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컷’은 말하자면 TV나 영화의 하이라이트 컴필레이션이다. 서로 다른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을 편집하여 붙인 영상이라, 원래 장면의 의도와 다르게 패러디되어 코믹한 분위기를 풍기기도하고 특정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안나푸르나 픽쳐스가 6주년을 맞이하여 공개한 슈퍼컷에는 현재 예술영화 팬들에게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는 ‘안나푸르나 동문’들의 하이라이트가 담겨 있다. 이 영상은 안나푸르나 픽쳐스의 대표이자 설립자인 메간 엘리슨의 트위터를 통해 공개되었다.

메간 엘리슨은 안나푸르나 픽쳐스의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하는 인물이다. 2014년 11월, 대형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 소니의 이메일 유출 사건을 기억하는가? 유수 셀러브리티들을 향한 소니 임직원들의 ‘뒷담화’가 전 세계에 공개되었던 사건이다. 메간 엘리슨 역시 소니의 미움을 샀던 모양. 소니의 제작자 스콧 루딘이 그를 “(당시) 28세 미치광이 조울증 환자”라고 언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를 향한 비난인지 질시인지 모를 할리우드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1년 안나푸르나 픽쳐스를 설립한 이래 여성 제작자 최초로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에 <아메리칸 허슬>, <그녀> 두 편을 노미네이트 시키며 할리우드의 가장 핫한 제작자로 단번에 올라선 메간 엘리슨은 소니의 공격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1986년생 젊은 피다. 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지만, 오픈리 레즈비언이고, 공식 석상에 턱시도를 입고 나타나며 바이크와 스포츠카를 모는 사생활은 이미 유명하다. 2014년 포춘이 선정한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40세 이하 4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이처럼 큰 성과와 주목을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세계 7위의 부자인 오라클의 창립자 래리 엘리슨의 딸이라는 특이한 배경도 한몫한다. 오빠인 데이비드 엘리슨 역시 영화 제작자이다. 독립영화 제작자인 동생과 달리 <월드 워 Z>,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등 상업 블록버스터 영화를 주로 제작한다.

독특한 사람들이 다 모였다는 할리우드에서도 눈에 띄는 스토리를 가진 메간 엘리슨. 그러나 그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건 역시 영화를 보는 탁월한 안목, 끝까지 밀어붙이는 배포와 고집이다. 자본의 논리가 무엇보다 우선하는 할리우드에서, 누구도 선뜻 투자하지 않으려 했던 이 영화들이 모두 안나푸르나 픽쳐스와 메간 엘리슨의 든든한 지원하에 제작되었다. 결과적으론 안나푸르나의 뚝심이 맞았단 것을 증명한,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거머쥔 영화들이고 말이다.

 

1. <마스터>

The Master ㅣ 2012 ㅣ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ㅣ 출연 호아킨 피닉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에이미 아담스

안나푸르나 픽쳐스의 존재감을 확고히 한 영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회심의 프로젝트였으나, 투자를 받지 못해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 나타난 구세주가 바로 메간 엘리슨이다.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보고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에게 깊이 매료된 그는 여러 어려움에도 끝끝내 제작을 성사시켰고,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세상에 내보냈다. 호아킨 피닉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에이미 아담스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황무지처럼 황량한 인간의 마음에 한 줄기 빛처럼 나타난 절대자 ‘마스터’(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와 그에게 매혹당하고 또 의심하는 ‘순종자’(호아킨 피닉스)의 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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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프링 브레이커스>

Spring breakers ㅣ 2012 ㅣ감독 하모니 코린 ㅣ 출연 바네사 허진스, 셀레나 고메즈, 제임스 프랭코

미국 인디 영화계의 영원한 악동 하모니 코린 감독의 근작. 래리 클락 감독의 <키즈> 시나리오를 썼고, <검모>와 <줄리앙 동키 보이>로 더럽고 거칠고 음란하며 잔혹한 이미지를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담아내는 영화를 만들어냈던 그가 바네사 허진스, 셀레나 고메즈, 애슐리 벤슨 같은 미국 하이틴 스타들과 협업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영화는 단순하다. 봄방학(스프링 브레이크)을 ‘제대로’ 보내고 싶은 네 명의 소녀가 레스토랑을 털어 돈을 마련한 후, 마약과 섹스로 점철한 휴가를 보낸다는 내용. 형광 비키니를 입고 복면을 뒤집어쓴 총을 든 소녀들, 범람하는 청춘의 이미지, 스크릴렉스의 음악이 어우러진 이 정신없는 영화는, 누구를 데리고 어디서 무엇을 찍든 1990년대를 열광케 했던 하모니 코린의 미학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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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로 다크 서티>

Zero Dark Thirty ㅣ 2013 ㅣ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 ㅣ 출연 제시카 차스테인, 조엘 에저튼

<허트 로커>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사상 첫 여성 감독이 된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영화. <제로 다크 서티>는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한 10년간의 작전을 CIA요원 ‘마야’(제시카 차스테인)를 중심으로 그려낸 영화다. 북미 박스오피스 1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인공 제시카 차스테인이 여우주연상을 받는 호조를 보이며 비글로우의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을 기대하게끔 했으나, 결국 무산되었다(일각에선 정치적으로 민감한 영화 내용으로 인해 수상에 실패했다고 분석한다). <제로 다크 서티>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다룬 보통의 영화와 달리 균형 잡힌 시선과 섬세하게 표현된 CIA 요원들의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액션 역시 빠뜨릴 수 없는 매력. 디트로이트 폭동을 다룰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차기작 역시 안나푸르나 픽쳐스에서 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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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녀>

Her ㅣ 2014 ㅣ 감독 스파이크 존즈 ㅣ 출연 호아킨 피닉스, 스칼렛 요한슨, 에이미 아담스, 루니 마라

국내 개봉 당시 36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아트버스터(예술영화+블록버스터)’란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한 영화. 외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대필작가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 지능 운영체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으로, 스파이크 존즈 감독 특유의 섬세한 감성을 한껏 담아낸 영상미가 돋보인다.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어려움을 느끼는 쓸쓸한 현대인의 초상을 편안하면서도 몰입도 있게 연기해낸 호아킨 피닉스와 단 한 번의 출연도 없이 그저 목소리 연기만으로 로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스칼렛 요한슨의 하모니가 사랑스럽고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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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폭스캐처>

Foxcatcher ㅣ 2014 ㅣ 감독 베넷 밀러 ㅣ 출연 채닝 테이텀, 스티브 카렐, 마크 러팔로

미국 굴지 재벌의 상속인 존 듀폰이 레슬링 금메달리스트를 총으로 살해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베넷 밀러 감독의 영화. 채닝 테이텀이 같은 레슬러지만 보다 더 높은 성취를 거둔 형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를 한없이 사랑하고 질투하는 동생 레슬러 ‘마크 슐츠’역을, 코믹 감초 연기의 대명사와도 같았던 스티브 카렐이 어둡고 트라우마에 가득 차 결국 극단적 범죄를 저지르고 마는 듀폰 가문의 상속인 ‘존 E. 듀폰’을 맡았다. 마치 한 편의 신화를 들여다보는 듯 강한 스토리, 밀도 높은 침묵이 돋보이는 <폭스캐처>는 <카포티>, <머니볼>에 이은 베넷 밀러 감독의 세 번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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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리의 20세기>

20th century women ㅣ 2016 ㅣ감독 마이크 밀스 ㅣ 출연 아네트 베닝, 그레타 거윅, 엘르 패닝

각 세대를 대표하는 세 명의 여성 배우 아네트 베닝, 그레타 거윅, 엘르 패닝의 캐스팅 소식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영화. 1979년 산타바바라를 배경으로 세 명의 여성이 10대 소년 ‘제이미’에게 인생과 사랑, 성과 자유를 가르치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비기너스>의 마이크 밀스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함께 맡았다. 북미 개봉 당시 호평을 받았고, 지난 해 국내 개봉되어 4만 5천명의 관객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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