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Time Slip)’.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 말을 무척 자연스럽게 써 왔다. 시공을 초월해 현재의 앞뒤를 여행하는 건 바꾸고 싶은 과거, 기대하고 싶은 미래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일 터.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소설, 만화, 영화들이 넘치는 이유다. 그중 일본을 주목해보자. 사실 ‘타임슬립’이란 말도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가 1994년에 발표한 <5분 후의 세계>에서 처음 사용해 보편화되었을 만큼, 일본인들에게 ‘시간여행’이란 극상의 판타지이자 가장 많이 언급하는 문화예술의 소재 중 하나다. 특히 펜만 굴리면 상상 그대로 재현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원초적 상상력을 자랑하는 만화 쪽은 더할 수밖에. 세계 아티스트들의 아이디어 원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일본의 만화 시장에서, 타임슬립물은 이미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리고 영화는 타임슬립 만화를 좀 더 사실적으로 구체화하는 또 다른 매체. 일본 타임슬립 만화를 영화화한 사례를 전한다. 만화가 나은지 영화가 나은지 판단하는 건 보는 이의 몫이다.

 

타임슬립 미스터리 <나만이 없는 거리> 

僕だけがいない街, The Town Where Only I Am Missing, 2016ㅣ감독 히라카와 유이치로ㅣ출연 후지와라 타츠야, 아리무라 카스미

산베 케이의 원작 만화는 3년 연속 일본만화대상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 받음과 동시에 수많은 만화 팬들의 사랑도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올해 초 일본에서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총 12부작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은 원작을 해치지 않는 내용과 훌륭한 연출로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런 만큼, 영화화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 팬들의 관심과 기대, 반면 우려 또한 높았던 것도 사실. 과연 만화가 가진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영화에도 잘 담아냈을지 확인해보자.

만화가의 꿈을 가진 청년 사토루는 위기의 순간 과거로 되돌아가는 타임루프 능력을 발견한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위기에 빠진 사토루는 시간을 거슬러 18년 전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가게 되고, 사건과 연관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랑하는 이들을 구하기 위한 타임루프를 시작한다. 촘촘하게 구성한 원작 만화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가운데, 과연 영화 속 미스터리는 어떻게 해결될지 확인해보자.

<나만이 없는 거리> 예고편

 | 영화보기 | 옥수수 | N스토어 | 유튜브

 

고대 로마와 일본의 공중목욕탕을 오가는 남자 <테르마이 로마이>

テルマエ・ロマエ, Thermae Romaeㅣ2012ㅣ감독 타케우치 히데키ㅣ출연 아베 히로시, 우에토 아야

앞서 동명의 만화 원작 영화 <노다메 칸타빌레>를 연출한 적 있는 타케우치 히데키 감독답게 다시 한번 만화를 영화로 담는 데 성공했다. 무려 800만부 판매를 돌파한 초대형 베스트셀러 만화, 야마자키 마리의 <테르마이 로마이>는 영화로 개봉하자마자 3주 연속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원작 만화의 기발한 스토리와 재미가 실사영화에서도 빛을 발한 것. 고대 로마의 공중목욕탕 '테르마이' 건축설계사인 루시우스가 우연히 일본 현대 대중목욕탕으로 타임슬립한다는 이야기는 과연 목욕 문화가 발달한 나라, 일본다운 설정이다. 황당하리만큼 코믹한 설정들이 영화의 포인트. 특히 일본 최고의 미남 배우 아베 히로시의 동서양 어디에 내놔도 자연스레 동화되는 외모, 위화감 없는 진지한 코믹 연기가 영화의 묘미를 잘 살려냈다. 만화, 영화 어느 것이든 로마와 일본 사이의 타임슬립은 목욕만큼이나 만족스러울 것이다.

<테르마이 로마이> 예고편

ㅣ영화보기ㅣ수수N스토어유튜브

 

10년 후의 나로부터 받은 편지 <오렌지>

オレンジ, orangeㅣ2015ㅣ감독 하시모토 미츠지로ㅣ출연 츠치야 타오, 야마자키 켄토, 류세이 료

2015년 일본에 개봉한 영화 [오렌지]는 누적 판매 약 400만부의 인기 만화책 [오렌지]가 원작이다. 꾸준한 원작 인기에 힘입어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 올해 7월부터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방영하고 있다. 한편 영화는 원작 만화의 인기에 비해 미미한 관객수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오렌지] 속 타임슬립은 미래의 26살 나호가 16살의 나호에게 보낸 편지로 시작된다. 편지에는 ‘나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길 바란다’는 메시지와 함께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적혀 있다. 16살의 나호가 편지에 적힌 대로 일어날 일을 하나씩 바꿔 나가는 이야기가 가케루와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조금 뻔한 듯한 타임슬립 소재지만, 가끔씩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청춘의 이야기에 끌릴 때가 있다. 국내 미개봉.

<오렌지> 예고편

애니메이션 [오렌지] 1회 하이라이트 영상보기

 

일본 에도시대로 간 현대 고교생들 <막부 고교생>

幕末高校生, Time Trip Appㅣ2014ㅣ감독 리 토시오ㅣ출연 타마키 히로시, 이시하라 사토미

2014년 일본에서 개봉한 [막부 고교생]은 제1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는데, 이점에서 영화의 분위기를 추측해볼 수 있다. 관객들의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릴 만큼 영화는 누군가에겐 유치한 코미디물이고, 누군가에겐 ‘판타스틱’한 개성을 가진 작품이다. 일본 인기배우 타마키 히로시와 이시하라 사토미가 출연했는데, 동명 만화의 황당무계한 코믹함을 영화에도 그대로 재연해 웃음을 선사한다. 어느 날 역사 선생과 고등학생 세 명은 휴대폰 어플을 통해 중세로 타임슬립한다. 그들이 도착한 에도시대는 전쟁 발발 직전의 풍전등화 상황. 마침 역사 속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메이지 정부의 관리 가쓰 가이슈를 만나고, 진지함과 황당함을 넘나드는 전형적인 일본식 개그가 버무려진 기상천외한 타임슬립 시대극이 벌어진다.

<막부고교생> 예고편

(메인 이미지 = [나만이 없는 거리] 스틸컷)
(본문대표 이미지=[나만이 없는 거리]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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