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부터 정력적으로 활동해온 독일 태생 사진가 볼프강 틸만스는 일찍이 홈페이지를 활발히 운영해왔지만, 그 외의 소셜 미디어를 그렇게 이용한 적은 없었다. 그는 홈페이지에 전시 일정과 인터뷰, 기사들을 싣고, 비정기적으로 발간하는 소책자들은 다운받아 볼 수 있도록 pdf 형식으로 공개해 놓았다. 업데이트가 잦은 홈페이지는 작가에 대한 정보를 얻기에 충분한 공간처럼 보였다. 또 그는 활동반경이 넓으며 전시도, 인터뷰도 많이 하는 작가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굳이 사적인 성격의 다른 매체를 통해 자기 의견을 드러낼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지 않았던 이들에게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존재만으로도 뉴스였다. 많은 팬이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고 애정을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계정에 정물 사진 몇장을 올린 채 인스타그램 업데이트를 그만두었다. 홈페이지 업데이트는 평소처럼 성실했고, 유명인들을 사칭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많은 만큼 이 계정도 약간의 의구심을 남긴 채 그대로 멈췄다. 그러던 2015년 여름, 이곳이 볼프강 틸만스의 계정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사진들이 삭제되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이란의 핵 협상 합의 문제를 다룬 온라인 기사를 자른 이미지가 업데이트되었다. 몇장의 신문 스크랩 이미지, 문서의 파편들이 올라온 그의 계정은 조금씩 업데이트될수록 2000년대 작가가 직접 자신의 전시장에 연출한, 신문이나 잡지의 조각들을 스크랩하여 사진과 함께 전시하곤 했던 광경을 연상케 했다.

자신의 사진과 수집한 인쇄물들을 조합, 연출하는 아카이브적 전시 형태를 종종 사용하며 입장을 드러내 온 볼프강 틸만스는 여러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숨기지 않고, 세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작업의 중요한 한 축으로 삼아온 작가다. 길거리의 노숙자, 키스하는 동성애자들과 행진하는 시위대를 촬영한 사진들도 사진집에 여러 차례 실렸고 2007년에는 에이즈 예방 활동가들과 매뉴얼북을 제작했으며, 2011년에는 BBC와 협업하여 아이티 재난 현장을 촬영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브렉시트 투표가 벌어지던 올해 그의 피드는 가장 활발하게 업데이트되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그는 ‘EU 캠페인’의 일환으로 자신의 사진을 활용하여 투표를 독려하는 포스터와 티셔츠를 만들고 홍보물을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그는 1990년대 독일,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성 소수자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을 촬영한 사진들로 이름을 알렸지만 이후 다양한 주제들을 섭렵했다. 소수 매거진들과의 초기 작업 또한 책과 잡지 페이지라는 인쇄물의 형식과 물성을 이용한 전시(제시) 틀거리의 실험이었다고 회고하는 작가는, 세계 곳곳의 현상들을 기록하듯 촬영하고 배치한다. 그가 이동하며 촬영한 풍경과 인물들은 점점 종류와 규모가 방대해지는 중이다. 그중에는 특정한 주제의 오브제들을 촬영하여 배치, 출판/전시한 사진들도 있지만, 한편에는 외부의 규칙이나 형식보다 헐렁한 주제 아래 작가의 리듬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집합체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는 전시와 사진집도 존재한다. 작가의 리듬, 혹은 개인적 법칙을 따르는 아카이브에 가까운 이들 결과물은 분절되고 혼재하는 이미지, 정보들을 일상적으로 수집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구미에 맞도록 변환하여 보는 것에 익숙한 현재의 소셜 네트워크 사용자들에게 낯설지만은 않다. 작가가 인스타그램 피드의 구성을 의도적으로 꾸몄는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때로 삭제하거나 추가하여 자신의 피드를 꾸밀 때를 돌이켜보면 작가의 피드에 어떠한 의도도 없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물론 작업의 결과물을 구성할 때와 그 태도는 큰 차이가 있겠으나, 그의 피드를 들여다보는 데에서 어떤 연관성, 생각의 실마리 정도를 찾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그를 팔로우하는 유저들에게 큰 즐거움이다.

고요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작가의 인테리어, 정물 사진을 즐기는 관람자들에게는 또 다른 이슈를, 또 그의 발언들에 동의하는 이들에겐 읽고 즐길 거리를 발견하게 하는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다소 투박하게 보이더라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시대의 어떤 아름다움들을 찾아낸, 찾아내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자신의 새로운 음원(그렇다, 음반이다.)이나 밴드(‘새일럼Salem’)의 신작 앨범 홍보, 작가와 이슈들을 소개하는 게시물들이 브렉시트 이후에도 늘어나는 중이니 찾아가 보자.

 

볼프강 틸만스 인스타그램
볼프강 틸만스 홈페이지

 

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