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보들의 행진> 스틸컷

과거 여러 이유로 검열의 대상이 되어 상영하지 못했거나, 감독의 의견과 상관없이 무분별한 편집을 거칠 수밖에 없었던 한국고전영화들이 있다. 그때 그 시절엔 국가로부터 온갖 검열을 받았지만, 오늘날엔 영화계에서 마땅히 훌륭한 작품으로 손꼽히며 어디서든 관람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2016년 12월 <한국영화역사 속 검열제도>라는 책을 펴낸 바 있는 한국영상자료원은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홈페이지를 통해 VOD 서비스를 제공하며 유튜브 채널에서 무료 영화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검열을 거쳐 우리 곁에 온 한국영화들을 이야기해볼 차례. 지금이야말로 검열과 상관없이 영화들의 사정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시대니까. 게다가 아래 소개하는 영화들은 관람료까지 ‘FREE’다.

 

<피아골>

Piagolㅣ1955ㅣ감독 이강천ㅣ출연 김진규, 노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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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에 제작한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은 한국전쟁 후 남북의 이념 대립으로 인해 생긴 대표적인 반공 영화다. 영화는 휴전 후 지리산에 잔류한 빨치산들의 만행을 폭로하고, 그러한 공산주의 이념에 회의를 느낀 주인공이 남한사회로 귀순한다는 내용이다. 제작 당시 정부와 군으로부터 대대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개봉 무렵 빨치산들의 고뇌를 인간적으로 그려냈다는 지적을 받으며 공산주의를 동조한다는 논쟁에 휩싸였다. 결국 이강천 감독은 극 중 ‘애란’(노경희)이 빨치산 무리로부터 빠져나와 홀로 산에서 내려오는 장면에 남한으로의 귀화를 명확히 의미하는 태극기를 넣기 위해 이중 인화하는 수정을 거쳐야 했다. 

 

<오발탄>

An Aimless Bulletㅣ1961ㅣ감독 유현목ㅣ출연 김진규, 최무룡
영화 <오발탄> [바로가기]

1960년대에 접어들어 국가 기관인 문교부에서 해오던 영화 검열 업무가 민간 기관인 영화윤리전국위원회로 넘어갔지만, 지나친 오해(?)는 여전했다. 1961년 영화 <오발탄>은 정상적으로 제작 및 상영까지 했지만, 5.16 군사정변 이후 다시 시작된 군부 정권의 검열 아래 ‘사상 불순’의 이유로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유는 극 중 주인공 어머니가 외치는 "가자!"라는 말이 "북으로 가자"는 의미로 해석되어 당시 무산계급의 반항과 공산주의적 혁명을 조장한다는 것. 그러나 2년 뒤, 영화가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 초청되면서 가까스로 상영보류 해제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춘몽>

An Empty Dreamㅣ1965ㅣ감독 유현목ㅣ출연 강신성일, 박수정, 박암
영화 <춘몽> [바로가기]

지나친 반공 정책의 검열을 가까스로 피한 유현목 감독은 영화 <춘몽>에서 또 한 번 억울한(?) 검열의 피해를 받아야 했다. 영화는 1965년 7월에 개봉했지만, 그로부터 6개월 후 유현목 감독은 영화를 빌미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는다. 영화 촬영 당시 여성 배우의 나체를 찍었다는 이유로 영화계에서 최초로 외설죄가 적용된 것. 그러나 실제로는 배우가 살구색 타이즈를 입은 채 촬영했고, 영화의 최종본에는 그 장면을 넣지도 않았다. 지금의 경우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 당시에는 무수한 장면들이 위와 같이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검열의 대상이 됐다. 오늘날 <춘몽>은 당시 한국영화사에 없던 혁신적인 스타일로 평가되며 예술성을 갖춘 명작으로 꼽힌다. 참, 지금은 18세 미만 관람 불가 등급이다.

 

<휴일>

1968ㅣ감독 이만희ㅣ출연 강신성일, 김성옥, 전지연
영화 <휴일> [바로가기]

이만희 감독의 영화에선 유독 배우 신성일(강신성일)이 검열의 걸림돌이 됐다. 앞서 1966년 제작한 <군번 없는 용사>는 전형적인 반공 영화였는데, 극 중 적으로 비춰야 할 북한군 장교 역에 너무 잘생긴 배우 신성일을 캐스팅했다는 이유로 문제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후 국가 기관인 문공부는 이만희 감독의 다음 작품 <휴일>에 대해선 시나리오 수정까지 요구했다. 영화는 빈털터리 청년(신성일)이 임신한 아내의 수술비를 위해 친구의 돈을 훔쳤지만, 결국 수술 도중 아내가 죽음을 맞는 등 비극적인 상황에 내몰려 방황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문공부는 극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암울하다는 이유로 주인공 신성일이 머리를 깎고 입대하는 것으로 결말을 바꿀 것을 제안했지만,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 모두 수정을 반대했다고. 결국 <휴일>은 상영되지 못했고, 2005년에야 한국영상자료원이 처음 공개했다.

 

<바보들의 행진>

The March Of Foolsㅣ1975ㅣ감독 하길종ㅣ출연 윤문섭, 하재영, 이영옥
영화 <바보들의 행진> [바로가기]

검열 때문에 결국 스토리를 바꾼 영화도 있다. 1975년에는 영화 촬영 전에 시나리오 검열을 받은 후 촬영본을 다시 검열받아야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 시기에 제작된 대표적인 작품이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이다. 대학생들이 신체검사를 받는 오프닝 장면에서는 원래 대학생들이 일등병을 놀리는 장면이 있었으나 삭제됐고, 극 중 장발 단속을 하는 경찰관의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그 장면이 단축됐다. 또 학생들이 경찰의 장발 단속을 피해 도망가는 장면에 흘러나오는 송창식의 '왜 불러'는 경찰관을 조롱한다는 이유로, 또 다른 주제가로 쓰인 송창식의 ‘고래사냥’은 가사가 퇴폐적이라며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때 이후의 검열

영화 <그때 그사람들>(2004) 스틸컷.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그린 이 영화에 대해 고인의 아들인 박지만은 상영중지 가처분 신청을 요구했고 결국 영화의 처음과 끝 부분에 삽입한 다큐멘터리 부분을 삭제한 후 상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영화는 언제부터 검열에서 벗어났을까? 1996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영화에 관한 검열을 처음으로 위헌이라 판결했고, 이에 따라 영화진흥법을 개정하고 1999년 현재의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가 설립됐다. 하지만 이때는 18세 관람가 위에 별도로 ‘등급 보류’를 만들었는데, 이 등급을 받으면 실질적으로 상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감독들은 등급을 맞추기 위해서 자진 편집 같은 검열 아닌 검열을 거쳐야 했다. 2001년에는 이러한 등급분류보류제도 마저 위헌으로 판결을 받았고,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 지금의 제한상영가 제도를 갖추게 되었다.

자료 참고-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 [바로가기]

영상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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