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썬더(Little Thunder, @littlethunder), 그러니까 ‘작은 번개’라는 이름은 문소뢰(門小雷)라고 쓰고 Men Xiaolei라고 읽는 작가의 중국식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그는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홍콩 토박이다. 전통화가인 아버지를 둔 그는 1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첫 작품을 출간하며 이름을 알렸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림을 그렸다. 그는 ‘Little Thunder’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데뷔하자마자 국제만화전에서 입상했던 프랑스에서 만화책을 출간했고 일본에서도 그의 책이 팔린다. 다국적기업과 홍콩의 뮤지션들, 샵들과 무수한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이는 그는 홍콩의 갤러리에서 작업전을 열기도 하고, 신작을 출간하면 로컬잡지에 그의 인터뷰가 실린다. 또 작가의 아트포스터, 티셔츠, 핸드폰 케이스가 샵에서 판매된다. 그의 인스타그램은 홍콩의 한 젊은이가 살아가는 생생한 일상의 모습들로 가득하고, 한편 넘쳐나는 아름다운 여성들의 모습 또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욕망을 숨기지 못하는 표정의 소녀들이 섬세한 붓놀림으로 완성되어 가는 영상들은 몇 번을 돌려봐도 눈을 떼기 어렵다.

그가 작업하는 도구들은 연필과 세필 붓, 잉크와 물감에서 마커와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까지 다양하지만, 그가 그리는 그림들, 적어도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림들은 여성, 그중에서도 미소녀들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 붉은 입술, 숱 많은 눈썹과 속눈썹,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진 소녀들은 분명 아시아적 특징을 갖고 있으면서도 국적을 알아보기는 힘들다. 이 복고적인 소녀들은 일본의 쇼와(昭和) 아이돌이나 80년대 홍콩영화의 배우들처럼 드라마틱한 인상을 보여주면서 시간마저 흐려지게 한다. 이들의 강렬한 인상은 수동적이고 연약한 소위 전통적 ‘여성성’을 어필해야만 살아남는 요즈음 한국의 여성 아이돌과는 다른 느낌이다. 마르고 유아적인 몸매와 포즈보다는 신체의 굴곡을 강조한 그림 속 여성들은 언뜻 핀업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에로틱함을 숨기기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전시한다. 이들은 아련하거나 유혹적인 표정을 지을 때도 정면을 응시한다. 순종적이고 연약한 여성의 전형적인 판타지를 구현한 로프로 묶인 자세의 소녀들조차 홍콩의 여성 대상 성인용품샵을 위한 그림들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그림 속 여성들은 각자의 의도를 갖고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드라마를 펼쳐 보인다. 굵은 눈썹과 짙은 메이크업으로 잔뜩 멋을 부린 여성들은 한국의 90년대 커머셜 광고와 워킹우먼을 그린 드라마에 등장하곤 했던 당당한 여성들을 떠올리게 한다. 볼드한 메이크업, 거친 눈썹, 부풀린 헤어스타일과 과장된 어깨의 파워슈트가 패션계를 휩쓸던 어떤 시절이나, 워커를 신고 배꼽티를 입고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다”고 뉴스 인터뷰를 하던 바로 그 여성들. 이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 소녀, 무언가 갖고 싶어서 어떤 상황을 적극적으로 연기하는 여고생, 팔뚝에 문신한 어머니, 눈이 세 개 달린 여자아이, 근육질의 폴댄서들이다. 작가와 함께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인 업체들이 클라란스, 룩스, 슈에무라 같은 뷰티 브랜드들이라는 점은 분명 무언가 말해준다. 단지 작가의 소녀들이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녀들은 다양한 시대와 장소의 옷차림, 화장을 보여준다. 때때로 등장하는 귀기 어린 반인반신, 로봇 슈트를 입은 소녀들은 다양한 장르적 상상력을 발산한다. 오래된 것, 혼종적인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찾는 작가의 감성은 홍콩이라는 도시에서 자라난 토박이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작업 속에서도 홍콩은 도시 그 자체로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다. 청킹맨션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사람들로 만들어진 홍콩은 홍콩 출신 감독들이 영화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문화와 인종만 섞인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마저 뒤섞인 도시처럼 보인다. 홍콩은 지난 세기 악명 높았던 구룡채성(九龍寨城, 편집자 주- 영국령 홍콩 내에 존재했던 중화인민공화국 영토. 실제로는 양쪽 모두의 주권이 미치지 못한 특수지역이자 복잡다단한 거대한 무허가 건축물로 이루어진 슬럼 도시)이 공원으로 바뀌고 중국으로 반환되는 과정을 겪었다. 불과 20년 전의 일이다. 홍콩 반환이 1997년, 작가의 공식데뷔는 2001년이다.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호흡해 온 작가는 ‘우산 혁명’으로 알려진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한 지지의 입장을 보였고, 그즈음 미래 홍콩을 배경으로 한 만화를 작업했다. 역시 소녀들이 주인공이다.

스스로가 운동과 폴댄스를 즐기고 화장하길 좋아하는 작가는 자신과 닮은 여성들을 붓끝으로 완성해 나가는 절묘한 창작 과정을 촬영한다. 그의 과감하고 거침없는 붓놀림은 바로 그런 점에서 시원한 쾌감을 준다. 완성한 그림들은 전투적일 정도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으로 무장했다. 게다가 그는 다작하는 작가다.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그 과정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한다. 글머리에서 언급했듯 그는 일찍 붓을 잡았고 누구보다 빨리 데뷔했다. 자신의 재능을 스스럼없이 뽐내는 것이 사실 악덕보다 미덕에 가깝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고, 예쁜 것이 좋고, 꾸미고 가꾸는 일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자신을 사진으로 자랑하는 것이 나쁜 일이라면, 도대체 무엇이 좋은 일일까. 작가의 작업 과정, 작품들과 더불어 세련된 홍콩 젊은이의 자신만만한 삶도 궁금한 한국의 독자라면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방문하자.

 

Little Thunder 인스타그램

 

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