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관악식물원의 초대원장이었던 식물분류학자 고(故)이창복 박사가 남긴 ‘자생식물 보존의 필요성’이라는 글 중 망개나무에 대한 일화이다.

주민들은 우리나라에 한 나무밖에 없다고 믿어 왔기에 이 나무가 죽음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망개나무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주민들의 소문이 사실일 경우 망개나무는 멸종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나는 가을철 어느 연휴 때에 학생 몇 사람과 같이 속리산록 법주에서 문장대 계곡을 뒤졌으나 아무 단서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해는 서산에 가까워짐으로 법주사 뒤 고개를 넘어 괴산군 청천면으로 향하였습니다. 한종일 주민을 통하여 얻은 소식은 명감 또는 맹감이라고 하는 청미래덩굴뿐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사담리 한 골짜기에서 100여 주가 자라는 곳을 발견한 우리 일행은 우승컵을 차지한 선수 같이 날뛰면서 찾아낸 망개나무를 몇 번이고 돌아다보면서 법주사 고개를 넘어 돌아갈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한국자생식물보존회, <자생식물> 48권 0호, 1999, p.6)

우리는 식물의 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이를 연구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조용하고 지긋한, 고요하고 정적이기만 한 일이리라 으레 짐작한다. 슬라이드 필름이 담긴 서랍장으로 가득한 연구실에서 루페를 눈에 대고 식물 표본을 관찰하거나 글을 쓰고, 수목원을 둘러보는 학자의 모습만을 상상하면서. 그러나 위의 글에서 식물학자가 나무 한 그루를 찾기 위해 주민들을 찾아가고, 학생들과 흩어져 계곡 하나를 통째로 뒤지고, 나무를 찾은 후 아이처럼 날뛰며 기뻐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연구자는 이런 식의 모험을 식물 종의 역동에 따라 평생 계속했을 것이다. 어떤 식물을 애타게 찾고, 계절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다시 서둘러 찾아간 곳에서는 죽음 앞에 실망하면서.

이소영 작가 (출처 - 네이버 인터뷰)

식물세밀화가 이소영(@soyoungli)은 주변에서 사라져가거나 누군가 새롭게 찾아낸, 혹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새삼스럽지 않은 식물들을 정직하고 정확하게 그려 학술적 가치를 갖는 기록으로 만든다. 더 개성적으로, 과장해 그리고 싶은 마음은 형태의 사실성을 훼손하므로 작가의 관심사가 아니고, 그의 분야와도 상관없다. 그러나 사랑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의 결정은 쉽지 않은 일이다. 2014년에 펴낸 첫 책 <세밀화집, 허브>(유어마인드)를 위한 영상에서 이소영은 벙거지와 배낭 차림을 하고 울창한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세밀화를 그리는 모습 한편으로 야외로 나가 사진을 찍고, 자로 크기를 재고 표본을 채집하면서 “종의 보존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는 작가의 음성은 신중하고 단단하다. 사진이나 표본을 참고하기보다, 자생하는 식물을 찾기 위해 산과 들을 헤매고 계절을 기다리는 과정이 길다는 것은 작가가 적극적으로 더 역동적이고 고된 길을 선택한 결과다. 되도록 개체가 다수 분포하는 곳으로부터 작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부분만을 채취하여 세밀화를 그린다는 작가는, 그 과정에서 수집한 식물, 버섯, 조개껍데기 같은 오브제들까지 사진으로 남기고 표본을 만든다. 색과 형태에 따라 섬세하게 배열된 잎사귀와 작은 열매들은 작업의 틈새마다 또 다른 기록으로 남겨진다. 그의 작업실에도 식물들이 가득하다. 인스타그램에 포착된 자연의 풍광, 다양한 식물의 사진에는 여가와 작업을 오가는 작가의 애정이 여실하다.

도시에 산다고 해서 식물에 관한 관심이 적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녹지가 부족한 도시인들은 저마다 초록빛을 집 가까이 들여오는 일에 열중한다. 그러나 집에서 식물을 키워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봄철 벌레와 사투를 벌이고 나면 곧 장마가 찾아오고, 찌는 더위가 이어진다. 조금 날씨가 선선한가 싶으면 짧은 가을이 끝나고 겨울 추위로부터 식물을 지킬 때다. 조용한 관상을 기대했던 이들은 봄에 화분을 사고 여름이 지나면 일거리에 지쳐 포기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런가 하면 식물을 키우는 데에도 유행이 있어, 기후 변화에 따라 한국에서도 흔히 보게 된 아열대 종과 품이 덜 드는 ‘테라리엄’ 형의 디자인 화분이 몇 년간 인기다. 그 덕에 공중에서 실내의 습기를 먹고 자란다는 틸란드시아, 카페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알로카시아, 선인장과 다육식물들까지 길고 이국적인 이름들에도 우리는 관심을 두지만, 산딸나무, 이팝나무, 주목처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들의 이름은 어쩐지 낯설다.

그러나 늘상 지나친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들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당신과 길을 걷던 누군가 쌀알 같은 흰 꽃 가로수의 이름을 가르쳐줄 때 갑자기 그 나무의 아름다움은 정확한 이름을 갖고 당신에게 돌아온다. 이소영은 어떤 사랑의 정확한 형태를 전통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작가가 독특한 관상종 대신 파, 마늘, 생강처럼 우리가 식재료로 흔하게 소비하는 허브 식물들의 본래 모습을 구체적으로 펼쳐 보이고, 인터넷으로 배달 주문해 먹는 블루베리의 다양한 종류를 보여주는 것은 우선 우리의 주변을 새롭게 환기하고 다시 보게 한다. 여기에 식물 그 자체가 가진 형태적 아름다움은, 20세기 초엽의 식물학자이자 사진가였던 칼 블로스펠트(Karl Blossfeldt)의 식물 사진들이 당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바로 그 이유로 여전히 지금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세히 바라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말은 자세히 바라보는 기술 혹은 장치가 모종의 이유로 부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식물세밀화라는 생소한 장르가 작가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반향을 일으킨 것은, 멈춰서 바라보는 방법을 잃어버린 바쁜 사람들에게 다른 시각의 기술을 제안한 덕분일지 모른다.

한국에서도 기후 변화로 자생식물들이 꾸준히 사라지고 있다. 여름에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가는 일이 드물게 되었고 기온은 40도를 웃돈다. 우리가 구매하고 섭취하는 식물 종, 관상 종의 다양성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선택적으로 결정된다. 서두에서 소개한 이창복 박사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속리산의 망개나무는 숲 속에서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호하기 위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는데, 이는 이 식물을 더 빨리 죽이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같은 일을 다시 하여도 결국 같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판단한 당국은 지정문화재 표석과 안내판을 죽은 나무 자리에 그대로 세워 두고 탈골암 입구에서 자라는 것을 지정하여 당분간 공개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희귀종인 망개나무 한 그루가, 먹으면 남자아이를 낳는다는 속설과 관광객들의 훼손 때문에 기념물이 되자마자 죽고 만 것이다. 냉정하게는 이 역시도 한국 식생을 구성하는 한 요소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어떤 종이 알지도 못하는 새에 어이없는 이유로 죽어간다는 것은 조금 억울하고 슬픈 일이다. 관심과 열정에도 다른 방식이 있다. 화분을 사는 대신 도감을 들고 숲이나 가까운 공원으로 나가 볼 수도 있고, 대파를 다듬으며 좀 더 유심히 관찰하고 만져볼 수도 있다. 세상에 내가 모르는 나무, 풀, 꽃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면 까마득하지만, 강가에 가면 볼 수 있던 이름 모를 들풀들이 어느 순간 남몰래 자취를 감추는 것은 쓸쓸하다. 이 가운데 이소영은 묵묵하고 정교하게 지금을 기록한다.

 

이소영 인스타그램

 

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