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음악’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의례적으로 홍대를 떠올린다. 허나 서울이 아닌 지방에도 묵묵하지만 치열하게 자신들의 음악을 펼쳐온 로컬 뮤지션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부산이다. 매번 경쾌한 멜로디 위에 저항적이고 날이 선 가사를 담아온 싱어송라이터 김태춘부터, 담담하지만 깊은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김일두, 소박한 감성의 포크 듀오 부산아들, 60년대의 서프뮤직과 90년대 미국 인디 록을 적절히 섞은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 세이수미(SAY SUE ME)까지. 부산에는 자체의 로컬 신을 든든히 뒷받침해주는 뛰어난 음악가들이 계속해서 활동 중이다.

김태춘 ‘일요일의 패배자’ 공연영상

가사에서도 알 수 있듯 ‘사람들은 쉽게 희망이란 것에 대해 얘기하면서 뭔가 잘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지만, 결국엔 어제의 패배자는 오늘도 패배하고 내일도 패배한다’는 김태춘 특유의 씁쓸한 위트가 어김없이 넘실댄다

김일두 ‘문제 없어요’ 공연영상

부산 뮤지션을 논할 때 반드시 떠올려야 할 이름, 포크 음악인 김일두의 1집 앨범 수록곡 '문제 없어요'. 공연 중 "우리 모두 행복합시다", "여러분 좋은 음악 듣고 천국 가세요"라는 말을 자주 하며, 현재 서울과 부산의 작은 카페와 클럽을 막론하고 라이브 공연을 하고있다

부산아들 ‘장전동 그 사람’ MV

포근한 어쿠스틱 멜로디와 따뜻한 노랫말로 시종 듣는 이의 마음을 적셔온 포크 듀오, 부산아들의 멤버 김신영이 지난 해 뺑소니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열심히 새로운 음악을 만들며 봄을 준비하던 중 4월 1일 거짓말처럼 하늘나라로 가버린 그를, 덩그러니 남겨진 음악으로나마 기억해본다

세이수미 ‘But I Like You’ 세민의 일러스트북 'Semin' 후원공연

2012년 결성한 서프(Surf) 성향의 록을 연주하는 부산의 4인조 밴드로,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음악 활동 중이다. 2016년 여름 불의의 사고로 반혼수 상태에 있는 드러머 강세민을 대신해 동갑내기 친구 케이시가 드럼을 맡고 있다. 멤버들은 텀블벅을 통해 강세민이 평소 그리던 그림을 모은 일러스트레이션북을 판매하는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으며, 현재는 후원이 마감된 상태다. 지난 해 2월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단편선과 선원들, 코가손, 김목인 등이 함께한 세민의 일러스트북 'Semin' 후원공연을 펼쳤다

 

지역 뮤지션들이 로컬에서도 서울 못지않은 수준의 음반 작업을 할 수 있는 데는 각 지역 음반 제작 시설의 공이 크다. 2015년 부산정보산업진흥원이 국비와 시비 20억을 들여 만든 '부산음악창작소'도 그중 하나. 지역 뮤지션들을 발굴해 육성하자는 취지 아래 꾸준히 음반제작 및 공연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부산음악창작소가 음원 제작을 지원하는 부산 신진 뮤지션들의 면면 또한 탄탄하다. 부산 앞바다의 정취를 한껏 머금은 이들의 음악을 천천히 듣고, 느껴보자.

 

1. 비나인(B9) <B9>

B9 ‘RESET’ MV

B9(비나인)은 베이스 및 보컬의 박주영과 드럼, 코러스를 맡은 정소라로 구성된 여성 듀오 밴드다. 일반적으로 여성 듀오라 하면 예상되는 섬세하고 가녀린 이미지의 사운드 대신, 강렬하고 거친 하드록 음악을 지향한다. 한때 ‘달콤씁쓸한’이라는 밴드 이름으로 활동하며 주로 밝은 분위기의 어쿠스틱 음악을 들려주던 ‘수줍은’ 과거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딱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록을 상징하는 대표적 악기인 기타 없이도, 단단하고 묵직한 베이스와 드럼, 매력적인 음색만으로 강렬한 로큰롤의 느낌을 빈틈없이 전달한다. <B9>은 비나인이 하드록으로 장르를 뒤튼 후 발표하는 첫 앨범으로, 트랙 하나하나에 가장 솔직한 내면의 모습과 그간의 치열한 고민을 고스란히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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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스트로너츠(Astronuts) <Pale Blue Dot>

아스트로너츠 ‘천문학개론’ MV

아스트로너츠(Astronuts)는 2014년, 밴드 '피버독스'에서 활동해온 이준수와, 이하람(드럼), 김동빈(기타), 2016년 새로 합류한 김상규(베이시스트)가 모여 결성한 록밴드다. 2016년 발표한 ‘Think About Us’와 ‘syncope’, 두 장의 싱글을 거쳐, 11월 첫 EP <pale blue dot>를 내놓았다.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뜻을 지닌 비밀스럽고 광활한 분위기의 ‘pale blue dot’ 앨범명과는 달리, 각 트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향한 간절한 고백을 담은 ‘All I Want Is’, 불타오르는 질투를 노래한 ‘404 (Room on fire)’, 모든 이야기의 종결을 의미하는 ‘I’m sorry, officer’까지. 앨범은 조그마한 점 하나에서 시작한 어긋난 관계가 어떻게 파멸에 이르는지 보여준다. 빈티지한 질감을 넘어 기묘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마저 풍기는 타이틀곡 ‘천문학개론’까지 재생하고 나면 아스트로너츠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에 기어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앨범 <Pale Blue Dot> 전체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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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더 매거스(The magus) <Flutter>

더 매거스 ‘Flutter’ MV

더 매거스(The magus)는 최정일(보컬, 기타), 윤성인(베이스), 최형우(드럼), 강영훈(기타)이 모여 결성한 4인조 록밴드다. 2016년 9월 부산 인터플레이에서 첫 공연을 했으며, 마침 부산 인디신을 대표하는 록밴드 '언체인드(Unchained)'의 리더 김광일의 눈에 띄어 진저레코드로 스카우트됐다. 작년 1월에 발표한 첫 싱글 <Flutter>는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대한 불만의 메시지를 담았다. 어딘가 복고적인 느낌이 흐르는 중독적인 멜로디 연주와 날카롭고 감각적인 보컬 또한 매력적이다. 더 매거스는 최근 부산의 공연장들을 돌며 활발히 라이브를 펼치고 있는 동시에 새로운 싱글 앨범도 틈틈이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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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버닝소다(Burningsoda) <A Mental Blow>

버닝소다 ‘Cutie Puppet’ MV

불타는 탄산이라는 뜻의 ‘버닝소다’는 박미소(보컬), 강재근(기타), 이정민(드럼)으로 구성된 혼성 듀오 밴드다.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장르를 해 보는 것이 목표라는 밴드의 말처럼, 작년 1월 발표한 첫 EP <A Mental Blow>는 이전에 발표한 밝은 분위기의 싱글 <Freedom>과 달리 음침하고 파괴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외톨이가 되어버린 현대인의 우울함과 공허함을 노래한 ‘Gloomy Friday’, 변해버린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담은 ‘나의 맘이 변했어’ 등 트랙마다 소극적이고 음울한 정서가 다분히 배어있다. ‘A Mental Blow’ 즉, 멘탈의 파괴라는 요소를 주제로 인간의 네거티브한 감정들을 엮어낸 버닝소다의 한층 성숙해진 음악 세계를 음반을 통해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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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음악창작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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