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미국 독립영화를 개척하고 오늘날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자리 잡은 짐 자무쉬(Jim Jarmusch) 감독의 초기작을 돌아보았다. 국내에 정식 개봉하지 않은 자무쉬의 데뷔작 <영원한 휴가>, 대표작 <천국보다 낯선>과 <커피와 담배>를 포함한 총 일곱 편의 영화를 온라인에서 만날수 있다. 인간의 외로움과 따뜻함, 대도시의 삭막함과 위로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짐 자무쉬의 초기영화 7편에 관한 소개와 더불어,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 깨알 정보들을 함께 묶어 봤다.

 

짐 자무쉬 감독은?

1980년대 중반 '뉴욕 인디'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이다. 본래 시인을 꿈꾸며 콜롬비아대학 영문학부에 입학했지만, 프랑스 파리 유학 중 시네마테크에서 유럽 거장 감독들의 영화를 만나고 약 1년간 빠져 살면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뉴욕대학원 영화학부에 입학했고, 재학 시절 첫 장편 영화 <영원한 휴가>(1980)를 만들었다. 이후 단편과 장편, 흑백과 컬러, 유럽 예술영화와 미국 대중문화를 넘나들며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과 세련된 영상미, 독창적인 스토리를 구축해왔다.

자무쉬의 작품은 대게 후기 산업사회를 배경으로 인간이 느끼는 고독감, 소외를 다루었으며, 등장인물은 유랑자, 여행자, 이민자가 많다. <미스테리 트레인>(1989)이나 <지상의 밤>(1991)처럼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한 작품도 꽤 있다. 펑크와 록 음악에 관심이 많아 이기 팝(Iggy Pop), 톰 웨이츠(Tom Waits) 같은 뮤지션과 다수 작업을 했고, 다큐멘터리 <펑크록 연대기>(2005)와 <조 스트럼머>(2007)에 출연했으며, 최근에는 미국의 록 밴드 스투지스(The Stooges)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김미 데인저>(2016)를 연출했다. 

 

*작품은 시간순으로 나열

<영원한 휴가>

Permanent Vacation | 1980 | 미국 | 75min | Color | 출연 크리스 파커, 레일라 가스틸, 존 루

찰리 파커를 좋아하는 뉴욕의 젊은 부랑자 '앨리 파커'(크리스 파커)는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빈민촌을 돌아다니며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본인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누구를 만나도 외로움을 쉽게 지우지 못한다. <영원한 휴가>는 짐 자무쉬가 스물일곱에 만든 데뷔작으로 감독이자 배우, 자무쉬의 아내인 사라 드라이버가 등장한다(이후 사라는 <천국보다 낯선>을 제작, 영화에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영화의 원제는 The Angels의 노래 'My Boyfriend's Back' 가사에서 가져왔고, 극 중 앨리 파커가 낯선 여자의 차를 훔쳐 되팔 때 차 안에서 흘러나온다. 마지막 장면은 샹탈 애커만 감독의 <집에서 온 소식>(1976) 엔딩을 오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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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 1984 | 미국, 서독 | 89min | B&W |출연 존 루리, 리차드 에드슨, 에스터 벌린트

제1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1984년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과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 수상작. 뉴욕 빈민가의 낡은 아파트에 사는 ‘윌리’(존 루리)에게 어느 날 사촌 여동생 ‘에바’(에스터 벌린트)가 찾아온다. 윌리는 에바를 성가셔 하지만 10일이 지나 에바가 떠날 무렵이 되자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낀다. 1년 후, 윌리는 친구 ‘에디’(리차드 에드슨)와 함께 에바를 만나러 클리블랜드로 무작정 떠난다. <천국보다 낯선>은 '신세계(The New World)', '1년 후(One year Later)', '천국(Paradise)'으로 3막 구성을 취한다. 자무쉬의 절친한 감독인 빔 벤더스는 <사물의 상태>(1982)를 만들고 남은 40분가량의 필름을 그에게 주었고, 이를 토대로 <천국보다 낯선>(1984)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만들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윌리와 에디가 핫도그 가게에서 일하는 에바를 만나는 장면에서는 짐 자무쉬가 비니를 쓰고 핫도그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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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 바이 로우>      

Down by Law | 1986 | 미국, 서독 | 107min | B&W | 출연 톰 웨이츠, 존 루리, 로베르토 베니니

짐 자무쉬의 세 번째 장편. '잭(Zack)'(톰 웨이츠)과 '잭(Jack)'(존 루리)은 각자 다른 죄목으로 뉴올리언스의 감옥에 들어온다. 이후 영어를 잘 못 하는 이탈리아인 '밥'(로베르토 베니니)까지 한 방을 쓰면서 세 사람은 일시적으로 가까워진다. 이들은 사소한 말싸움과 갈등 끝에 탈옥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짐 자무쉬 스스로 “네오-비트-누아르-코미디” 혹은 “동화 같은 상상의 이야기”라고 일컬은 영화. 극중 등장하는 이탈리아 여성은 로베르토 베니니의 실제 부인이며, 세 주인공이 토끼를 잡아 구워 먹는 장면에서 로베르토는 토끼에 얽힌 일화를 말하는데 이는 그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쓰고 즉흥으로 연기한 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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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트레인>    

Mystery Train | 1989 | 미국, 일본 | 110min | Color | 출연 나가세 마사토시, 니콜레타 브라스키, 스티브 부세미

미국 테네시 주 멤피스를 배경으로 같은 시간에 일어난 3개의 사건을 다룬 옴니버스 영화.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하는 일본인 커플 이야기, 비행기 운항 문제로 발이 묶인 한 이탈리아 여자 이야기, 술김에 범죄를 저지르고 모텔로 숨어든 세 남자의 이야기가 차례로 펼쳐진다. 사건이 벌어질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Blue Moon’이며, 라디오 DJ 역은 톰 웨이츠가 맡았다. 그는 앞서 <다운 바이 로우>에서 수감 전 라디오 DJ로 활약하는 연기를 펼쳤다. <미스터리 트레인>은 일본의 전자회사 JVC가 미국에 세운 라르고 엔터테인먼트(Largo Entertainment)가 처음으로 제작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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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밤>

Night On Earth | 1991 | 프랑스, 영국, 독일 | 128min | Color | 출연 제나 롤랜즈, 위노나 라이더, 아민 뮬러-스탈

짐 자무쉬의 다섯 번째 장편. LA, 뉴욕, 파리, 로마, 헬싱키를 배경으로 택시 기사와 손님들의 대화를 다룬 옴니버스 영화. LA에서는 나이 든 연예인 매니저 '빅토리아'(제나 롤랜즈)와 어린 기사 ‘코키’(위노나 라이더)가 만나고, 파리에서는 시각장애인 여성(베아트리체 달)과 흑인 기사(아이작 드 뱅콜)의 짧은 교감이 오가며, 헬싱키에서는 슬픔에 잠긴 승객들을 위로하기 위해 기사(마티 펠론파)가 본인의 기구한 사연을 고백한다. 자무쉬는 <지상의 밤> 시나리오를 8일 만에 썼고, 영화의 원제는 <lanewyorkparisromehelsinki(엘에이뉴욕파리로마헬싱키)>였다고 한다. 로마 택시 기사 역의 로베르토 베니니는 <다운 바이 로우>에 이어 이 작품에서도 즉흥으로 대사를 만들어 연기했다. 헬싱키 택시 기사와 술에 취한 승객은 각각 ‘Mika’와 ‘Aki’로 자무쉬가 존경하는 카우리스마키(Kaurismaki) 형제 감독의 이름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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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맨>                

Dead Man | 1995 | 미국, 독일, 일본 | 121min | B&W | 출연 조니 뎁, 개리 파머, 크리스핀 글로버

자무쉬의 첫 서부극. 클리블랜드에서 서부 머신 타운으로 일을 구하러 온 '윌리엄 블레이크'(조니 뎁)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아 총격 끝에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상처를 입고 길을 헤매던 그는 '노바디'(게리 파머)라는 괴짜 인디언을 만나고, 인디언은 그를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영혼이라고 믿는다. 한편, ‘존 디킨스’(로버트 미첨) 사장은 죽은 아들(가브리엘 번)의 복수를 위해 인간 사냥꾼 세 명을 고용하고 현상금을 걸어 그를 뒤쫓게 한다. 조니 뎁과 사냥꾼 역으로 등장한 이기 팝이 <사랑의 눈물>(1990), <아리조나 드림>(1992)에 이어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영화. 인디언 역을 맡은 게리 파머는 훗날 같은 역할과 이름으로 자무쉬의 <고스트 독>(1999)에 다시 출연했다. 20세기 영화사를 풍미한 로버트 미첨(Robert Mitchum)의 유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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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

Coffee and Cigarettes | 2003 | 미국, 일본, 이탈리아 | 97min | B&W | 출연 로베르토 베니니, 스티브 부세미, 빌 머레이, 케이트 블란쳇, 이기 팝, 톰 웨이츠
© 2003 Metro-Goldwyn-Mayer Studios Inc. All Rights Reserved.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11개의 단편으로 묶어 만든 영화로 그간 자무쉬의 작품에 등장했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커피와 담배>는 자무쉬가 17년 동안 작업한 결과물이다. 가령 로베르토 베니니와 스티브 부세미가 출연한 에피소드는 1986년에, 톰 웨이츠와 이기 팝이 출연한 에피소드는 1995년에 만들었다. 에피소드 <Delirium>에 등장하는 힙합 그룹 우탕 클랜(Wu-Tang Caln)의 멤버 RZA와 GZA는 커피를 마시지 못해 유일하게 차를 마신다. 혼성 듀오 밴드 The White Stripes가 출연한 에피소드 <Tesla>에서는 벽에 걸린 초상화를 유심히 보자. 미국의 영화배우 리 마빈으로, 짐 자무쉬가 창립한 ‘The Sons of Lee Marvin’*을 안다면 보자마자 웃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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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ns of Lee Marvin- 짐 자무쉬가 만든 비밀조직으로 배우 리 마빈처럼 긴 얼굴과 넓은 이마를 가진 예술가들이 모였다. 소속 멤버는 톰 웨이츠, 존 루리, 닉 케이브, 닐 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