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서울루나포토 2016'

김목인은 기타를 연주하고 때로 피아노를 치며 직접 만들고 지은 노래를 부르는 음악가다. 간단히 ‘싱어송라이터’라는 한 단어로 말해도 되지만, 이렇게 천천히 풀어서 말하고 싶다. 그의 음악이 천천히 곱씹으며 진한 여운을 느끼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앞서 그는 밴드 캐비닛 싱얼롱즈와 집시앤피쉬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해오다 2011년 첫 솔로 음반 <음악가 자신의 노래>를 발표했다. 거기에는 ‘음악가란 무엇인가’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음악가 자신의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로부터 2년 후 발표한 2집 앨범 <한 다발의 시선>에서는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본 다양한 현상들을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해 풀어냈다. 이후에는 어두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봄을 노래했고, 무심한 관심 속에서 위기에 처한 우리 문화를 살리기 위해 해녀를 노래했다. 꾸밈없이 솔직한 목소리로.

그런 김목인의 음악을 듣고 나면 점잖으면서도 강단 있는 태도, 주변을 돌아보는 일에 소홀하지 않는 성실한 삶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 복잡한 세상에 그러한 음악과 태도는 참 좋은 위안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은 없다. 사람의 취향이라는 게 몹시 다양해서 같은 상황을 두고도 각자가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이 얼마나 다 다른가. 갑자기 김목인이 부른 ‘불편한 식탁’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내가 당신과 직업이 같다고 해서

‘무슨 말인지 알잖아?’ 라고 말하지 마요

우리가 어딘가를 같이 걸어야 한다면 음

이쪽에서도 같이 걸어갈 수 있으니“

김목인 ‘불편한 식탁’. 2집 발매 기념 공연 당시 코러스를 맡은 이랑과 부른 라이브

 

김목인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담긴 영상과 글을 보내주었다. 자기만의 취향이라지만, 그것을 정직하게 말하는 태도에서는 다른 이의 취향도 존중한다는 깊은 사려가 느껴진다. 그의 말마따나 다른 사람과 잠시나마 취향을 공유하며 기분 좋은 짜릿함을 느낄 수도 있다. 아래, 그가 보내온 음악들은 그 이상의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라 조심스레 자신해본다. 

 

Kim Mokin Says,

“그런 저녁이 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모여 누구 하나가 먼저 뭘 보라며 유튜브를 틀기 시작한다. ‘아, 그런 걸 좋아하는구나.’ 뒤이어 너도나도 하나씩 튼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인터넷을 뒤지기도 하고 기어이 찾았지만 ‘내가 보여주려던 건 이게 아닌데’라며 괜히 자신 없어 하기도 한다. 절대 모두가 모든 것을 자세히 보는 일은 없다. 적당히 보고, 적당히 듣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보여줄 차례를 기다리느라 친구가 보여주는 건 대강대강 보기 마련이다. 우리의 취향과 삶이 그런 것 같다. 다 같이 봐도 거기에서 각자 뭘 보는지 전부 알 수는 없다. 그저 같이 보고 같이 짐작하고 가끔 느껴지는 공통점에 짜릿해 할 뿐이다. 그런 가운데, 자기만 아는 매력이란 건 또 얼마나 강력한지. 보고 또 보고, 추천까지 한다.”

 

1.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This Song’ MV

귀가 얇은지, 존 레넌을 좋아하다가 다큐멘터리 영화 <조지 해리슨: 물질 세계에서의 삶>(2011)을 보고 조지 해리슨이 참 대단하구나 싶어졌다. 특히 그가 신앙만큼이나 일관되게 유지한 괴팍한 취향들이 좋았다. 이 뮤직비디오는 정말 그다운 데다 위대한 분들(?)도 몸소 이런 걸 찍었다는 인간미가 있다. 또 좀 엉망진창이지만 이렇게 무대를 제대로 꾸며놓고 하는 노력이 나는 좋다. 경찰 헬멧도 준비하고, 법정도 빌리고. 지금 하고 있는 게 뭔가 유치하다는 걸 자신도 알지만, 능청스레 연기 한 번 해주는 순수한 광기랄까, 넉넉함이랄까. 

 

2. 드뷔시 ‘달빛’ by 피아니스트 안젤라 휴이트(Angela Hewitt)

신촌을 지나다가 거리에 내놓은 ‘달리는 피아노’로 누군가 클래식을 연주하는 걸 듣고 얼어붙은 적이 있다. 그분이 연주를 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그렇게 섬세하고 복잡한 음악이 존재한다는 경외감에 숙연해졌다. 오랫동안 연마해야 하고 균형감까지 갖추어야 하는 일을 해내는 모습이 주는 감동과 위안이 있다. 나는 특히 이 피아니스트가 마지막 음을 치고, 허공에 남은 잔향을 바라보는 게 좋다. 그것이 괜한 연기라고 생각하는 삶과 거기에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삶은 전혀 다른 삶이다.

 

3. 조앙 질베르토(Joao Gilberto) ‘Chega de Saudade’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괴팍했다는 이 음악가에게 신은 한없이 아름답고 순수한 음악을 선물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조앙이 앉아 있는 이 괴상한 무대와 그를 향해 뻗어있는 마이크 스탠드야말로 그의 본질인 듯하다. 해변의 바위 위에 앉아 “나는 이렇게 평소대로 연주할 테니 너희들이 알아서 해줘”라고 그가 말한다. 사람들은 그를 그대로 안아 올려 그의 자세에 맞게 깎아놓은 무대에 그를 내려놓는다. 그는 잘 닦은 수석처럼 나무 받침대에 꼭 들어맞는다. 다리 자세 하나 안 바꾼 느낌으로 그가 그의 딸 베벨 질베르토(Bebel Gilberto)와 노래한다. 정작 딸은 바닥에 앉혀놓고.  

 

4. 러시아식 아코디언 연주법

정말 진지하게, 참고할 만한 러시아 스타일의 아코디언 연주를 찾다가 이걸 발견했다. 이 모스크바 출신의 개그맨-연주자는 우리가 러시아적이라고 생각하는 전형들을 압축해 보여준다. 보드카와 아코디언, 거나한 술꾼의 노래. 하지만 재치가 있고, 잘 짜인 스토리가 있고, 심지어 연주까지 잘한다. 또 그가 자기 작업실에서 아코디언에 열심히 술병을 부착했을 상상을 하니, 언젠가 기타에 장난감 피아노를 붙여 솔로를 건반으로 해보면 어떨까 궁리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5.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와 스테판 그라펠리(Stephane Grappelli)의 ‘J'attendrai’

이 짧은 클립은 ‘전설’스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포커에 빠졌던 이들을 멈추게 하는 바이올린 선율과 지금 봐도 어떻게 치는 건지 모르겠는 기타 속주. 화상을 입어 몇 개만 쓸 수 있는 손가락. 양복과 담배 연기, 우아함. 장고 라인하르트는 영상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이 몇 안 되는 영상을 수없이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다 어느 해외 사이트에서 80대 노인이 젊었을 때 장고를 봤었다는 회고록까지 읽게 되었다. 장고가 자신의 집에 들렀고, 다음 날 공연에도 초대해주었단다. 장고를 보았다고? 80년 전의 인물이 곧 내한이라도 할 것처럼 설렌다.

 

음악가 김목인은?

밴드 ‘캐비넷 싱얼롱즈’와 ‘집시앤피쉬 오케스트라’의 멤버로 활동했고, <음악가 자신의 노래>(2011), <한 다발의 시선>(2013) 등의 앨범을 냈다. 몇 가지에 오래, 깊이 빠지는 편이다. 10년 동안 소설가 잭 케루악을 좋아하다가 그의 책 <다르마 행려>(2015)를 번역했고, 장고 라인하르트에 심취해 ‘집시앤피쉬 오케스트라’를 결성했다. 다양한 예술가들과 함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2014), <22세기 사어 수집가>(2014)를 공동 집필했다. 싱어송라이터로서 꾸준히 노래를 만들고 공연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김목인 홈페이지 www.kimmokin.com
김목인 페이스북 www.facebook.com/kimmo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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