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설명했던 'C-86 세대'의 쟁글팝 미풍(솔직히 열풍은 없었습니다)이 잦아들던 1990년대 후반 영국은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가 지배하던 시기였습니다. 롤링스톤스(The Rolling Stones)와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는 물론 스웨이드(Suede), 오아시스(Oasis), 블러(Blur) 등의 음악이 세계 시장을 점령하며 비틀즈 이후 ‘2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으로 불리기도 했죠. 1997년 토니 블레어가 보수당의 18년 장기집권에 종말을 고하며 외친 구호도 ‘쿨 브리타니아’였습니다. 그 정반대의 세계에 오늘의 주인공, 음울하고 가끔은 사악한 멜로디의 요정 ‘벨 앤 세바스찬(Belle And Sebastian)’이 있습니다.

세계 경기는 초호황이었고 모두가 희망을 외치던 때, 스코틀랜드 스토우 칼리지의 학생들이 만든 레이블 ‘일렉트릭 허니’에선 세상에 둘도 없이 내성적이고, 잘 벼렸지만 아무도 헤치진 못하는 커터 칼처럼 날카롭고, 낙엽처럼 병약하지만 아름다운 앨범 <Tigermilk>(1996)를 내기로 합니다. 물론 그때까진 이 앨범이 아웃사이더 로맨티시스트들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내가 어릴 적 배운 게 있다면, 그건 숨는 법이야”(‘I don't love anyone')라고 노래하는 이 앨범은 당시 스토우 대학에서 강의하던 앨런 랭카인(Alan Rankine)이 녹음했는데, 그가 은둔의 아이콘 콕토 트윈스(Cocteau Twins)와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였다는 게 우연은 아닐 겁니다.

벨 앤 세바스찬이 세계를 매혹시킨 소외자 감수성, 유아론적인 세계관, 은둔에 대한 열망과 사랑받고 싶은 욕구의 공존은 이 밴드의 송라이터인 스튜어트 머독(Stuart Murdoch)의 경험에서 기인합니다. 머독은 대학 시절부터 근통성 뇌수막염 또는 만성 피로 증후군으로 거의 7년 동안 집에서 고립된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Tigermilk>가 나오기 불과 1년 전인 1995년에야 극적으로 회복해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했죠. 거의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던 그 시절에 대해 머독은 한 인터뷰에서 “그때는 정말 거대한 사막, 제 인생의 진공 같은 시기”였다며 “그때 노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바이닐로 1천 장만 찍었던 <Tigermilk>의 따뜻한(절대 뜨겁지는 않았다고) 반응에 초창기 멤버인 스튜어트 머독과 스튜어트 데이비드(Stuart David)는 드럼, 베이스, 기타 등의 풀 타임 멤버를 모으기 시작합니다. 지금도 함께 하는 기타리스트 스티비 잭슨(Stevie Jackson)과 키보디스트 크리스 게디스(Chris Geddes), 드러머 리처드 콜번(Richard Colburn), 만능 플레이어 사라 마틴(Sarah Martin) 등과 첼리스트 이소벨 캠벨(Isobel Campbell)이 사실상의 원년 멤버로 합류합니다. 이후 서로 키보드,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기타를 돌아가며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이 음악 대가족의 두 번째 앨범 <If You`re Feeling Sinister>(1996)가 평단으로부터 걸작이란 평가를 받으며 열광적인 팬(아마 지금이라면 ‘힙스터’라 부를)을 거느린 ‘컬트’가 되기 시작합니다.

올뮤직 등의 매체들이 벨 앤 세바스찬을 평가할 때 많이 거론하는 단어 중 하나가 ‘민주주의의 침공’입니다. <The Boy with the Arab Strap>(1998)까지 평탄한 상승세를 이끌어 가던 밴드는 2000년대에 들어 격변기를 겪습니다. 밴드 멤버들이 작곡과 메인 보컬로 참여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는데, 그 결과가 좋은 경우(‘legal Man’)도 있었지만 실패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트랙도 있었습니다.

스미스(Smith)의 광팬으로 자신만의 문학적 음악 세계를 구축한 스튜어트 머독 중심주의에서 점차 앨범이 민주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정치적으로는 올바를지 몰라도 팬들의 귀에는 좀 들쭉날쭉하게 들렸죠. 이 시기에 이소벨 캠벨과 원년 멤버인 스튜어트 데이비드가 밴드를 떠났다는 점도 무관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2002년 러프 트레이드 레코드로 적을 옮긴 밴드가 2003년 전열을 가다듬고 <Dear Catastrophe Waitress>로 컴백했을 때, ‘If She Wants Me’ 같은 트랙을 들으며 ‘돌아왔구나’라는 안도감을 느꼈을 팬이 여럿 있을 겁니다.

밸 앤 세바스찬의 영향을 이야기할 땐 C-86 밴드들, 스미스 특히 모리시(Morrissey)의 가사,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보컬 스타일, 필드 마이스(Field Mice)의 감수성 등을 거론합니다. 그러나 벨 앤 세바스찬의 세계는 이들의 영향권 안에만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 정도로 질감이 다릅니다. 오히려 벨 앤 세바스찬과 가장 가깝다고 느껴지는 밴드는 포스트 벨 앤 세바스찬으로 불리지만 알고 보면 같은 연배인 밴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입니다.

벨 앤 세바스찬이 결성된 1996년 트레이시앤 캠벨(Tracyanne Campbell)을 중심으로 결성된 카메라 옵스큐라의 2001년 첫 앨범 <Biggest Bluest Hi Fi>의 프로듀서를 스튜어트 머독이 맡았다는 건 전혀 놀랍지 않은 사실입니다. 싱글을 낼 때부터 벨 앤 세바스찬에 비교되곤 했으니까요. 솔직히 첫 앨범의 첫 곡인 ‘Happy New Year’를 들었을 때는 벨 앤 세바스찬이 보컬을 바꾸었나 싶기도 했습니다.

벨 앤 세바스찬에 스튜어트 머독이 있었듯이 이 밴드에는 엄청난 목소리를 가진 트레이시앤 캠벨이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우리 안에 숨겨진 목가적 드라마의 감성을 쥐어짜 주겠다는 듯(‘Country Mile’) 노래하다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멜랑콜리한 감정(‘Tears For Affairs')에 빠지게도 하고, 고양이의 발 마사지처럼 나른하게 풀어주기도(’Lloyd I'm ready to be heartbroken‘)합니다.

스튜어트 머독과는 달리 앨범 전곡을 본인이 작사 작곡하는 트레이시앤 캠벨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재치’이기도 합니다. 로이드 콜(Lloyd Cole)의 22년 전 노래 ‘Are You Ready To Be Heartbroken’에 대한 답가로 ‘Lloyd I'm ready to be heartbroken’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는 건 그의 재치를 보여주는 작은 일화일 뿐입니다.

최근까지 열성적인 컬트팬들을 거느리며 월드 투어를 돌던 카메라 옵스큐라는 지난 2015년 밴드 멤버 케리 랜더(Carey Lander)가 골육종 재발 판정을 받고 11월에 세상을 떠난 후 활동을 자제하는 모양새입니다. 당시 멤버들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랜더와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골육종에 대한 위험을 알리고 연구하기 위한 기금을 모으는 데 힘을 다했습니다. <올뮤직(allmusic)>에 따르면 트레이시앤 캠벨은 랜더가 세상을 떠난 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쓰기도 했습니다. “랜더는 밴드를 떠나지 않았어. 랜더는 자기 몸을 떠났을 뿐, 아직 밴드에 있어!”

 

Writer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서 연예, 음악, 영화, 섹스 영역을 담당하는 기자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생일이 같은 선택 받은 팬이자, 가장 좋아하는 밴드 틴에이지 팬클럽의 한국 수행을 맡았던 성공한 덕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