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덴마크의 광대 왕자’(The Clown Prince of Denmark) 혹은 ‘위대한 덴마크인’(The Great Dane)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빅터 보르게는 덴마크 왕실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 밑에서 음악 신동으로 자란 클래식 피아니스트였지만, 젊은 시절 코미디와 피아노 연주를 결합한 이색 공연을 개발했다. 유태인이던 그는 공연 중에 독일의 히틀러를 풍자하기도 했는데, 나치가 덴마크를 무력으로 점령했을 때는 다행히 스웨덴에서 공연 중이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보르게는 가까스로 미국으로 탈출할 수 있었고, 더 넓은 시장인 미국에 정착해 코미디언으로, 때로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무대 위에서 성공했다. 빅터 보르게가 현역으로 공연한 기간은 약 75년에 이르렀으며, 덴마크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의 왕실과 미국 케네디센터가 수여하는 훈장에 추서되었다. 션 코네리, 스티비 원더 등 스타들과 함께 케네디센터 훈장을 수여한 이듬해인 2000년, 코네티컷의 자택에서 조용히 91세의 생을 마감하였다.

<The Best Piano Performance Ever – Victor Borge>

빅터 보르게의 공연은 언제나 재치와 유머가 넘쳤고, 고상하고 진지한 분위기의 클래식 공연을 풍자하여 청중들에게 색다른 웃음을 선사했다. 정규 음악교육을 받은 피아니스트 출신인 그에게는 무언가 번득이는 기지와 재치의 웃음 코드가 있었는데, 클래식 무대에서 실제로 뮤지션들 간에 있었던 일에서 착안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다가 오른쪽으로 넘어지거나,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연주하다가 엉뚱하게도 멘델스존의 ‘결혼 행진곡’이나 유사한 키의 다른 곡으로 넘어갔다가 돌아오는 장면이다. 때때로 다른 클래식 연주자들과 듀오를 이루기도 했는데, 터키 피아니스트 샤한 아르주루니(Sahan Arzruni), 덴마크 바이올리니스트 안톤 콘트라(Anton Kontra)가 대표적이었다. 즉흥 연주도 장기 중 하나였는데, 전 세계에 잘 알려진 ‘Happy Birthday’를 쇼팽, 베토벤, 모짜르트 등 유명 작곡가들의 스타일에 맞게 변주하여 인기를 끌기도 했다.

Victor Borge & Anton Kontra ‘Monti’s Czardas’

한창 일할 때는 1년에 100회 이상 공연을 했으며, 나이 아흔이 되었을 때도 연간 60회 이상 공연을 다닐 정도로 바쁘고 건강한 삶을 유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휩쓸린 유럽에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핀란드에서 떠난 마지막 미국 수송선을 타고 1940년에 미국 땅을 밟았을 때, 당시 주머니에는 단돈 20달러 밖에 없었다. 그 시절의 힘들었던 기억을 안고 편히 쉴 수 없었던 보르게는, 노년이 되어서도 불안하여 집에서 편히 쉬지 못하고 공연을 다녔다. 1990년에는 그의 공연 영상을 모아 비디오 <The Best of Victor Borge>를 냈는데, 예상 외로 300만 장이나 팔려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그는 50여 년 동안 함께했던 두 번째 부인이 사망하자 3개월 동안 몹시 괴로워하다가, 모국 덴마크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집에서 자던 중 91년의 생을 마감하였다. 보르게가 생전 밝힌 소원에 따라 그의 유해는 고향인 덴마크 코펜하겐과 미국 코네티컷 양쪽에 나누어 안장되었다.

젊은 시절 덴마크 영화에서 8대의 피아노를 치던 빅터 보르게(193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