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변화하는 현대의 도시를 경험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걷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로 같은 골목 사이, 도심의 거대한 빌딩 숲을 거니는 산책은 차를 타고 중심가를 통과할 때와는 다른 속도의 감각을 선사한다.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를 경험하는 데에 걷기는 적합한 방식이다. 식당에서 밥 먹다가도 달려나가 차를 ‘빼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기도 하지만, 서울은 미끈하게 뻗은 도로변의 풍경과 그 이면이 완전히 다른 곳이기 때문이다. 또 어제 있던 건물이 오늘 헐려 나가고, 작은 가게들은 더 낮은 월세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며, 지은 지 백 년이 넘은 건물들의 존폐마저도 언제나 위태로운 서울은 빠르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한강의 지류를 따라 거닐다 동네의 작은 국수집에서 식사하는 서울의 산책자들은 날씨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도시 풍경의 소중함과 덧없음을 함께 안다.

라야(@raya0704)는 서울을 거니는 ‘산책러’다. 그의 프로필 아래 ‘light on the wall’이라는 주소를 따라가면 빛과 건물, 도시라는 그의 주요 관심사들이 사진, 영상, 디자인의 정돈된 형태로 차곡차곡 쌓인 홈페이지를 볼 수 있다. 그런 라야가 2015년 자비로 출판한 <산책론>은 제목 그대로 산책에 대한 책이다. 핸드폰보다 조금 큰 핸드북 사이즈로 제작된 <산책론>에서, 라야는 잠실과 지역을 이루고 있는 건물들을 작가가 제안하는 세 가지 산책법을 통해 체험하고 기록했다. 이 책에서 그는 건물의 외관을 지나치며 바라보는 산책의 형식을 건물을 통과하고 내부를 경험하는 것까지로 확장시킨다. 내부의 경험은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시선을 통해 다시 외부로 향하고 연결된다. 건물의 내부, 옥상을 천천히 걸어서 구경하는 듯 시작했던 이 산책은 주변 건물들과의 연결로, 어느새 지역적 탐구의 형태를 띠면서 생각보다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탐사가 된다. 호기심이 일어서, 간판이 마음에 들어서, 매일 지나치던 곳이지만 아직 가보지 않아서,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 같아서 같은 아주 사소한 이유로 시작한 산책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책의 소개처럼 이 산책은 도시의 인상을 찾아다니는 한 작가의 작업기, 작업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책자의 관점에서 이 책의 미덕은 어디까지 가더라도 그것은 당신의 마음이라는 식의 태도인 것 같다. ‘2층까지만 올라도 좋고 매번 지나치던 건물을 오늘도 지나쳐도 좋지만, 혹시 어느 날 더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이런 방식의 산책은 어떠냐’는 상냥한 권유가 박력 있는 규모의 꽤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오랜 산책의 결과물과 함께 펼쳐진다. 이것은 산책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태도가 아닌가. 산책을 통해 산책자는 주관적인 인상과 감상을 얻고 마음껏 자신만의 사유를 직조한다. 길가의 사람, 동물, 차, 건물, 풍경을 충분히 관찰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이웃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얼마든지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산책이라면, 라야는 자칭하듯 ‘산책러’, 그것도 ‘프로 산책러’일 것이다.

<산책론>은 많은 사진이 실린 책이기도 하다. 라야를 서점 유어마인드(@your_mind_com)의 홈페이지에서 연재 중인 <새벽을 위한 믹스테잎>으로 먼저 안 사람이라면, 곡 목록을 아우르는 사진들도 인상 깊었을 것이다. 빛이 엷은 막처럼 사물을 덮은 듯한 사진들은 햇빛이 섬세하게 도시의 사물들과 만나는 오전과 오후의 특정 시간대를 연상시킨다. <산책론>은 건물의 기능적 특수성을 기록한 아카이브적 사진과 빛을 통해 건물의 인상이 부각되는 사진들로 이루어졌다. 그의 인스타그램은 물론 특정한 주제로 분류하지 않은 다양한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가수 이랑의 뮤직비디오 촬영, 건물의 내부에 이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공간을 촬영한 그의 영상 프로젝트 <가정방문> 같은 활동 소식도 있다. 누구보다 라야가 보는 풍경들, 시선의 방향이 궁금한 ‘산책러’들이라면 반가울 것이다.

라야 인스타그램
라야 홈페이지
유어마인드 홈페이지
가정방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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