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귀여운 반달미소와 치즈 없이 못사는 한결 같은 취향을 지닌 대머리 아저씨. 그런 아저씨를 말없이 일거수일투족 챙기기 바쁜 총명한 강아지. 이 두 캐릭터를 과연 싫어하는 이가 있을까? 1990년대 추억의 애니메이션으로 꼽히는 <윌레스와 그로밋(Wallace & Gromit)>의 주인공들이다. 전세계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현재까지도 단연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레전드로 꼽히는 <월레스와 그로밋>은 에피소드마다 은근한 스릴을 가미한 기발한 이야기로 국내 팬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 2010년에 공개한 최신 에피소드 이후 아직 후속편 소식이 없는 것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손수 빚은 점토를 하나하나 움직여 촬영하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특성상 상당한 제작기간이 소요되는 탓이라 아쉬움을 달래 보며 추억의 <월레스와 그로밋>을 방영 및 개봉 순서대로 2주에 걸쳐 다시 감상해보자. 잊고 있던 장면들은 물론 말랑말랑한 점토 캐릭터들은 또 봐도 역시 사랑스럽다.

 

1. <화려한 외출(A Grand Day Out)>(1989)

휴일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월레스는 마침 치즈가 다 떨어진 김에 달에 가기로 한다

오늘날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아드만 스튜디오와 <월레스와 그로밋>을 있게 한 첫 번째 작품. 1989년 제작되어 영국 BBC에서 처음 방영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곧 여러 다른 나라에서도 방영되어 흥행했다. 달이 치즈로 되어있다는 기막힌 설정으로 시작된 에피소드. 치즈 없인 크래커 한 입도 못 먹는 ‘치즈 덕후’ 월레스가 그로밋과 함께 직접 로켓을 만들어 달에 간다는 내용이다. 월레스는 뭐든 만들어내는 똑똑한 발명가지만, 꼭 뭔가 하나씩 빠트리거나 사고를 친다. 물론 그 뒷수습은 전부 사람보다 똑똑한 강아지 그로밋의 몫. 다행히 큰 사고가 없는 <화려한 외출> 편에서는 윌레스가 치즈를 먹는 장면에 주목해보자. 특유의 말랑말랑한 질감을 지닌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한껏 보여주는 장면으로, 월레스가 달에서 치즈를 잘라 먹으면 그 노란 치즈, 아니 점토의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보는 이의 입 안까지 전해진다.

<화려한 외출> 예고편

참고로 <월레스와 그로밋>을 총괄하는 닉 파크(Nick W. Park) 감독은 같은 해 제작한 단편 클레이애니메이션 <동물원 인터뷰>(원제: Creature Comfort)로 제63회 아카데미상 단편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했다. 어딘가 윌레스와 그로밋을 닮은 동물들이 영국식 발음을 쉴 새 없이 내뱉는다.

<동물원 인터뷰>

 

2. 〈전자바지 소동(The Wrong Trousers)>(1993)

월레스가 생일 선물로 준 전자바지가 발단이 되어 급기야 그로밋은 집을 떠난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단연 그로밋이다. 그로밋의 생일 선물을 위해 ‘전자바지’를 발명한 월레스는 생활비가 부족해진 탓에 하숙을 놓게 되고 낯선 펭귄을 집으로 맞이한다. 유독 월레스에게만 친절한 펭귄이 어딘가 미심쩍은 그로밋은 펭귄을 경계하지만, 월레스는 오히려 그런 그로밋의 마음도 모른 채 펭귄과 가까워지면서 수상한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더욱 디테일해진 소품과 동작들은 물론, <월레스와 그로밋>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오프닝 신도 이 편부터 등장한다. 30분짜리 단편임에도 다채롭고 탄탄한 스토리가 돋보인다. 특히 후반부에 펼쳐지는 장난감 기차레일 추격전은 액션물에 버금가는 긴박감을 선사하는 명장면이다.

 

3. 〈양털도둑(A Close Shave)>(1995)

그로밋이 양털도둑으로 지목돼 감옥에 갇혔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눈물 짓는 월레스와 착한 양들

세 번째 에피소드인 〈양털도둑〉 편은 거의 액션 추리물이라 해도 좋다. 마을에 미스터리한 양떼 실종 사건이 벌어지는 가운데, 억울하게 양털 도둑으로 잡혀간 그로밋을 탈출시키기 위한 기발한 작전들이 펼쳐진다. 특히 이번 편에 첫 등장한 ‘숀’이라는 어린 양 캐릭터는 이후 큰 호응을 얻어 아드만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또 다른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는데, 덕분에 영국의 국민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에는 숀의 이야기를 전격으로 내세운 장편 애니메이션 <숀더쉽>이 개봉했다. 귀여운 양떼들과 월레스가 탑을 쌓은 채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추격전 역시 명장면 중의 명장면. 1997년에는 그동안 제작한 단편 세 편을 묶어 극장 개봉했고, 국내에도 정식으로 소개되어 더욱 사랑을 받았다.

위의 세 단편은 ‘월레스와 그로밋’하면 떠오르는 대표작들이다. 그러나 정작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또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가장 최근의 월레스와 그로밋일 터. 다음 편에서는 2000년대에 찾아온 <월레스와 그로밋>을 소개한다. 원작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지만, 보고 또 봐도 재미있는 이 아저씨와 강아지의 모험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월레스와 그로밋 공식 홈페이지
이미지 출처 = IMB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