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2월 5일 8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데이비드 액슬로드(David Axelrod, 1931~2017)는 1960년대 재즈 색소포니스트 캐논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ey)와 소울 싱어 루 롤스(Lou Rawls)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애덜리와는 10여 년간 긴밀하게 협력하여 앨범 <Mercy, Mercy, Mercy>(1966)가 팝과 재즈 양 부문에서 히트를 치면서 명성과 재력을 동시에 얻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자신의 이름으로 두 장의 앨범을 출반하였는데, 내러티브, 퍼커션과 베이스를 강조한 녹음,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하는 구성으로 독특한 연주 음악을 선보여, 현재 환경 음악(Environmental Music)의 원류로 평가받는다.

1960년대 후반 Capitol 레이블에서 발표한 ‘The Edge’를 지휘하는 액슬로드(2004년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 실황) 
닥터 드레(Dr. Dre)의 2000년 싱글 ‘The Next Episode’는 ‘The Edge’를 샘플링한 곡으로 빌보드 23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대중음악에 밀어 닥친 디스코 열풍으로, 프로듀서로서 그의 시장성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에는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한 부인의 병 수발에 전념하면서 그는 음악 신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전성기에 연간 70만 달러를 벌던 유명 A&R 프로듀서에서 무일푼의 쪼들리는 신세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2004년 런던 로얄 페스티벌 홀에서 지휘하는 데이비드 액슬로드

하지만 한동안 대중에게서 잊혀졌던 그의 음악은 1990년대 힙합 프로듀서들이 그의 음악을 경쟁적으로 샘플링 하면서 다시 되살아난다. 전성기 시절 같이 일했던 매니저가 그에게 이 사실을 메일로 알렸고, 그들은 다시 의기 투합하여 미발매 음원을 발매하거나 앤솔로지(Anthology) 앨범을 내면서 노년을 바쁘게 지냈다. 수많은 샘플러들로부터 보상받기 위한 노력도 물론 바쁜 일과 중 하나였다. 2004년에는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 콘서트에서 오랜만에 팬들에게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50여년 전에 나온 그의 오리지널과 최근 힙합으로 샘플링되어 히트친 곡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선 음악을 했는지 알 수 있다.

1968년 액슬로드의 <Song of Innoncence>에 수록된 ‘The Smile’. 이 앨범은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시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힙합 DJ Premiere는 액슬로드의 샘플러 중 하나다. 그의 사단인 로이스 다 5’9”(Royce Da5’9”)의 ‘Shake This’는 ‘The Smile’을 샘플링한 곡이다

그는 샘플링에 대한 권리 회수에 나서면서, “내가 했던 일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고 싶다”라고 밝힌 바 있다. 2004년 런던 콘서트 영상에서 무대에 오른 액슬로드는 관객들에게 심중에 있는 말을 농담삼아 하기도 했다. “나는 위선자이다. 샘플링은 뮤지션들로부터 일거리를 빼앗기 때문에 나는 샘플링을 혐오한다. 하지만 그 덕분에 돈을 벌어 재미를 보고 있다.” 평생 거침없는 입담으로 유명했던 액슬로드다운 비아냥이었다.

액슬로드의 1969년 두 번째 앨범 <Songs of Experience>에 수록된 ‘The Human Abstract’
1996년 DJ Shadow의 데뷔앨범 <Endtroducing>에 수록된 ‘Transmission 2’와 ‘Midnight in a Perfect World’는 액슬로드의 ‘The Human Abstract’를 샘플링한 곡이다 

막상 그 자신의 음악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으나, 비트와 베이스 라인을 전면에 내세워 록, 재즈, 펑크, 오케스트라 음악을 조합한 음악 스타일은 혁신적이었으며, 이어진 힙합 혁명을 예고하는 전 단계였을 지도 모른다. 그의 사망 후 수많은 힙합 뮤지션들이 애도에 나선 것을 보니, 그의 존재가 새삼 거대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