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피아니스트 아마드 자말(Ahmad Jamal)의 실황 음반 <Ahmad Jamal Trio At the Pershing: But Not For Me>(1958)는 역사적 명반으로 인정받는 앨범이다. 시카고의 명소로 불리던 퍼싱 호텔 라운지에서 하우스 밴드였던 아마드 자말 트리오가 연주한 43곡을 녹음하여 그 중 9곡을 선곡한 실황 음반으로, 재즈 장르에서는 이례적으로 빌보드 앨범 200 차트에서 무려 107주 동안 머무른 기록을 가지고 있다. <다운비트>는 “칵테일 음악”이라 평가절하하기도 했지만, 발매 당시 한달 동안 47,000장을 판매했으며 현재까지 약 100만 장을 판매하여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에도 재즈 앨범은 히트작이라도 20,000장을 판매하기가 힘든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음반에 수록된 8분 길이의 ‘Poinciana’는 쿠바 민요를 편곡한 곡으로, 이후 아마드 자말의 음악을 상징하는 재즈 스탠더드가 되었다.

앨범 <Ahmad Jamal Trio At the Pershing: But Not For Me>의 ‘Poinciana’

그는 20대 후반의 이른 나이에 이 앨범의 예기치 않았던 성공으로 큰 돈을 거머쥘 수 있었다. 고향 피츠버그의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적인 뮤지션으로 뛰어든 지 10년 만에 재정 여유가 생기자, 그가 그토록 열망했던 아프리카 여행을 감행했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후부터 조상의 고향 아프리카에 대해 호기심을 키워온 지라, 한동안 북아프리카를 여행하며 돌아다녔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후에는 남은 돈으로 시카고에 재즈 클럽 ‘알함브라’(The Alhambra)를 열고, 새로운 트리오를 결성하여 그곳의 하우스 밴드로 일했다. 하지만 그가 투자한 클럽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1년 만에 문을 닫았으며, 막심한 손해를 보면서 빚까지 떠안았다. 그는 다시 공연 투어를 시작했고, 활발하게 음반을 내기 시작했다. 그는 70여 년의 현역 생활 중 80여 장의 음반을 냈고, 쉴 새 없이 연습하고 공연을 다니며 부지런한 일상 생활을 유지했다.

앨범 <Ahmad Jamal Trio At the Pershing: But Not For Me>의 타이틀곡 ‘But Not For Me’ 역시 그의 명연주로 유명하다.

아마드 자말은 자신의 음악을 ‘재즈’라 불리길 원치 않았으며, 대신 “아메리칸 클래식 음악”(American Classic Music)로 불리기를 원했다. 그가 직업적인 뮤지션으로 나선 1940년대 후반은 화려하고 장식음이 많은 비밥 음악이 대세였지만, 그의 연주는 음을 줄이고 그 사이의 공간을 비워 두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추구했다. 속주와 기교를 중시하던 당시의 재즈 풍토에서 그는 종종 칵테일 피아니스트로 평가절하되기도 했지만, 자말의 음악을 인정하고 경탄했던 사람이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였다. 그는 종종 자신의 밴드 멤버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이 바로 아마드 자말의 연주라며, 그의 연주를 들어보고 누구나 그 스타일대로 연주하기를 원했다. 두 사람은 함께 연주할 기회는 잡지 못했지만 음악적 동료로서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고, 쿨 재즈의 형성에 많은 도움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아마드 자말의 명반으로 평가받는 앨범 <The Awakening>(1970)의 타이틀곡

아마드 자말은 나이 80대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계속했다. 2017년에는 87세의 나이에 프랑스의 젊은 뮤지션들을 피처링하여 낸 앨범 <Marseille>(2017)은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마지막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앨범 <Ballads>(2019)를 낸 후 한 동안 소식이 들리지 않던 그가 올해 4월 16일 9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자말은 전립선암을 선고받아 투병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근면하고 반듯한 생활 태도로도 유명한데, “젊은 시절 이슬람으로 개종한 후 하루 다섯 번 알라신께 기도를 드리는데, 그 중 첫 기도가 새벽 다섯 시”라 밝힌 바 있다. 자말의 생활 태도는 음악에도 고스란히 묻어 있음을 증명한 뮤지션이었다.

앨범 <Marseille>(2017)에서 프랑스 래퍼 Abd Al Malik을 피처링한 타이틀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