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유럽 순회공연 후 1980년 늦은 여름 미국으로 돌아온 빌 에반스는 다시 공연과 TV 출연을 위해 쉴 수 없었다. 뉴욕의 집에 돌아와 배가 아프다며 며칠 동안 침대 위에서 지내던 빌 에반스는 1980년 9월 15일 병원에 입원했다가 그날 오후 사망했다. 사인은 위궤양, 만성간염, 간경화 등 복합적이었다. 그가 사망한 후 전세계에서 그를 추모하는 헌정 앨범이나 그와 관련된 컴필레이션 앨범이 수없이 발매했는데, 이중에는 오래 전 그가 연주했던 미발매 트랙을 모아 사후 출반한 경우도 있었다. 생전에 발매 여부를 까다롭게 판단했다는 그의 꼼꼼한 성격에 비추어,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발매되지 않고 영원히 묻혀 버릴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른다. 빌 에반스가 사망한 지 수년이 지나 유작으로 발매된 앨범 중 소중히 평가되어야 할 세 장의 음반에 대해 알아보았다.

 

<You Must Believe in Spring>(1981)

이 앨범이 출반된 것은 1981년 2월이니 에반스가 사망한 지 5개월 후이지만, 모든 트랙은 1977년 8월에 녹음되었다. 그와 11년을 함께 했던 베이시스트 에디 고메즈와 함께 한 마지막 앨범이며, 1975년부터 1978년까지 드럼을 맡은 엘리엇 지그문트와 트리오를 이루었다. 앨범 발매에 관해 고인이 된 에반스가 생전 승인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는데, 1981년에 LP 발매 시 일곱 곡 중 자작곡 ‘B Minor Waltz’와 ‘We Will Meet Again’에 에반스의 연인 ‘Ellaine’과 그의 오빠 ‘Harry’를 위한 곡이라는 표시를 보면 승인했을 가능성도 있다. 일곱 트랙 중 ‘Gary’ Theme’은 스포티파이에서 5,900만 조회수를 기록한 인기곡이다.

앨범 <You Must Believe in Spring>에 수록한 ‘Gary’s Theme’

2003년에는 LP에 수록했던 일곱 곡에 세 곡을 추가한 열 곡으로 CD가 발매되었다. 그 중 ‘Freddie Freeloader’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에서 유일하게 그가 연주에 참여하지 못했던 곡이라 이채롭다. 당시 마일스 데이비스는 백인 피아니스트가 이 곡의 리듬을 살리기 힘들 거라며 그 대신 윈튼 켈리(Wynton Kelly)를 피아니스트로 앉혔다. 에반스가 리메이크한 이 곡의 전반부에서는 어쿠스틱 피아노를, 후반부는 일렉트릭 피아노를 연주하여, 에반스의 디지털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곡 중 하나가 되었다.

앨범 <You Must Believe in Spring>에 수록한 ‘Freddie Freeloader’

 

<Eloquence>(1982)

빌 에반스가 사망한지 2년 후인 1982년에 출반되었지만, 앨범의 모든 트랙은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녹음되었다. 당시 판타지 레코드와 음반 작업을 하면서 리허설 용으로 녹음된 트랙 네 곡과, 웨스트 할리우드의 재즈 명소 ‘Shelly’s Manne-Hole’에서의 실황 두 곡, 그리고 1975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서 실황 녹음된 두 곡을 모았다. 여기에는 에디 고메즈와 듀엣 형식으로 녹음한 네 곡과 피아노 솔로 형식으로 녹음한 네 곡이 한 음반에 모인 셈이다. 재즈 평론가 스콧 야노우는 “빌 에반스 음반의 수집가들에게는 흥미로운 일이겠지만, 만약 완벽주의자였던 에반스가 살아 있었다면 과연 이 음반을 출반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했다.

앨범 <Eloquence>에 수록한 ‘Saudade Do Brasil’

 

<The Paris Concert: Edition 1 & 2>(1983/1984)

빌 에반스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었지만, 돈이 필요했던 그는 쉴 수가 없었다. 한해 전 유럽 순회 중 이태리 공연에서는 부정확한 음을 짚거나 중요한 음계를 빠트리기도 했다. 당시 1979년 11월에는 그의 마지막 트리오 멤버였던 베이시스트 마크 존슨(Marc Johnson)과 드러머 조 라바르베라(Joe LaBarbera)와 함께 프랑스 파리의 명소 L’Espace Cardin에서 공연했는데, 이 때의 실황을 Edition 1과 Edition 2의 두 장에 나누어서 사후에 출반했다. 스콧 야노우는 “에반스가 자신의 경력을 통틀어 최강의 트리오 중 하나를 갖게 되었으며, 그의 음악이 쇠퇴하기 보다는 마지막 해의 새로운 활력과 열정을 보여준 증거”라며 이 앨범을 높이 평가했다.

앨범 <The Paris Concert: Edition 1>의 ‘I Do It For Your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