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줘요, 뽀빠이!”라는 외침을 들으면 언제나 어김없이 나타나 가냘픈 연인 올리브를 멋지게 구해내던 뽀빠이를 기억하는지. 선원 복장과 팔에 새긴 닻 모양 문신, 비스듬히 문 파이프가 트레이드마크였던 뽀빠이가 시금치 통조림을 단번에 입속으로 털어 넣는 장면은 언제 봐도 박력 넘친다.

<뽀빠이(Popeye the Sailor)>는 베티붑, 빔보, 슈퍼맨 같은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탄생시킨 플라이셔 스튜디오(Fleischer Studios)에서 제작한 TV 만화로, 1933년 극장용 단편 시리즈로 시작해 1962년까지 방영되어 두루 사랑받았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어려운 상황들을 뚝딱 헤쳐가는 주인공 뽀빠이와 그의 연인 올리브 오일(Olive Oyl), 뽀빠이를 골탕 먹이려 온갖 꿍꿍이를 펼치지만, 되레 당하기만 하는 블루토(Bluto), 세 인물이 주축이 되어 이야기를 꾸려간다.

 

뽀빠이의 영원한 연적, 블루토는 정말 악당인가?

블루토(왼쪽)와 뽀빠이(오른쪽) Popeye © KFS, Inc. TM Hearst Holdings, Inc.

블루토는 우람진 체격과 강한 힘을 가졌지만, 둔하고 영리하지 못해 뽀빠이에게 늘 당하기만 하는 ‘애잔한’ 캐릭터다. 동시에 올리브를 격하게 짝사랑한 나머지 납치하기에 이르고, 매회 뽀빠이를 때리고 괴롭히는 바람에 종종 악당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가끔 하는 행동을 보면, 악당이라 하기엔 어쩐지 순수한 모습들도 적잖이 비친다.

<패션사진(Fashion FotoGraphy)>(1960)

1960년 방영한 <패션사진> 에피소드를 보자. 사진을 제대로 못 찍는다는 이유로 올리브에 ‘촌뜨기’라는 소리를 듣고 쫓겨난 두 남자는, 함께 “난 교양인이요”라는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꼭 붙어 걸어간다. 뽀빠이와 블루토가 비록 천적이긴 해도, 마주 보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올리브의 다이어트(Weight For Me)>(1961)

항해 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온 뽀빠이는 그새 후덕하게 살이 찐 올리브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급기야 헬스 기구를 구해와서는 극한 다이어트 시키기에 돌입하자, 올리브는 뽀빠이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속상해한다. 그런데 블루토는 오히려 올리브에게 “예쁘기만 하다”고 말해주며, 함께 자전거도 타고 아이스크림 가게도 간다. 사랑하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블루토를 마냥 ‘나쁜 놈’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구조요원이 된 뽀빠이(Pepeye The Life Guard)>(1960)

올리브가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자신을 건성으로 대하는 뽀빠이의 시선을 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에피소드. 화가 난 올리브가 ‘위험한 곳에서 서로를 돕자’는 블루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다정한 사이인 척 연기를 펼친다. 결국, 올리브는 뽀빠이의 질투심을 유발하는데 성공하지만, 실컷 이용당한 블루토는 시금치를 먹은 뽀빠이의 주먹에 맞아 쓰레기 더미에 처박히는 안타까운 꼴을 면치 못한다. 볼수록 ‘짠 내’ 나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뽀빠이가 아닌, 다른 캐릭터가 시금치를 먹는다면?

Popeye © KFS, Inc. TM Hearst Holdings, Inc.

뽀빠이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시금치를 먹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실제로 시금치는 칼로리가 거의 없어 힘을 쓰는 데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뽀빠이는 항상 시금치를 먹고 힘을 얻었고, 덕분에 1930년대 미국의 시금치 소비량이 30%나 증가한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시금치가 뽀빠이에게만 기적적인 능력을 행사했던 건 아닌 모양이다. 연인 올리브를 비롯해 미사일 도시의 왕과 애완 앵무새에 이르기까지, ‘쓸모 많은’ 시금치는 다양한 곳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미사일 도시에서의 사고(Incident At Missile City)>(1960)

뽀빠이와 올리브는 시금치 마을이 미사일 도시로부터 침략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도시를 방문하지만, 정체가 탄로나는 바람에 감옥에 갇힌다. 시금치 통조림을 먹고 힘을 얻은 뽀빠이는 미사일 도시의 왕을 때려눕히지만, 살려면 시금치가 꼭 필요하다는 왕의 간곡한 청에 남은 통조림을 그에게 건넨다. <뽀빠이> 속 시금치는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막강한 힘을 가졌다.

<로미오와 줄리엣(Love birds)>(1961)

뽀빠이는 외로움을 타는 올리브의 애완 새 ‘줄리엣’을 위해 수컷 새 ‘로미오’를 구해다주지만,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줄리엣 때문에 둘의 사이는 불안하기만 하다. 뽀빠이가 묘안으로 자신의 시금치를 로미오에게 먹이고, 힘이 세진 로미오가 줄리엣에 반격하면서 둘은 사이좋은 커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시금치를 섭취하고 난 뒤 팔뚝에 힘을 주고 당당한 표정을 짓는 로미오의 모습이 마치 뽀빠이 주니어 같다.

<뽀빠이는 트레이너(Popeye's Pep-up Emporium)>(1960)

물론, 가장 사랑하는 연인 올리브도 예외는 아니다. 언제나 가냘픈 목소리로 “도와줘요, 뽀빠이!”를 외치던 나약한 올리브가 시금치를 먹고 힘을 얻어 스스로 블루토를 제압해 버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뽀빠이는 “내가 너무 잘 가르쳤나 보군!” 하고 말하며 특유의 능청스런 웃음을 짓는다.

시금치가 이처럼 막강한 파워를 가졌으나, 가끔은 ‘만능 시금치’의 법칙을 깨는 특이 케이스도 종종 등장한다. <탁구경기> 편과 <올리브를 위하여> 편을 보면 뽀빠이가 미처 시금치 통조림을 꺼낼 겨를도 없이 상대편에 역으로 당하는데, 이에 뽀빠이는 "작가가 바뀌어서 그래! 시금치 가져오는 걸 잊었나 봐"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탁구 경기(After The Ball Went Over)> 편 바로가기
<올리브를 위하여(Duel To The Finish)> 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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