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위스콘신주에서 두 명의 12세 소녀가 같은 반 친구를 숲속으로 꾀어 칼로 19번을 찌른 경악할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피해자는 자전거를 타고 부근을 지나가던 행인이 911에 신고하면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경찰에 체포된 가해 소녀들은 ‘슬렌더맨(The Slender Man)’의 추종자가 되기 위해 범행을 했다고 진술하면서 언론에서 그의 존재가 대서특필된다. 그들은 인터넷 괴담으로 떠돌던 슬렌더맨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은 것이다.

슬렌더맨을 소재로 제작한 단편영화 중 가장 유명한 <Fathom> 

슬렌더맨은 2009년 ‘Something Awful’이라는 블로그 포럼에서 창안된 인터넷 공포 캐릭터로, 포럼의 전임 회장(Eric Knudsen)이 다수 참여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구체적인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비정상적인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눈코입이 없는 하얀 얼굴, 검은 정장에 넥타이를 한 초자연적 존재로, 숲속에서 어린아이들을 스토킹하여 그들의 세계로 데려간다는 공포 캐릭터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단편영화, 뮤직비디오, 게임, 바이럴 비디오 등에서 그를 볼 수 있고, 각종 파티에서 그를 코스프레한 영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천 3백만 유튜브 구독자를 보유한 창작자 Markiplier의 뮤직비디오 영상 

슬렌더맨은 인터넷 바이럴을 통하여 캐릭터를 더욱 구체화하고 이야깃거리를 끊임없이 확장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그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한다는 가설이다. 고대, 남북전쟁 때도 그는 존재했고, 스코틀랜드의 ‘Fear Dubh(The Dark Man)’, 네덜란드의 ‘Takkenmann(Branch Man)’, 독일의 ‘Der Großmann(The Tall Man)’ 같은 유럽 지역의 공포 캐릭터도 슬렌더맨과 같은 존재로 취급된다.

독일의 Der Großmann(The Tall Man)을 형상화한 삽화

슬렌더맨은 곧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인디게임 업체들이 슬렌더맨으로부터 탈출하는 서바이벌 게임을 선보였고, 유튜브에는 슬렌더맨을 찾아 나서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몰래카메라 영상들이 속속 올라왔다.

유튜브에 올라온 슬렌더맨 몰래카메라 영상. 6천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미국 드라마계의 공룡 HBO에서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올해 초 방영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슬렌더맨의 다음 수순은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공포영화의 주인공일 것이다. 작년에 Mythology Entertainment라는 회사가 슬렌더맨의 저작권을 확보했다고 하니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영화나 드라마 제작 소식이 들려오는 건 시간문제인 듯하다.

올해 1월 미국 HBO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Beware the Slender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