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의 담벼락을 대상으로 정치적, 사회적 비판을 담은 그림을 그려온 그래피티 아티스트이자,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2010)를 연출한 영화감독. 수많은 수집가가 앞다투어 작품을 구입하고, 여러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존경하는 인물로 꼽지만, 정작 얼굴과 본명 모두 베일에 싸인 신비의 인물 뱅크시(Banksy). 영국 런던에 위치한 프랑스 대사관 벽에 경찰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벽화를 그리고, 디즈니랜드를 겨냥한 디즈멀랜드(Dismaland)를 만드는 등 사회의 부조리를 폭넓게 꼬집어온 그가,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지역에 호텔을 만들었다.
“우리가 힘센 쪽과 약한 쪽의 갈등에서 발을 뺀다면, 우리는 중립적인 게 아니라 힘센 쪽의 편을 드는 것이다”라는 뱅크시의 말처럼, 호텔 구석구석 비치한 그의 작품은 위트와 풍자를 넘어 불합리한 사회를 향한 거침없는 저항으로 가득하다.
벽에 가로막힌 호텔(The Walled Off Hotel)
요르단강 서안지구 중심부 도시 베들레헴에 위치한 호텔은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에 설치한 약 9m 높이의 ‘웨스트 뱅크’ 분리 장벽과 거의 맞닿아 있다. 앞서 수차례에 걸쳐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의 폐허 지역에 작품을 새기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문제를 곱씹어온 뱅크시가, 호텔의 위치를 웨스트 뱅크 분리 벽으로 정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개인 날이라 하더라도 호텔 객실에 햇볕이 드는 시간은 하루 중 고작 25분밖에 되지 않아 뱅크시 스스로도 '세계에서 가장 전망이 나쁜 호텔'이라 이름 짓기도 했다.
호텔의 세부적 인테리어와 군데군데데 설치한 작품들은 뱅크시의 디스토피아적 기조를 잘 나타낸다. 뱅크시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그림이자, 폭력의 상징물인 화염병을 꽃다발로 바꿔 그린 작품 <꽃을 투척하는 사람>을 화병 장식으로 대체해 표현한 위트가 돋보인다. 또한, 객실 벽에 그려 넣은 이스라엘 군인과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베개 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현재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를 꼬집는 대표적 작품이다.
객실은 각기 뱅크시의 스텐실 아트를 감상할 수 있는 ‘아티스트룸’, 초호화 스위트룸, 군용 막사를 연상시키는 ‘버짓(budget)룸’ 같은 다양한 테마로 나누어져 있다. 가장 저렴한 버짓룸의 하룻밤 투숙 가격은 30달러(약 3만 4천 원)이며, 무선 인터넷, 냉장고, 에어컨 등 기본적인 숙박시설을 제공한다. 다만 호텔 내부에 유수의 예술 작품이 보존되어 있어, 투숙 시 1,000달러의 보증금을 지불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객실을 제외한 부대시설 또한 다양하게 갖췄다. ‘피아노 바’는 따뜻한 스콘과 차를 즐길 수 있는 카페로 매일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 또한 팔레스타인 아티스트들의 작품과 엽서를 판매하는 아트 갤러리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를 기록해 둔 박물관은 투숙객을 비롯해 호텔에 머물지 않는 모든 관광객에게 열려 있다. 팔레스타인에 관한 서적을 비치한 서점도 있는데, 소정의 임대료를 지불하면 투숙 기간 동안 책을 무상으로 빌려볼 수 있다.
호텔은 오픈일인 2017년 3월 11일부터 최소 1년 동안 관광객들에게 개방할 예정이다. 더불어 뱅크시는 자신의 사이트에 관광객에게 전하는 인사말을 따로 적어 두기도 했다.
“신이 인간 세상에 올 때마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유는(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건축과 풍경이 아름답고, 음식이 뛰어나며 지역적 분쟁이 특히나 마음에 걸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의미 있는 장소에서 투숙한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경험이 될 것입니다.”
주소 182 Caritas Street, Bethlehem, Palestine
예약문의 http://banksy.co.uk/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