광고처럼 차차 흡연자들이 경고 그림에 둔감해지거나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면서 흡연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그들은 경고 그림보다는 담배 가격을 올리는 게 더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경고 그림에 담긴 혐오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는 그 그림을 선정하고 만들어내는 누군가의 의지에 달렸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은 꽤 위태롭다. 합법적으로 혐오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그 위험에 대한 논의는 빈곤해 보이기 때문이다.

2017년 4월 24일 영국 타블로이드지 데일리메일은 잉글랜드의 조디 찰스가 자신의 집에 놀러 온 친구의 담뱃갑에서 재작년에 사망한 자기 아버지의 사진이 경고 그림으로 삽입된 것을 발견해 EU에 이의를 제기한 사건을 보도했다. 조디 찰스의 아버지는 혈액암으로 숨졌다고. 경고 그림 위의 문구는 “흡연은 뇌졸중과 장애를 유발합니다”라는 내용이다. 조디 찰스의 주장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이미지는 그것이 놓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으며 그 맥락은 결코 ‘자연적’인 것도 아니다. ©Daily Mail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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