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뮤지션은 재즈 신에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만든 세 쌍의 트럼펫과 색소폰 듀오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밥을 만든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 모드(Mode)를 만든 마일스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 프리 재즈를 만든 돈 체리와 오넷 콜맨을 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널리 알려진 재즈계 스타였지만, 돈 체리(Don Cherry)라는 이름은 무척 생소하다. 그는 오넷 콜맨이 프리 재즈의 명반 <The Shape of Jazz to Come>(1959)을 녹음한 파이브 스폿 카페(Five Spot Café)의 쿼텟 멤버로, 당시 오클라호마 출신의 23세 신예였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 만의 음악을 추구하던 돈 체리는 수년 후에 오넷 콜맨의 쿼텟에서 나와 세계 각지의 음악과 악기를 조합한 콜라주 음악(Collage Music)을 찾아 나섰다. 그로부터 30여 년 동안 그는 음악 유목민의 인생을 살았으며, 자신이 추구한 음악을 ‘월드 퓨전’ 뮤직(World Fusion Music)이라 불렀다.

스웨덴의 방송사에서 제작한 돈 체리 다큐멘터리(1978)

돈 체리는 뉴욕의 재즈 음악에 머물지 않고 모로코, 인디아, 남아프리카, 브라질 등지를 여행하면서, 그곳의 뮤지션들을 만나 교류하였고 자신의 음악에 접목할 새로운 음악을 찾아 나섰다. 인도 음악의 거장 바산트 라이(Vasant Rai), 브라질의 타악기 명인 나나 바스콘셀루스(Nana Vasconcelos), 이탈리아의 기타리스트 지안 피에로 프라마치오레(Gian Piero Pramaggiore)가 그가 협업한 대표적 뮤지션들이다. 이외에도 3인조 월드 뮤직 밴드 코도나(Cocona), 아내와 함께 전통 민속음악을 추구한 오가닉 뮤직 씨어터(Organic Music Theatre) 등 프로젝트 그룹을 구성하였다. 틈틈이 미국으로 건너가 오넷 콜맨 쿼텟이나 뉴욕 컨템포러리 파이브 시절의 동료들과 ‘Old and New Dream’이라는 밴드를 구성하였고, 로커 루 리드(Lou Reed)나 힙합 그룹 ‘The Watts Prophet’와 함께 레코딩을 하였다. 그는 전세계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전통 악기들을 수집하였는데, 베림바우(Berimbau), 대나무 플루트(Bamboo Flute)나 지역의 타악기를 익숙하게 연주하였다.

돈 체리의 스웨덴 시절 노마드 음악을 집대성한 사후 음반 <Om Shanti Om>(2020)

노마드 시절의 정점에는 오가닉 뮤직 소사이어티(Organic Music Society)가 있었고, 돈 체리의 평생 동반자가 된 스웨덴의 텍스타일 예술가 ‘모키’(Moki)가 같이 있었다. 그가 스톡홀름에서 연주하던 1963년에 처음 만나, 4년 후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고 줄곧 함께 노마드 생활과 오가닉 예술을 추구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스웨덴 농촌 지역인 토가르프(Tagarp)에 버려진 낡은 학교 건물을 인수하여 실험적인 예술촌으로 바꾸었다. 여기에 살면서 정기적으로 음악 수업과 예술 워크숍, 그리고 재즈 공연을 열었고, 찾아오는 예술가들에게 시설을 개방하여 장기간 머물도록 한 것이다. 돈 체리가 1972년에 출반한 앨범 제목을 따라서, 이 곳을 오가닉 뮤직 소사이어티(Organic Music Society)라 불렀으며, 이 곳은 10여 년 이상 유지되며 삶, 예술 그리고 자연이 결합된 창작촌의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다. 스웨덴의 한 방송사가 이 곳을 취재하여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남아 당시 그의 활동을 잘 기록하고 있다.

돈 체리, 모키 체리 ‘Universal Mother’(1977, 스톡홀름)

돈 체리는 1980년대 후반 다트머스 칼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뉴욕의 재즈 신으로 돌아왔다. 그는 30여년 전 오넷 콜맨 쿼텟에서 함께 했던 동료 찰리 헤이든(베이스), 빌리 히긴스(드럼)과 다시 만나 빌리지 뱅가드에서 공연했다. 당시 A&M 레이블의 ‘Modern Masters Jazz Series’의 첫 앨범으로 <Art Deco>(1988)를 냈는데, 그의 귀환을 기념하는 중요한 음반으로 기록되었다. 평생 유목민의 생을 살았던 그는, 의붓딸이 머물던 스페인의 말라가에서 58년의 생을 마감하였다.

돈 체리 부부의 오가닉 뮤직 워크숍 풍경

사후에 돈 체리의 스웨덴 체류 시 방송에 출연했던 오가닉 음악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Om Shanti Om>(2020)가 발매했는데, 생전 때보다 더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Om Shanti Om’은 힌두어로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Peace be with You)이라는 뜻이다. ‘모키’는 뉴욕과 스웨덴을 오가며 자신의 예술을 계속 했으며, 그의 작품 역시 2009년 그가 사망한 후 더욱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두 사람과 함께 오가닉 뮤직 소사이어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자손들은 대부분 예술가나 뮤지션의 길을 걸었다.

돈 체리 <Art Deco>(1988)의 타이틀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