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과 박찬경 감독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감독 박찬욱. 그의 초기작부터 국내에 전례 없는 스타일을 과감하게 시도한 <아가씨>와 <헤어질 결심>까지의 흐름만 살펴보아도 감히 국내 영화계의 발전을 논할 수 있을 정도다. 2016년에는 한국인으로선 최초로 이탈리아 피렌체 시에서 문화예술에 뛰어난 성취를 이룬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키아비 델라 치타' 상까지 거머쥐며 또 한 번 세계로부터 명성을 인정받았다. 그의 동생 역시 만만치 않다. 박찬욱 감독의 두 살 아래 동생인 박찬경은 다양한 사진과 설치 작업을 아우르며 예술성을 인정받는 미디어 아티스트다. 2014년에는 장편 연출작 <만신>을 통해 형 못지않은 훌륭한 영화감독의 기질을 드러내기도 했다.  

<청출어람> 촬영 스틸컷. (왼쪽부터)배우 송강호, 감독 박찬욱, 배우 전효정, 감독 박찬경

각자 예술계에서 남다른 두각을 드러내 온 박찬욱, 박찬경 형제는 ‘PARKing CHANce’라는 재치 있는 팀명으로 협업을 이어온 적이 있다. 이 협업은 사실 상업적 프로젝트로 시작했지만, 되려 상업 작품의 프레임을 넘은 뛰어난 예술성을 발휘했다. 역시 훌륭한 예술가의 면모는 어떤 작품에서든 드러나는 법일까. 여러 브랜드와 손잡고 제작한 PARKing CHANce의 영상들을 확인해보자.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 두 형제의 협업은 이미 새로운 예술의 영역에 주차할 기회를 마련한 것 같아 보인다.

 

1. <파란만장>(2011)

<파란만장> 예고편

30분짜리 단편영화 <파란만장>은 이동통신사 KT의 광고 제안으로 제작한 스마트폰 영화이자, 두 형제가 PARKing CHANce라는 이름으로 공동 연출한 첫 번째 작품이다. 실제 아이폰4 기기만으로 촬영한 영화는 다소 어둡고 거친 화질을 보여주지만, 두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과 촬영 기법이 아주 훌륭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배우 오광록과 이정현의 명연기 또한 장편영화 못지않은 완성도에 한몫 한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어어부 밴드의 연주와 후반부 오광록의 딸로 등장하는 김환희를 보는 것도 묘미다. 한국 무속신앙을 소재로 짧지만 밀도 있게 풀어낸 이 작품은 스마트폰으로 제작한 영화임에도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부문 최우수작품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한편, 박찬욱, 박찬경 감독은 <파란만장>을 계기로 2013년 발매한 이정현의 노래 ‘V’ 뮤직비디오를 공동 연출하기도 했다. 독특한 유머 코드가 담긴 'PARKing CHANce표' 호러 영화라 봐도 좋다. 좀비 신부로 변신한 이정현이 배우 진구와 함께 출연한다.

 

2. <오달슬로우>(2011)

2011년 공개한 PARKing CHANce의 두 번째 작품. 스마트폰 열풍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때, 영화 주간지 <씨네21>에서 디지털 창간호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뮤직비디오 형식의 광고영상이다. 주연을 맡은 오달수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느린 래퍼 ‘오달슬로우’라 소개하며 생각보다 꽤 유창한 랩 실력을 선보이는 것에 한 번 놀라고, 생각보다 너무 웃겨서 두 번 놀란다. <씨네21>의 주성철(현 편집장), 김혜리 기자와, 진중권이 깜짝 출연해 현실감 넘치는 위트까지 더한다. 그런 영상을 다 보고 나면 박찬욱, 박찬경 감독의 유머 감각이 몹시 심상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3. <청출어람>(2012)

PARKing CHANce의 세 번째 작품은 브랜드 마케팅 영화 <청출어람>이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코오롱스포츠가 40주년을 맞이해 기획한 필름 프로젝트 작품으로, 박찬욱 감독과도 인연이 깊은 배우 송강호가 출연해 많은 화제를 모았다. <청출어람>은 해당 상표를 부각하기 보다 브랜드 슬로건인 ‘Your Best Way to Nature’를 모티프 삼아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충실한다. 그래서 광고라기 보다는 하나의 독립 단편영화로 보아도 손색없어 보인다.

<파란만장>을 비롯해 일관적으로 전통적인 한국 문화 소재에 관심을 두었던 박찬경 감독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판소리를 소재로 하여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판타지적으로 풀어냈다. 백발 노인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송강호의 모습과 뛰어난 판소리 실력과 연기력을 겸비한 신예 배우 전효정의 구성진 노래를 함께 감상해보자.

 

4. <고진감래>(2013)

이 다음 선보인 <고진감래>는 서울시가 마련한 '우리의 영화, 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PARKing CHANce가 제작한 새로운 형식의 크라우드 소싱 영화다. 박찬욱, 박찬경 감독은 2013년 8월부터 11월까지 일반인들이 보내온 1만 여개의 ‘서울’ 관련 영상들을 편집하여 60분 가량의 장편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냈다. 일관된 주제 없이 이어지는 짤막한 영상들은 기묘하게도 이내 ‘서울’이라는 거대한 인상으로 압축되어 화려하면서도 쓸쓸한 도시의 양면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은 꾸준히 호흡을 맞춰온 어어부 프로젝트의 장영규 음악감독이 이끄는 전통음악 악단 ‘비빙’이 마무리하여, 이때껏 두 형제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한국적인 정서를 남긴다. 그렇게 짧지 않은 60분을 감상하고 나면 “역시 박찬욱, 박찬경!”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메인이미지 출처=<오달슬로우>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