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분 길이의 단편 애니메이션 <El empleo(The Employment)>를 보자. 우리말로 ‘고용’이라는 제목의 영화에는 대사도 배경음악도 없다. 대신 시계의 초침과 알람 소리, 커피를 마시는 소리, 면도 소리, 발자국 소리, 엘리베이터 소리 같은 일상적인 소리로 가득차 있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서사의 주체가 되는 것이 모두 ‘인물’이라는 점이다. 의자, 테이블, 스탠드, 심지어 택시까지, 모두 인물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보다보면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이것은 긍정적인 메시지일까, 아닐까. 어쨌든 이 불편한 애니메이션은 세계 유수의 단편 영화제에서 백여 개의 상을 받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일단 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물이 도구화해 일상을 영위하는 서사에 대해, 초반에는 서로 의존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우리의 시선을 이끌어온 주인공이 사무실 문 앞에 엎드려 도어매트라는 도구로 변하는 장면을 본다면 순식간에 당혹감에 휩싸일 것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작가와 감독이 던지려고 하는 메시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이 단편을 제작한 산티아고 그라소(Santiago Bou Grasso) 감독은 1979년 생의 아르헨티나 만화가 겸 애니메이터로, 전 세계적으로 여러 상을 휩쓴 유명한 창작자다. 다음 작품인 <Padre(Father)>는 2013년 한국에서 개최하는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인 최강 애니전(Animpact MAX)에서 관객심사위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3년 자신의 작업실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는 산티아고 그라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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