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Sergei Polunin)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댄서>를 소개한다. 그러나 발레에 문외한인 이들은 ‘세르게이 폴루닌’이란 이름이 생경할 것이다. 물론 많은 이에게 친숙한 발레 이야기도 있다. 발레를 향한 어린 소년의 도약을 담은 <빌리 엘리어트>와 실제 발레리노가 주연으로 활약한 <백야>다. 이 두 편의 영화는 공교롭게도 <댄서>의 주인공 세르게이 폴루닌과 닿아 있다. 천재, 반항아, 스타로 불리며 전 세계에 숱한 화제를 뿌린 세르게이 폴루닌에게는 과연 어떤 사연이 있을까? 스크린에서 먼저 활약한 두 '댄서'를 통해 세르게이 폴루닌의 삶을 다룬 영화 <댄서>를 들여다보았다.  

 

소년, 발레를 향해 힘차게 도약하다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Billy Elliot, 2000ㅣ감독 스티븐 달드리ㅣ출연 제이미 벨, 줄리 월터스, 개리 루이스

영화 <댄서>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의 이면에 가려진 안타까운 가족사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 사연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 속 빌리의 이야기와 묘하게 닮아 있다. 1980년대, 영국 북부 탄광촌에 사는 11살 소년 ‘빌리’(제이미 벨)는 복싱을 배우다 우연한 기회로 발레의 재능을 발견하고 로얄발레학교 오디션 권유를 받는다. 발레는 여자들이나 하는 거라며 반대하던 아버지 또한 빌리의 재능과 열정을 확인하고, 넉넉하지 못한 형편임에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그렇게 빌리는 세계적인 발레리노로 우뚝 성장한다. 영화는 소년의 희망찬 도약을 유쾌하게 그리면서도 역설적으로 아들을 위해 힘겨운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가족들이 겪는 절망을 보여주어 씁쓸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 예고편

 

발레로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다

<백야>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White Nightsㅣ1985ㅣ감독 테일러 핵포드ㅣ출연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그레고리 하인즈, 이사벨라 로셀리니

발레를 소재로 한 영화에 있어서 <백야>는 빼놓을 수 없는 명작으로 꼽힌다. 그건 실제 발레리노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Mikhail Baryshnikov)가 직접 주연으로 출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12살부터 발레를 시작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는 다소 아담한 체구임에도 그것을 뛰어넘는 기술력과 탁월한 예술성을 발휘했다. 그렇게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드러내며 정통 발레의 명문 러시아에서 최고로 인정받던 그가 스물여섯에 모든 지위를 버리고 돌연 캐나다로 망명한 건 다름 아닌 진정한 ‘자유’를 향한 갈망 때문이었다. 마치 영화 <백야>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영화는 냉전시대에 소련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발레리노 ‘니콜라이’(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다시 소련에 돌아가게 되고, 그곳을 탈출하려는 과정을 그린다. 어쩔 수 없이 소련의 무대에 선 니콜라이의 모습은 자유를 향한 몸부림처럼 보이다가도 이내 출중한 실력을 지닌 진짜 무용수의 면모를 보이며 전율을 선사한다. 영화 속 니콜라이가 마침내 자유를 얻은 것처럼,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는 현재 세계적인 무용가이자 배우, 사진작가, 감독을 아우르는 자유로운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 <백야> 예고편

 

두 영화로 들여다본

세르게이 폴루닌과 <댄서>

앞서 소개한 것처럼 세르게이 폴루닌의 어린 시절은 마치 빌리 엘리어트를 연상케 한다. 고향인 우크라이나에서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세르게이 폴루닌은 뛰어난 재능 덕에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어린 세르게이가 발레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안타깝게도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형편 탓에 그의 아버지와 할머니는 해외로 나가 돈을 벌어야 했는데, 세르게이는 그런 가족과의 재회를 위해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발레에 더욱 전력을 쏟았다. 게다가 당시 우크라이나에서 발레를 한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고 남성과 발레를 향한 편견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어린 세르게이는 발레를 향한 애정과 자부심을 꿋꿋이 지탱해 나간다.

그러나 부모님의 이혼 후 단 하나의 꿈이었던 가족의 재결합이 더는 불가능해지자 세르게이는 방황하기 시작한다. 그는 온몸에 문신을 새기고 공연 전날 행방불명되거나 약물 스캔들에 휘말리는 등 반항기 어린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게다가 영국 로열발레단 최연소 수석 무용수에 발탁된 지 2년 만에 돌연 탈단을 선언하며 세간의 주목을 끈다. 사람들은 그런 세르게이를 두고 ‘발레계의 배드보이’라 떠들어대기 바빴지만, 사실 단순한 치기로 보이는 그의 행동 이면에는 예술가로서의 고뇌가 있었다. 그건 마치 <백야>의 모티프가 된 발레리노 미하일이 꿈꿨던 갈망과도 비슷하다. 젊고 유망한 천재 발레리노 세르게이에게 찾아온 고민과 방황은 ‘발레’라는 한계를 넘어 진정한 자기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그건 곧 더 높이, 더 자유롭게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기도 하다.

Sergei Polunin, ‘Take Me to Church’ by Hozier, Directed by David LaChapelle

영화 개봉에 앞서 2015년경 유튜브에 공개되어 많은 화제를 낳은 세르게이의 퍼포먼스 영상은 그에게 새로운 반환점이 되었다. 세계적인 사진작가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과 협업한 것으로, 아일랜드의 가스펠 싱어송라이터인 호지어(Hozier)의 노래 ‘Take Me to Church’에 맞춰 춤을 추는 퍼포먼스는 세르게이가 사실상 은퇴를 준비하며 촬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영상은 ‘문제아’, ‘반항아’라는 수식어 뒤에 가려져 평가절하되었던 세르게이 폴루닌의 특출난 재능을 오히려 제대로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세르게이 폴루닌 자신에게도 다시 한 번 춤에 대한 열망을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이미 전 세계에 공개된 퍼포먼스 영상이 영화 <댄서>를 장식하는 중요한 장면으로 삽입된 이유다.  

사람들이 세르게이 폴루닌의 공연을 보기 위해 2년 후로 예정된 공연 티켓을 예매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영화 <댄서>를 통해 세르게이의 아름다운 공연뿐 아니라 뭉클한 드라마를 동시에 마주할 것이다. 누구나 품어온 꿈과 삶에 대한 고민을 위로해줄 춤이 스크린 위에 황홀하게 펼쳐지는 모습을 그려보자. 2016년 개봉하여 외화 다큐멘터리 흥행 기록을 경신하며 45,000명의 관객수를 기록하였다.

영화 <댄서> 예고편

 

메인 이미지 <댄서>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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