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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씬한 몸매와 모던한 분위기로 1960년대를 풍미한 샹송 가수이자 패션 아이콘 프랑수아즈 아르디. 남다른 재치와 자유분방한 인상으로 여심을 사로잡으며 송라이터, 가수, 배우로 활약한 자크 뒤트롱.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 재즈 기타리스로 활동중인 토마트 뒤트롱. 가족으로 맺어진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음악 세계를 들여다봤다.

 

1. 프랑수아즈 아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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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아르디(Francoise Hardy)는 1944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은 따로 떨어져 지냈고,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부족한 환경에서 외롭게 자란 아르디는 대학입학 시험 통과를 계기로 어머니에게 기타를 선물 받았다. 이때부터 그는 샹송의 대가인 샤를르 트르네(Charles Trenet), 코라 보케르(Cora Vaucaire)의 영향을 받아 음악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고, 이후 미국의 스탠더드 팝 뮤지션 폴 앙카(Paul Anka), 에블리 브러더스(Everly Brothers), 클리프 리처드(Cliff Richard), 코니 프란시스(Connie Francis)에게 반해 그들의 음악을 샹송과 접목하려고 노력했다.

Françoise Hardy ‘Oh, Oh, Chéri’ (1962)

파리 제 4대학(소르본 대학) 1학년을 마친 어느 날, 아르디는 젊은 가수를 찾는다는 신문 광고를 본다. 이후 1961년, 보그 레코드(Disques Vogue)와 첫 번째 계약을 맺고 조니 할리데이가 가사를 쓴 ‘Oh Oh Cheri’를 녹음, 이듬해 18살이라는 나이에 데뷔 앨범 <Tous les garçons et les filles>(1962)를 낸다. 앨범은 백만 장이 넘는 판매량과 함께 그해 골든 디스크 상을 거머쥐며 ‘프랑수아즈 아르디’라는 젊은 여가수의 이름을 알리는 발판이 되었다.

Francoise Hardy 'Tous les garcons et les filles'(1962)

내 나이의 모든 남자와 여자들은

짝을 지어서 다녀요

내 나이의 모든 남자와 여자들은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요

서로 쳐다보며 손을 잡고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행복하게 걸어갑니다

하지만 나는 아픈 마음으로 혼자 길을 걷습니다

나는 혼자 가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모든 소년 소녀들’이라는 제목으로 즐거워 보이는 연인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주인공의 심정을 담았다. 아르디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로 영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버전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복구한 영상에는 카메라를 외면하고 공허한 표정으로 노래하는 아르디의 모습이 담겨 있다. 훗날 그는 “파리에서 최악의 뮤지션 4명과 3시간 만에 녹음했다”며 숨은 이야기를 밝히기도 했다.

1집을 발표한 뒤 아르디는 대학을 그만두고 1963년 모나코에서 개최한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가한다. 그는 'L'amour s'en va(떠나간 사랑)'를 불러 5등을 수상하며 유럽에서도 크게 이름을 알렸다. 같은 해에는 잡지 <파리 마치(Paris Match)>에 여가수로는 처음으로 표지 모델을 장식했다. 179cm라는 놀라운 키에 늘씬한 몸매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이후에도 아르디는 사진가이자 영화감독인 장 마리 페리어(Jean-Marie Perier)의 모델로 카메라 앞에 섰고, 1960년대 후반까지 Yé-yé* 신을 이끌며 전성기를 누렸다. 

*Yé-yé: 1960년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생겨난 팝 뮤직의 하위 장르. 영어로 ‘yeah! Yeah!’라는 뜻을 가졌으며, 시부야 케이와 일본 아이돌 음악의 기원으로 통한다.
Francoise Hardy 'Comment Te Dire Adieu'(1968)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결코 네 앞에서

휴지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어떻게 너에게 안녕이라 말할지, 더 잘 알게 되겠지

너는 우리가 함께했던 아름다운 밤들을 다 잊어버렸어

그래도 나를 위해 한 마디 변명쯤은 해 줬으면 해

프랑수아즈 아르디가 부른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곡이다. 하지만 영국 가수 베라 린(Vera Lynn)의 ‘It Hurts To say Goodbye’(1954)을 원곡으로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르디는 처음 이 곡을 듣고 단번에 뜰 것을 예감해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에게 들려주었고, 세르쥬는 아르디를 위해 처음으로 본인이 만들지 않은 곡에 프랑스어 가사를 붙여주었다. 노래는 프랑스 내에 전파를 타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아르디는 방송에서 세르쥬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르쥬의 연인인 제인 버킨(Jane Birkin)과 이 곡을 함께 부르기도 했다. 2012년에는 전 세계 미네랄 워터 1위 회사 Contrex가 광고 삽입곡으로 쓰며 다시 한번 널리 알려졌다. 슬픈 가사와는 대조적으로 한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멜로디를 가졌다.

프랑수아즈 아르디는 1970년대까지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다가 1980년대부터 앨범 발표 횟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는 드문드문 앨범을 발표하며 영국 팝 밴드 Blur의 3집 수록곡 'To The End'(1994)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1995년에는 Malcolm McLaren의 앨범 <Paris>에서 'Revenge of the Flowers’의 메인 보컬로 참여하여 영어와 프랑스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며 세월이 무색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Francoise Hardy ‘Tante De Belles Choses’ (2004)

28번째 앨범 <Tante De Belles Choses>(2004)의 동명 타이틀곡이다. 영상에는 백발에 숏컷을 한 프랑수아즈 아르디 모습이 담겨있다. 트레이드마크였던 긴 생머리와 눈썹을 스치는 앞머리, 소녀 같은 인상은 사라졌지만, 한층 세련되고 우아해진 자태와 청초한 목소리는 변함없이 아름답다. 아르디는 이 앨범으로 20만 장의 판매량과 함께 그해 최고 여자 가수상을 받았다.

Francoise Hardy ‘Amours Toujours, Tendresse, caresses’ (2007)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곡들을 묶은 앨범 <Parentheses>(2007) 수록곡이다. 본래는 자크 뒤트롱의 앨범 <L' Opportuniste>(1969)에 실린 곡으로 아들 토마스 뒤트롱이 기타를 연주했고, 자크 뒤트롱이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다.

 

2. 자크 뒤트롱

자크 뒤트롱(Jacques Dutronc)은 프랑스 밖에서 가수보다는 영화배우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60년 후반부터 가수로 활동하다 1970년대 들어 영화로 주 활동 무대를 옮겼다. 1973년 장 마리 페리어(Jean-Marie Perier) 감독의 <안토니 앤 세바스찬>으로 영화계에 데뷔했고, 1992년에는 모리스 피알라(Maurice Pialat) 감독의 <반 고호>(1991)로 세자르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획득했다. 이후 <초콜릿 고마워>(2002), <페달 라스트>(2004), <두번째 숨결>(2007) 같은 작품을 통해 조연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배우로서 역량을 펼치기에 앞서, 그는 아내 프랑수아즈 아르디와 함께 1960년대 프랑스 Ye-ye 신을 이끈 주도적 인물이었다. 자크 뒤트롱은 록 그룹 El Toro et les Cyclones의 기타리스트와 에디 미첼(Eddy Mitchell)의 세션 기타리스트로 음악을 시작했다. 이후 프랑수아즈 아르디, 주주(ZouZou), 벤자민(Benjamin) 같은 가수에게 곡을 써주며 작곡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그는 소설가이자 잡지 <Lui> 에디터였던 자크 란즈만(Jacques Lanzmann)과 협업하여 보그 레코드(Disques Vogue)에서 다수의 곡을 만들었고 이를 묶어 1966년에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자크 뒤트롱의 음악 스타일은 전통 프렌치 팝에 프렌치 록, 사이키델릭 록을 섞었으며 블루스와 개러지 록의 분위기도 엿보인다. 

Jacques Dutronc 'mini, mini, mini' (1966)

데뷔 앨범 <Et moi, et moi, et moi>은 백만 장 이상의 판매와 더불어 1967년 프랑스 음악 시상식 Grand Prix du Disque에서 스페셜 상을 획득했다. 수록곡 ‘mini, mini, mini’는 단순한 코드 진행과 경쾌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이다. 프랑수아즈 아르디가 피처링에 참여했고, 영상에는 자크 뒤트롱 함께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르디가 등장한다. 

Jacques Dutronc ‘Les cactus’ (1967)

1집 앨범에 실린 곡으로 첫 트랙 ‘Les play boys’와 더불어 높은 인기를 구사했다. 당시 프랑스 싱글차트(1967년 3월)에서 4위에 올랐으며, 싱글 앨범만으로 4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올렸다.

Jacques Dutronc 'J'aime les filles'(1967)

1967년에 발표한 싱글 앨범 수록곡. 자크 뒤트롱이 자크 란즈만과 함께 쓴 곡으로 당시 2주동안 프랑스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제목에 어울리는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멜로디를 갖췄다. 

프랑수아즈 아르디와 자크 뒤트롱은 1960년대 후반부터 동거하며 연인 관계를 이어오다 1973년, 아들 토마스 뒤트롱을 얻었다. 이후 두 사람은 세금 문제로 1981년에 공식 결혼식을 올린다. 당시 아르디는 37살, 자크 뒤트롱은 38살이었다. 이후 1998년, 자크 뒤트롱은 영화 <방돔 광장>(1998) 세트장에서 만난 스타일리스트와 연인 관계를 시작했다. 현재 뒤트롱과 아르디는 별거 중이지만, 여전히 혼인 관계를 유지하며 정기적으로 만난다.

 

3. 토마스 뒤트롱

사진 출처- <Le Prix Talents w9

1973년,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아들 토마스 뒤트롱(Thomas Dutronc)은 부모님의 음악적 유전자를 이어받아 현재 재즈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아쉽게도 그에 관한 정보는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힘들다. 하지만 훌륭한 음색과 기타 실력, 영화배우 못지않은 마스크로 자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점만은 기억해두자. 그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4장의 정규 앨범과 4장의 싱글을 발표했다.

Thomas Dutronc ‘J'aime plus Paris’ (2007)

데뷔 앨범 < Comme un manouche sans guitare>(2007) 수록곡. 토마스 뒤트롱은 이 곡으로 2008년 UNAC 어워드 상을 받았으며, 제23회 Victoires de la Musique 어워드에서 새로운 아티스트와 올해의 앨범 부문에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 이 곡은 2008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된 프렌치 팝이다.

Thomas Dutronc ‘Demain’ (2011)

2집 <Silence on tourne, on tourne en rond> 수록곡이다. 허스키한 토마스 뒤트롱의 목소리와 자유분방한 여행을 담은 뮤직비디오가 어디로든 떠나고 싶게 만든다.

Thomas Dutronc ‘Qui je suis’ (2015)

2015년에 발표한 4집 앨범 <Éternels jusqu'à demain> 수록곡. 우디 앨런의 유럽 3부작(<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2008), <미드나잇 인 파리>(2011), <로마 위드 러브>(2012))을 떠올릴 만큼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를 자랑한다.

2016년 재즈 페스티벌 ‘Festival Jazz musette des Puces’ 무대에 오른 자크 뒤트롱의 라이브 영상. 그의 놀라운 기타 연주 실력은 9분 40초가량부터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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