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Neo, 키아누 리브스)는 현실과 가상 사이의 혼돈에서 방황한다.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안 되는 몽롱한 상태에서 귓속을 맴도는 반복적인 다운템포의 일렉트로닉 음악이 바로 트립합(Trip-Hop)이다.(*Trip은 환각 상태를 뜻하는 영국 은어)
트립합은 1990년대 영국 남서 지역의 브리스톨 언더씬에서 생겨나 ‘브리스톨 사운드’라 부르기도 한다. 이 지역은 중세 시대엔 신대륙 탐험의 전초기지로 유명하더니, 이제는 다양한 이민자 문화, 그라피티, 트랜디한 트립합 클럽으로 상징할 수 있는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브리스톨 지역의 언더씬에서 트립합 탄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세 팀과 그들의 대표곡을 알아본다.
1.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
이 장르의 선구자이자 가장 대표적인 밴드가 매시브 어택이다. 1988년 브리스톨에서 결성해 1991년 발표한 앨범 <Blue Line>이 선풍을 일으키면서 트립합을 전 세계에 알렸다. 앨범에 수록한 곡 중 가장 유명한 ‘Unfinished Sympathy’를 라이브로 들어보자. 이 곡의 제목은 슈베르트의 ‘Unfinished Symphony(미완성 교향곡)’를 살짝 바꾼 것이며, 유럽 전역에서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는 인기곡이다.
그들의 음악을 샘플링한 리믹스 버전도 다양하다. 세계 100대 DJ로 선정된 브라질 출신 기 보라토(Gui Boratto)가 그들의 2001년 발표작 ‘Paradise Circus’를 멋지게 리믹스했다.
세 번째 앨범인 <Mezzanine>에 수록된 ‘Teardrop’도 빼놓을 수 없는 화제곡이다. 특히 MTV 상을 수상한 뮤직비디오는 자궁 속 태아의 노래를 묘사해 경탄을 자아냈고, 백그라운드에 깔리는 퍼커션은 심장박동 소리를 연상케 한다.
2. 포티스헤드(Portishead)
트립합은 전자오르간 배경음, 슬로우 템포의 반복적인 드럼 비트, 귀에 속삭이는 듯한 여성보컬 같은 공통의 특징을 지니는데, 이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한 밴드가 포티스헤드(*Portishead: 브리스톨 인근의 도시 이름)다. 이들 3인조의 히트곡 ‘Glory Box’를 들어보자.
종종 담배를 피우며 노래하는 베스 기븐스(Beth Gibbons)의 창법은 종종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와 비교되곤 한다. 그녀의 음울하고 절규하는 듯한 창법이 잘 드러나는 노래가 ‘Mourning Air’다.
이들은 불규칙적인 활동과 언론 기피증으로도 유명하다. 1994년 데뷔한 이래 3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을 뿐이고, 온라인으로 가끔 소식을 전하거나 싱글을 발표하곤 한다. 지난 6월엔 총격으로 사망한 영국 조 콕스 하원의원을 추모하는 뮤직비디오를 발표하여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We have for more in common than which divides us.(우리에겐, 우리를 단절시키는 것보단 공통적인 것이 더 많아요.)”라고.
3. 트릭키(Tricky)
트립합의 또 다른 아이콘 중 하나다. 그는 브리스톨의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청소년 범죄에 연루되어 17세때 교도소에서 6개월 형을 살았다. 이후 래퍼가 되어 매시브 어택의 데뷔 앨범 세션 일을 하다가 1995년 솔로 앨범 <Maxinquaye>로 성공의 길에 들어섰다.
어릴 때 할머니가 자주 TV의 B급 공포물을 틀고 외출하여, 그의 음악은 어둡고 음습한 정신세계를 보여 준다. 영화 <13 고스트>, <퀸 오브 뱀파이어>와 같은 공포영화에서 트릭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그의 열혈 팬 데이비드 보위는 “그의 음악 없이는 잠들 수 없게 만드는 마법사”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