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마돈나>(2006), <김씨 표류기>(2009)처럼 독특한 소재로 재미와 감동을 전하는 한국영화는 이제 찾아볼 수 없는 걸까? 현재 극장가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 블록버스터와 오직 흥행만을 노리는 자극적 상업영화로 북새통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광화문의 반짝이는 불빛 하나를 주목해야 한다. 참신하고 다양한 소재로 한국 독립영화계에 반향을 일으킨 영화창작집단 ‘광화문시네마’는 이제 상업영화에도 진출해 특유의 개성을 뽐내고 있다. 광화문시네마의 면면과 필모그래피, 그리고 예매순위 1위를 기록하며 흥행의 청신호를 밝힌 이들의 세 번째 작품 <범죄의 여왕>을 만나보자.

 

광화문에는 광화문시네마가 있다

이미지 출처=광화문시네마 페이스북

얼마 전 김혜수 주연의 <굿바이 싱글>(2016)로 200만 관객을 끌어들인 김태곤 감독, 순도 100% 진짜 청춘을 그린 <족구왕>(2013) 우문기 감독, 첫 장편 <범죄의 여왕>을 들고 극장가를 찾아온 이요섭 감독까지. 이들이 다가 아니다. ‘생선인간’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간담 서늘한 웃음을 전한 <돌연변이>(2015)의 권오광 감독과, 차기작 <소공녀>를 준비중인 전고운 감독, 김지훈, 김보희 프로듀서도 있다. 누구냐고?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영화인들이자, 모두 광화문시네마 소속이다.

‘광화문시네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출신 감독 다섯 명이 모여 만든 영화 공동체다. 마음 맞는 동기들끼리 작업실을 구해 영화를 만들어보자 했던 소소한 시작이 김태곤 감독의 <1999, 면회>(2012) 촬영을 도우며, 이 영화가 극장에 걸리면서 광화문시네마라는 정식 영화사로 발전했다. 이제 7명이 된 식구들은 시나리오나 하다못해 작은 아이디어 하나라도 자유롭게 내놓으며 협업한다. 제작, 각색, 자문, 촬영 같은 다양한 역할을 그때그때 적절히 나눠 맡고, 특별한 역할이 없을 땐 현장에서 허드렛일이라도 한다. <범죄의 여왕> 촬영장에서 김태곤, 우문기 감독이 매일같이 현장 스태프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배우들이 꽤나 놀랐다고.

 

광화문시네마의 영화를 끝까지 봐야하는 이유, 쿠키 영상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혹자가 이들의 영화를 ‘블록버스터 급’이라 표현하는 건 광화문시네마가 ‘쿠키 영상’을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토르: 다크월드> 마지막에 차기작 <갤럭시 오브 가디언스>를 예고하는 쿠키 영상이 붙어 있듯, 광화문시네마의 모든 작품에는 다음 작품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이 붙어 있는 것. 이는 한국 영화사에 전례 없던 이들만의 독특한 컨셉이다.

김태곤 감독의 <1999, 면회>에서 시작한 쿠키 영상은 당시 미술팀에 있던 우문기 감독이 받아 <족구왕>으로 완성했고, 이요섭 감독의 <범죄의 여왕> 역시 <족구왕> 말미에 쿠키 영상으로 처음 선보였다. 이후 관객들이 열광적인 성원을 보내며 <범죄의 여왕>의 개봉을 기다린 건 당연지사. 물론 <범죄의 여왕>에도 관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네 번째 작품에 관한 쿠키 영상이 빠지지 않는다.

 

광화문시네마의 짧지만 강한 필모그래피

첫 번째 작품 <1999, 면회>

Sunshine Boys│2012│감독 김태곤│출연 김창환, 심희섭, 안재홍

고교시절 절친이었으나 졸업 후 처지가 달라진 신입생 '상원'과 재수생 '승준'은 군인이 된 친구 '민욱'을 만나러 강원도 철원으로 떠난다. 민욱의 여자친구가 보낸 이별 메일을 차마 줄 수 없어 두 사람은 몸과 마음을 바쳐 1박2일을 헌신하기로 하는데. 갓 스무 살이 된 세 남자의 1박 2일 면회 이야기를 유쾌하고 애잔하게 그린 성장물이다. 주연 배우이자 동갑내기인 안재홍, 심희섭, 김창환은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선정하는 유일한 연기부문상인 남자배우상을 공동 수상하며 단숨에 라이징스타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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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작품 <족구왕>

The King of Jokgu│2013│감독 우문기│출연 안재홍, 황승언, 정우식, 강봉성, 황미영

갓 제대한 복학생 ‘만섭’은 취업의 장으로 변해버린 캠퍼스에서 남들처럼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족구’에 파고들어 일약 ‘캠퍼스 족구 히어로’가 된다. 코믹하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수작으로 관객의 입소문을 탔고, 독립영화로서는 괄목할 만한 성적인 4만6천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특히 <1999, 면회>와 <족구왕>에 모두 출연한 배우 안재홍은 이후 스타덤에 올라 광화문시네마의 선구안을 증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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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작품, 개봉작 <범죄의 여왕>

The Queen of Crime│2015│감독 이요섭│출연 박지영, 조복래, 김대현, 허정도, 백수장, 이솜

2016년 개봉한 <아가씨>, <굿바이 싱글>, <비밀은 없다>에 이어 또 한번 강렬한 여성 캐릭터의 탄생을 알린다?! 광화문시네마의 세 번째 작품인 <범죄의 여왕>은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아들의 수도요금이 120만 원이나 나오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아줌마 ‘미경’이 사건의 배후를 파헤치는 영화다. 프로급 오지랖과 ‘넘사벽’ 아줌마 파워를 자랑하는 미경 역의 배우 박지영과 충무로에서 주목받는 신예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여 개성 있는 캐릭터를 선보일 예정. 고시원 관리직원 역의 조복래, 범인으로 유력한 장기 고시생 역의 허정도, 게임 폐인 역의 이솜과 더불어 <족구왕>의 출연진들과 광화문시네마 식구들인 우문기, 권오광 감독까지 깜짝 등장해 풍부한 볼거리를 더한다.

<범죄의 여왕>을 연출한 이요섭 감독은 애니메이션 <플라스틱 로봇>(2005)을 시작으로,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형사물 단편 3부작, <더티혜리>(2013) 같은 영화를 발표하며 스릴러 장르에 탁월한 연출력을 선보여 왔다. 이번에는 희생적인 이미지 대신 능동적으로 사건을 해결해가는 멋진 엄마를 그리며 관객들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한편, <범죄의 여왕> 쿠키 영상은 아내 전고운 감독이 받았다. ‘현대판 거지’라는 부제가 달린 <소공녀>는 담배와 위스키를 유일한 낙으로 여기는 30대 여성 가사도우미가 담뱃값 인상으로 생활고를 겪으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범죄의 여왕>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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