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정치인이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역사에 기록된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이다. 대처 수상은 복지 시스템과 노동조합이 대영제국의 영광을 재건하는 데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 규정하고,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주요 국가 기간산업 중 하나였던 탄광을 폐업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많은 노동자가 실업자로 전락했고, 정부 정책에 맞선 석탄 노조의 파업이 시작된다.
석탄 노조는 영국에서도 가장 강력한 노조였지만, 대처와 보수당의 강성 대응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된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노동자와 가족들은 밖으로는 정부의 압박에, 안으로는 내부 분열과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영화는 그런 힘겨운 시간 속에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았던 사람과 사건들을 다뤘다. 참고로 파업은 실패했고 영국 사회는 140개 탄광 폐쇄와 250만 명의 실직자라는 결말을 맞게 된다.
<런던 프라이드>
Pride ㅣ 2014 ㅣ 감독 매튜 워처스 ㅣ 출연 빌 나이, 이멜다 스턴톤, 벤 슈네처
대처 정부가 석탄 노조와 전면전을 선포한 1984년, 게이, 레즈비언 사회운동가들과 파업 투쟁에 나선 작은 탄광 마을 주민들의 우정과 연대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실화에 바탕을 뒀다. 이야기는 열렬한 사회 활동가 ‘마크’가 정부의 구조조정에 반하여 ‘광부들을 지지하는 레즈비언과 게이’ 모임을 열어 투쟁 기금을 모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노조는 기껏 모은 기금을 거부하고, 마크와 친구들은 좌절하지 않고 직접 광부들을 만나 연대를 쌓기로 결심한다. 아직 LGBT에 대한 편견에 차 있던 1984년 영국에서 겁내거나 기죽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고 마음을 여는 용감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 특히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투쟁하는 여성들이 노래 ‘빵과 장미’를 합창하는 장면, 시골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이 런던의 게이 클럽에 몰려가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게 될 것이다.
<브래스드 오프>
Brassed off ㅣ 1996 ㅣ 감독 마크 허만 ㅣ 출연 피트 포스틀스웨이트, 타라 피츠제랄드, 이완 맥그리거
영국 북부 요크셔의 작은 탄광촌도 구조조정을 피해갈 수 없었다. 탄광이 폐광 위기에 처하고, 탄광 경영자는 광부들의 찬반 투표를 통해 폐광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열성적인 반대파 중에는 광부들로 결성된 100년 전통의 브라스밴드 지휘자 ‘대니’도 있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도 아랑곳없이 목전에 다가온 전국대회를 준비하려 단원들 독려에 나서지만, 싱숭생숭한 분위기에 대회 준비는커녕 미리 탈퇴부터 하는 회원들이 속출하는 지경. 이때, 이 마을 출신이자 광부의 딸인 ‘글로리아’가 마을을 찾아오고, 그녀의 등장으로 마을과 밴드는 활력을 되찾는 듯하다. 탄광 구조조정 속에서 분열되어가는 동료들의 사연과, 그럼에도 서로를 보듬는 밴드의 아름다운 음악이 어우러져 씁쓸함과 훈훈함을 동시에 자아내는 작품이다. 원제 <Brassed Off>는 ‘뚜껑 열린’이란 뜻의 속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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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ㅣ 2000 ㅣ 감독 스티븐 달드리 ㅣ 제이미 벨, 줄리 월터스, 게리 루이스
11살 소년 빌리는 치매를 앓는 할머니, 광부로 평생을 살아온 무뚝뚝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뒤를 잇기라도 하듯 광부로 일하고 있는 형 토니와 함께 살고 있다. 두 가족이 모두 탄광 파업에 동참하고 있어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도 아버지는 빌리를 권투 레슨에 등록시킨다. ‘남자다움’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는데, 정작 빌리는 발레에 관심이 있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소년은 몇 가지 난관을 겪게 된다. 그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당시 영국의 사회적 상황이다. 빌리가 런던의 발레 학교에 오디션을 보러 가는 날, 형 토니가 노조 활동으로 체포된다. 노조에 헌신적이었던 아버지는 빌리의 학비를 대기 위해 파업을 포기하고 탄광으로 복귀하고 만다. 옛 동료들에게 ‘배신자’라고 손가락질당하며. 정부의 집요한 대응으로 생활고와 신념 사이에서 갈등해야 했던 당시 광부들의 상황이 소년의 시선으로 그려져 더욱 찡한 울림을 주는 수작.
(메인이미지=<런던 프라이드>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