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 붉은 틀 연작, 2005. 이미지 출처- parisphoto

2017년 4월, 미국이 항공모함 칼빈슨호의 한반도 작전 해역 재배치를 결정했다. 중국은 북한 접경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켰다. 미, 중의 압박 수위가 높아진 가운데 북한은 4월 15일 김일성 생일, 25일 인민군 창건일 등 굵직한 정치 행사를 앞두고 있다. 고조하는 긴장 속에서 ‘4월 위기설’ 같은 소문은 한국인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에서 군사 행동은 한미 공조 아래 이뤄진다”는 입장으로 ‘4월 위기설’을 일축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연일 불안정하다.

때때로 ‘한반도 위기설’이 찾아올 때에야 우리는 분단국가에 살고 있음을 비로소 실감하곤 한다. 우리는 북한 젊은 통수권자의 과장된 외모, 방송에서 가끔 들려오는 격앙한 북한 공영방송 아나운서의 목소리 같은 것들을 익히 알고 있다. 탈북자들은 모종의 목적 아래 제작된 뉴스나 예능 방송에 출연한다. 유튜브 채널에서 북한이 선전을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허술한 ‘먹방’을 통해 어설픈 자막과 황량한 풍경을 쉽게 찾아볼 수도 있다. 지금 보는 북한의 이미지들은 남한에서는 전쟁, 전체주의, 폭력, 독재처럼 이미 과거가 된 것만 같은 어떤 기억들을 현재로 소환하는 매개다. 북한은 쉬운 농담이고, 조악한 이미지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은 한국의 어두운 과거, 어디엔가 도사린 공포이자 현재 진행형의 불안이다.

김정은의 이 사진은 수많은 네티즌에 의해 패러디되었다. 대외 선전용으로 제작한 이 사진에 사람들은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김정은의 외형, 사진에 등장한 애플사의 최신 컴퓨터, 그에 대비되는 구시대적 주변 인테리어 등을 조롱하는 캡션을 달아 온라인에 퍼뜨렸다 

한국의 많은 창작자가 북한과 분단 현실을 다루는 활동을 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접근이 제한된 상황에서 북한의 생생한 모습을 포착하는 방식은 사용하기 힘들다. 그래서 한국의 창작자들은 주로 기존의 영상이나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식을 택하거나, 분단 현실이 잘 드러나는 특정 지역이나 인물의 미시사를 탐구해 인식의 확장을 꾀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편을 써왔다. 특히 인터넷 이전의 시대에는 ‘북한’에 대한 접근이 무척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북한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운 외신과 개인이 촬영한 사진과 영상 소스들, 북한이 선전 목적으로 선별해 국제 사회에 내놓는 이미지들, 소수 연구자에게 개방된 통일부 산하의 북한 자료센터나 북한연구소(서울 동대문구 소재) 같은 사설 기관의 자료 정도가 한국민이 개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한반도 내의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한반도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은 작금의 국제 정세와도 아귀가 맞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정윤석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2017)의 가제였던 ‘밤섬해적단 습격의 시작’ 트레일러 vol.1, ‘김정일 만세’ 영상. 인디밴드 밤섬해적단과 그 주변을 파격적인 형식으로 만든 영화다. 국내 정식 개봉 전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여 호평을 얻었다

과거에는 이렇듯 외신이 전해온 이미지들을 그나마도 한정적으로 접할 수 있었지만, 만일 당신의 호기심이 반공 교육과 문화로 단련된 죄책감이나 공포를 이긴다면 당장 인터넷에서 북한이 선전을 위해 만든 SNS 계정이나 동영상 등을 볼 수도 있다(한국에서 접속 차단된 사이트 제외). 물론 북한의 해묵은 선전은 처참할 정도로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취약하며 거의 농담처럼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2012년 사진가 박정근이 북한의 선전용 트위터 계정의 트윗을 조롱 조로 리트윗하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 구속에 이른 사건이 있었다. 박정근은 기나긴 법정 투쟁 내내 모든 것이 농담이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했고, 결국 2014년 대법원은 그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도 긴 시간 동안 겪게 된 평범한 개인의 고충, 사건에 대한 대중의 엇갈리는 반응, 사법기관의 적극적 제재 같은 사건의 면면은 표현의 자유라는 문제뿐 아니라 북한이 한국에서 갖는 추상적, 실체적 존재 형식을 다시금 실감하게 했다.

김황, <모두를 위한 피자>(2010) 프로모션 영상. 작가가 제작한 이 영상은 피자 요리법 외에도 외국 갈 때 비행 가방 꾸리기, 한국 가요에 맞춰 춤추기,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법 등 총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 작가 김황이 제작한 프로젝트 <모두를 위한 피자>는 한국에서 영상 촬영이 이루어졌지만, 외부의 도움으로 북한으로 배포되고 현지 피드백을 받아 완성될 수 있었다. 작가는 2008년 평양에 최초로 피자 레스토랑 ‘별무리’가 개업했다고 가정하고 이 특별한 음식 피자를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주민들도 먹을 수 있도록 고민하는 과정에서 피자 요리법이 담긴 짧은 극영화를 촬영했다. 외부 콘텐츠가 북한으로 유입되는 밀수 루트를 통해 이 영화는 북한으로 직접 가서 주민들과 조우했고, 그 경로에서 북한 주민들은 작가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작가는 한반도 내의 체제적 단절 자체보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 간의 소통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런 만큼 북한 주민들이 보내온 피드백들, 가령 배우를 향한 팬레터나 직접 피자를 구워 먹은 사진과 소감 같은 인간적인 메시지들은 프로젝트를 휴머니즘적으로 따뜻하게 완결하는 것이었다.

히시다 유스케(Hishida Yusuke), 변경/한국(Border/Korea) 연작(Girls), 2016. ⓒHISHIDA, Yusuke

북한 정권의 억압적인 모습은 가끔 그 속에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잊게 한다. 휴머니즘적인 시도는 부자유스러운 국가의 틀 내부에 접근해 인간성을 부각한다. 잘 알려진 영국 출신 다큐멘터리 감독 다니엘 고든(Daniel Gordon)은 중산층 가정 두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어떤 나라>(2006)를 비롯, 북한에서 촬영한 세 편의 영화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북한에서 만들어진 그 어떤 영상이나 사진도 삼엄한 감시 아래 제작될 수밖에 없다. 폐쇄적인 사회 시스템 때문에, 북한에서 제작된 그 무엇을 보더라도 우리는 작가의 의도나 통제가 미치지 못하는 그 바깥을 향한 관음증적인 시선을 던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무언가 더 ‘진실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눈으로 북한을 바라본다. 그래서 북한을 다루는 휴머니즘적 작품들은 폐쇄적인 시스템이 미처 손쓰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무언가를 지향하면서도, 바로 그런 인간성이 드러나지 못하게 되는 시스템의 한계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프리칸 르네상스(2010년 준공, 다카르, 세네갈), 사진 최원준, 2013. 이미지 출처- 보그 코리아

최원준의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Mansudae Master Class)>(2014) 프로젝트는 외부 매체의 대리나 의도적인 극 서사를 배제하고 제 3국인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북한과 한국의 현실을 탐구한다. 북한의 만수대 창작사(1959년 설립)는 북한 역대 지도자들의 모습을 주체사상의 미학적 틀 속에서 동상과 초상 등으로 제작하는 해외 개발 부서다. 작가는 만수대 창작사가 아프리카 국가들 현지에 건립한 기념비와 건축물들을 찾아가 기록한다. 냉전 시대였던 1970년대에 아프리카는 한국과 북한의 외교 격전지였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백화점’을, 북한은 각종 기념비와 건축물을 무상으로 건립했다. 북한과 아프리카 대륙의 관계는 지금까지도 경제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은 한국민인 작가가 실제로 북한의 공공미술을 볼 수 있는 장소이면서, 북한의 국가 이미지가 아프리카라는 장소 및 맥락과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생경한 감각이 새로운 눈과 관점의 출발을 돕는 장소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이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어디에도 없거나 혹은 지나치게 과잉된 북한의 이미지를 넘어 자신만의 눈으로 북한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이미지는 미국 여행사 ‘우리투어스(Uri Tours)’의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다. 이 여행사는 북한 여행을 전문으로 하고, 당연히 그들의 인스타그램은 투어를 위한 홍보 용도로 보인다. 이들은 그 의도에 충실하게 평양을 비롯한 북한의 도시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평범한 여행자들이 촬영해 올릴 법한 사소한 것들, 이를테면 국적기의 기내식, 전철을 탄 사람들의 모습과 거리의 풍경마저 ‘이국적’이고 비밀스러운 것으로 포장되어 예비 고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필터로 채색된 낡고 쇠락한 거리와 광장은 독특한 것을 찾는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휴양지로서의 매력마저 가진 듯 보인다. 이러한 시선들에 우리는 얼마나 무감해지고, 또 멀어졌을까. 북한에 대한 온갖 뉴스에 둘러싸여 ‘전쟁’, ‘핵’, ‘전면전’ 같은 군사용어에 실존의 위협마저 느끼게 되는 지금, 남의 사진첩 속 멜랑콜리한 북한을 본다.

 

작가 김황 홈페이지
Uri Tours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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