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열일곱일 때 정말 수많은 음악을 들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당시 어떤 음악들을 들었는지 전부 기억나진 않는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싸이월드의 BGM 따위를 떠올려가며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 내가 열일곱이었을 때 가장 즐겨 들었던 음악들을 기록했다.

 

1. Air ‘Remember’ (Audio)

전자음악가라 불리고는 있지만, 처음부터 Electronica라는 장르를 잘 알고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힙합과 랩 위주로 음악을 듣던 어린 나에게, 지금까지도 20년 넘게 운영 중인 군산의 유일한 음반가게인 ‘뉴뮤직랜드' 사장님이 추천해 주셨다. 사장님은 늘 내가 음반을 하나 사면 다른 스타일의 음반을 꼭 하나 더 챙겨 주시곤 했다. 그렇게 처음 듣게 된 Air의 ‘Remember’는 나에게 남다른 충격을 주었다.

 

2. Common ‘Be’ (Intro) (Audio)

곡이 수록된 Common의 앨범 [Be] 트랙 중에서도 칸예웨스트가 프로듀싱한 곡들을 많이 좋아했다. 여러 곡 중 굳이 인트로를 꼽은 이유는 앨범의 모든 서사를 이 한 트랙에 정말 잘 담아 놓은 느낌이 들어서다. 밴드나 연주 음악을 듣기 어려워했던 내가 ‘랩 없이 곡 자체만으로도 이렇게 매력적일 수 있구나’라고 처음 생각하게 해준 곡이다.

 

3. Radiohead ‘No Surprises’ (M/V)

당시 라디오헤드라는 존재를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물론 라디오헤드가 어떤 음악을 하는 밴드인지는 몰라도 그들의, 그리고 모두의 명곡인 ‘Creep’에 대해선 모를 수 없었지만. 중학생 무렵 농구를 하고, 힙합을 접하고, 나아가 ‘클럽’이라는 곳 또한 너무 일찍 알게 된 나에게 ‘밴드 음악'이라는 것은 생소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세드릭 클라피쉬의 <스페니쉬 아파트먼트>(2002)라는 영화를 보았고, 그때 나온 'No Surprises’에 푹 빠져버렸다.

 

4. Portishead ‘Glory Box’ (M/V)

Portishead를 어디에서 듣고 음반을 샀는지 의문이다. 아무리 더듬어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추해보건대, 아마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했던 인터넷 카페에 누군가 Portishead의 라이브 영상을 올린 걸 보고 처음 알았던 것 같다. 덕분에 Massive Attck과 Tricky까지 알게 되어 트립합이라는 장르에 대해 더 심취할 수 있었고, 지금의 내가 75A라는 밴드를 하는 가장 큰 배경이 되었다. (‘Roads’의 라이브 영상을 먼저 보았지만 'Glory Box’ 뮤직비디오가 1년 전에 재업로드 되었기에 이 뮤직비디오를 골랐다.)


 

5. Massive Attack ‘Mezzanine’ (Audio)

Portishead 이후 트립합, 브리스틀 사운드를 포함한 영국 음악에 큰 관심을 가졌다. 영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내가 살던 군산의 모습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하고는 했다. Massive Attack의 음악은 Portishead의 음악보다 좀 더 리듬 위주였고, 연주곡들이 많았다. 나중에 내가 음악을 직접 만들기 시작할 때까지도 Massive Attack는 꾸준한 영감을 주었고, 밤에 산책할 때 꼭 들어야 하는 음악 중 하나였다.

 

6. Groove Armada ‘Love Sweet Sound’ (Audio)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미성년자 신분으로 군산 시내에 있던 ‘바운스’라는 힙합클럽에서 디제잉을 했었다. 힙합을 무척 좋아한 나머지 늘 음악과, 관련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던 디제이 형들을 따라다녔다. 그러다 보니 ‘클럽’이라는 곳에 꽤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었고 디제잉까지 할 수 있었다. 그때, 형들과는 조금 다른 곡을 틀어보자 해서 틀었던 곡이 Groove Armada의 'Love Sweet Sound'다. 마찬가지로 음반가게 사장님이 추천해 주셔서 음반을 산 기억이 난다.

 

7. Télépopmusik ‘Don't Look Back’ (Audio)

“몽환적이다”라는 표현의 기준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곡을 듣기 전까지는. Air 이후 가장 좋아했던 프랑스 일렉트로닉 팝 밴드로, 이들의 앨범 <Angel Milk>는 고등학교 시절과 잠깐 다녔던 대학생활을 지나 지금까지도 자주 듣는다. 공부한다는 기분으로. 그러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TV 광고에서 Télépopmusik의 ‘Breath’가 흘러나왔다.

 

8. Modjo ‘Lady’ (Hear Me Tonight) (M/V)

Air와 Telepopmusik, Daft Punk 같은 프랑스 특유의 일렉트로닉 음악에 빠져 있었다. 지방에 살다 보니 음반가게에서 음반을 찾아 듣지 않으면 새로운 음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음반가게에서 살다시피 하며 음악을 찾아들었다. 하루는 현재 의류 브랜드로도 유명한 'Maison Kitsuné’ 컴필레이션과 프랑스 출신 디제이의 라운지 음악 컴필레이션을 들었는데, ‘Lady’도 수록곡 중 하나였다. 처음 들었을 때 모니터 스피커를 산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직도 사운드 밸런스가 굉장히 좋은 곡이라는 인상이 있다. 아쉽게도 자주 가던 음반가게에서는 Modjo의 앨범을 구할 수 없어 풀렝스는 굉장히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구매해 들었다.

 

9. Stereolab ‘Brakhage’ (Audio)

변하지 않을 나의 영원한 favorite 앨범. 따지고 보면 이 곡이 수록된 앨범 <Dots And Loops>의 발매 연도가 1997년이니, 나는 이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를 지나 꽤 나중에 이들의 음악을 안 셈이다. 요즘 만들어진 곡들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사운드 퀄리티와 유행을 따지지 않아도 될 만큼 세련된 악기 구성, 그 위에 얹혀진 나른한 보컬의 조합이 도드라지는 Stereolab의 음악은 언제, 어디서 들어도 항상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Stereolab 'Brakhage'

 

10. Underworld ‘Sola Sistim’ (Audio)

일렉트로닉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The Prodigy, Chemical Brothers와 함께 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988년 데뷔한 이후 올해까지 약 28년째 활동 중인 Underworld는 음악이라는 것에 있어, 아직도 나에게 가장 큰 자극과 영감을 주는 존재다. 용돈을 모아 ‘퍼플레코드'에서 음반을 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11. 4Hero ‘Les Fleur’ (M/V)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음악을 싸이월드 BGM으로 했던 걸까? 아마 4Hero를 처음 알게 되었던 게 싸이월드에서였을 거다. 당시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는 음악을 구매하면 미니홈피에 들어갈 때마다 구매한 음악을 계속 나오게 할 수 있었다. 또 방문자가 그 음악 리스트를 볼 수도 있었는데 아마 4Hero를 그렇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의 미니홈피에서 나오는 음악이 무척 좋아 리스트를 보니 4Hero의 곡이었고, 따라 산 것이겠지. 여러 장르의 음악을 자양분 삼아 자신들의 방식대로 소화하는 그들의 음악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4Hero는 내 미니홈피 BGM의 필살기 같은 존재였다.

 

12. Calvin Harris ‘Love Souvenier’ (Audio)

그가 누군지 알지 못한 채 겉표지만 보고 CD를 산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실 이 곡을 제외한 Calvin Harris의 곡들을 즐겨 듣진 않지만, 여름이 되면 꼭 이 음악을 한 번씩 듣곤 한다.

 

Writer

GRAYE는 군산 출신의 프로듀서다. 비트 신의 음악을 탐구하는 것으로 시작해, 전시와 무용 등 다방면의 예술 세계를 만나는 것으로 꾸준히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013년 [MON] EP로 인상적인 데뷔를 치렀고 [{notinparis}], [Junk Pixel/Empty Space] 등의 음반을 발표했다. 토키몬스타(TOKiMONSTA), 온라(Onra) 등의 내한 파티에서 오프닝을 맡는 동시에 '소음인가요', 'Crossing Waves' 등의 전시에 참여하고 'Fake Diamond' 무용 공연에 뮤직 수퍼바이저로 참여하는 등 현재 한국 비트 뮤직 신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2014년 GQ KOREA는 그를 ‘6인의 비트메이커’로 선정했고, [Junk Pixel/Empty Space]는 린 엔터테인먼트가 꼽은 2015년 한국 팝 싱글 1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