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재명, 강승원, 정현수. 세 사람은 각자 록 밴드, TV 음악프로그램, 영화 음악 분야에서 오래 활동하다 마침내 2017년 3월, 본인의 이름으로 첫 솔로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갈고닦은 실력이 온전한 개성으로 빛나는 이들의 1집을 함께 보고, 듣고, 느껴보자.

* 발매 순으로 작성

 

1. 도재명 <토성의 영향 아래>(2017.03.14)

2000년 슈게이징 밴드 Zzzaam(잠)의 드러머로 데뷔, 2005년 밴드 로로스(Loro's)를 결성하고 보컬과 키보디스트로 활동해온 도재명이 첫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그는 2015년 9월부터 11월까지 매달 발표한 싱글 ‘미완의 곡’, ‘시월의 현상’, ‘오늘의 일기’를 포함한 총 13개 트랙을 본인의 1집 앨범에 담았다. 피아노, 오케스트라, 합창단, 하몬드 오르간 같은 다양한 악기 구성이 돋보이며, 앨범은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도재명 ‘토성의 영향 아래’(feat. 이자람) MV
도재명 ‘시월의 현상’(feat. 남상아) MV

시작은 잔잔한 피아노 연주곡 ‘Sonate de Saturne'이다. 이어서 흘러나오는 타이틀곡 '토성의 영향 아래(feat. 이자람)'는 약한 드럼 비트를 배경으로 여러 인물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등장해 곡을 끌어 간다. 호소력 있는 이자람의 노래가 감성을 더하고, 특히 5분이 지날 무렵부터 기타와 신디사이저가 사운드를 장악하며 고조되는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3번째 트랙 'Diaspora’는 그가 상계동 아파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만든 연주곡이다. 재개발사업으로 쫓겨난 주민들의 처지처럼 긴박하고 비장한 사운드가 느껴진다(신호음처럼 들리는 소리는 ‘도와주세요’라는 의미를 가진 모르스 부호다). 이외에도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 만든 ‘미완의 곡’이나 소외된 이들의 고달픔을 담은 ‘오늘의 일기’, ‘여로에서’처럼 각각의 곡은 묵직한 서사를 담고 흘러간다. 앨범 제목은 수전 손택의 수필집 <우울한 열정(Under the Sign of Saturn)>(2002)에서 따왔다.

 

2. 강승원 <강승원 일집>(2017.03.02)

강승원이라는 이름은 유명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가 만든 노래를 잘 안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나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유명한 초코파이 CM송이 대표적이다. 그는 1994년 그룹 우리 동네 사람들의 동명 앨범에 실린 노래 대부분을 만들었고, TV 음악프로그램 <이소라의 프로포즈>(1996~2002), <이하나의 페퍼민트>(2008~2009)를 거쳐 현재는 <유희열의 스케치북>(2009~)에서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이렇듯 이름보다는 작품으로 존재를 알리던 그가 50대 후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데뷔앨범 <강승원 일집>을 발표했다.

자이언티가 부른 ‘무중력’ MV. <강승원 일집> 수록곡으로 성시경과 '안드로메다'를 함께 부른 배우 정유미가 출연했다
강승원 ‘나는 지금’ 라이브 영상. 앨범에는 이적이 부른 버전과 그가 부른 버전으로 나뉘어 있다

첫 앨범에서도 그는 슬쩍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약 40년 동안 써온 노래들을 선후배 가수들이 대신 부르게 한 것. 가창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잔잔한 발라드풍의 ‘나는 지금’과 일렉 기타 연주가 화려한 ‘달려가야 해’에서도 그는 담담하고 기교 없는 목소리로 중후한 매력을 전한다. 여기에 2014년 4월부터 <강승원 1집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적, 윤도현, 윤하, 전인권 같은 개성 뚜렷한 가수들의 목소리는 듣는 즐거움을 더한다. 자이언티의 신곡이라 해도 아무런 이질감이 없는 '무중력'이나 예능에서만 소비되기 아까운 목소리를 가진 존박의 매력을 보여주는 '술'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앞으로 그가 ‘음악가’로서 좀 더 자주 대중 앞에 얼굴을 비추길 기대하며, 강승원의 늦은 데뷔를 축하해본다.

 

3. 정현수 <The Color of Love>(2017.02.28)

정현수 음악감독은 선명한 멜로디와 간결한 편곡, 담백한 연주로 꾸준히 작품 영역을 넓혀온 작곡가다. 2009년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를 시작으로 <이끼>(2010),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베를린>(2013), <변호인>(2013), <4등>(2015) 등 약 20여 편의 영화 음악을 만들었다. 올해 2월 28일에는 본인의 이름으로 첫 작품집 <The Color of Love>을 발표했다. 앨범은 새롭게 편곡한 영화 OST 4곡과 새로 작업한 5곡이 실렸다.

<신세계> 메인 테마곡 ‘Big Sleep’은 이후 코미디 프로그램과 치킨 광고에 등장하며 널리 알려졌다. 본 앨범에서는 스트링과 클라리넷 연주를 좀 더 차갑게 연주하였고, 피아노 기교도 가미했다
<변호인> 엔딩 테마곡 ‘99인의 변호인’. 영화에서는 클라이맥스를 위해 타악기, 합창, 스트링 스타카토 등 많은 연주가 들어갔지만, 편곡은 좀 더 단순하고 담백하게 바뀌었다

기존 삽입곡들은 감독의 손을 거쳐 더욱 섬세한 사운드로 재탄생했다. 영화 <백야행>에 등장한 '막다른 길'은 바이올린 옥타브를 한 음 높여 웅장하고 비장한 느낌을 강조했고, <돌연변이> 삽입곡인 ‘삶의 무게’는 기존과 달리 탱고 느낌의 신나는 분위기로 편곡했다. 개인 작업물도 흥미롭다. 타이틀곡 'The Color of Love'는 그가 아내에게 프러포즈할 때 만들었던 연주곡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자랑하며, 반대로 금관악기인 브라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폭풍 속으로’는 전쟁이나 액션 영화에 어울릴 만큼 진취적이고 웅장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외에도 현악기, 피아노, 클라리넷 같은 다양한 악기 구성은 곡마다 색다른 느낌을 부여하며 정현수 음악감독의 색깔을 또렷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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