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한국 콘텐츠가 계속 강세다. 완벽한 피지컬을 찾는 예능 <피지컬 100>의 깜짝 흥행부터 그 뒤를 이는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글로벌 비영어권 TV 부문 1위를 차지한 <더 글로리> 등 K-매운맛에 정신 차릴 새가 없다. 모두 높은 몰입도를 선사하는 수작들이지만, ‘강한 인물’ 혹은 ‘악한 자’를 노골적으로 부각하는 서사에 정신적 피로가 덤으로 따라온다. 이럴 때 만나는 다정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는 반갑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강조하는 사회, 아픈 지구를 증명하는 이상기후, 조직 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일상까지 스크린 밖의 현실도 만만치 않으니까.

 

적자생존을 벗어난 인류의 비결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다윈은 억울하다. 그의 ‘진화론’이 적자생존 법칙의 최전선에 서게 된 것은 후대 학자들의 자의적 해석이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잘못 해석된 진화론을 내세워 우생학을 이용한 무리가 ‘약육강식’ 논리를 인간 사회에 적용하고자 한 것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거대하고 강한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역사를 짚으며, 생물학적 정보를 활용한 반박을 시작한다. 인간이 왜 유일하게 작은 눈동자와 흰자를 가질 수 있었는지, 직립보행을 이루며 자유로워진 손은 의사소통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지 알아갈수록 경이롭기만 하다. 눈을 맞추고 동작을 통해 쌓아온 의사소통 능력은 다정함을 타인과 나누는 창구가 되어왔다. 그리고 이런 퍼즐의 조각은 ‘자기 가축화’된 개와 공감 능력이 높은 보노보 등 다른 종의 사례로 확장된다.

본문을 인용한 카드뉴스 © YES24

역사학, 생물학, 사회학 등의 학문을 총망라한 이 책은 점차 현대 사회로 주제를 옮긴다. 이토록 다정한 인류가 모여 이룬 사회가 왜 분열의 장이 되었는지 파고든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깊게 이해하고 공감할수록 인간은 사회적 경계를 더 강하게 인식하고 그 밖의 구성원은 배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발생하는 차별과 분열은 점차 잔인해지고 규모도 커졌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를 공포와 경멸의 세계로 이끌기보다는 결국 ‘우리’의 범주를 넓히고 서로 알아가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나치의 눈을 피해 유대인을 도운 유럽인같이 인류애가 실현된 사례를 찾고야 만다. 그리고는 타인과 교류하면서 넓어지는 관점과 시야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필수 불가결한 경험임을 강조한다. 꽤 두꺼운 책이지만 짜임새가 촘촘하고 사례가 다양해 지루할 틈이 없다.

 

생각보다 우리, 잘하고 있습니다!

<지구를 위하는 마음>

뉴스를 보면 기분 좋은 소식보다 끔찍한 사건 사고를 더 많이 접하게 된다. 그 중엔 점점 일상을 침범하는 이상기후도 포함된다. 쏟아지는 폭우, 극심한 더위에 병든 지구 이야기는 더 이상 머나먼 북극만의 걱정거리가 아님을 체감하게 된다. 이미 늦은 것은 아닌지 걱정도 앞선다.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생활용품 브랜드, 육식을 덜어낸 식단, 기름 대신 전기로 굴러가는 자동차 등 다양한 대안이 등장하고 있지만, 과연 대자연의 분노를 누그러트리기 충분한지 아리송하다. 이런 마음을 심리학을 기반으로 다루며 어떤 자세와 감정으로 지구에 무해한 행동을 계획해야 하는지, <지구를 위하는 마음>은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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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자연 친화적이다. 온갖 동식물 친구들이 책을 집어 들라고 손짓하고 있다.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다. 또한 전기밥솥 보온 기능만 사용하지 않아도 온실가스가 크게 절감된다는 도입부는 친환경 일상이 멀지 않게 느껴지게 한다. 저자는 담뱃갑에 붙은 충격적인 사진이나 영화 <돈 룩 업>에 등장한 케이트의 패닉을 사례로 들며 공포나 좌절감보다 희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긍정적 변화의 증거를 통해 생각보다 인간의 지구를 위한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DMZ같이 자연 스스로 회복한 지역, 멸종위기에서 벗어난 동물들은 우리가 갖게 될 마지막 기회를 증명한다. 친환경 행동을 촉구하는 단계로 이어지는 빌드업은 탄탄하고, 쉬운 실천 방법부터 차근차근 소개하여 심리적 장벽을 허물었다.

 

조직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실험하는 커리어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

제목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저자 부부는 ‘놀고 있다’는 것이다, 쉬는 것이 아니라. 뭐가 그리 다를까 싶지만, 놀고 있다는 단어에는 적극성과 자율성이 진하게 느껴진다. 이들은 조직 밖에서 일을 놀이처럼 다양하게 시도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개척해 나간다. 물론 그에 따라 포기해야 했던 것도 있지만, 20여 년 동안 이곳 저곳에서 광고 카피라이터로서 정진한 세월은 그대로 자산이 되어 글로 먹고사는 삶을 실현해 주는 듯하다. 회사안에서 견디고 버텨봤던 사람들이 내린 결단은 빠듯하지만 유쾌한 삶으로 인도한다.

본문을 인용한 카드뉴스 © YES24

글의 전반부는 ‘부부’에 초점을 맞춘다. 40대에 결혼을 한 두 사람은 각기 살아온 세월에서 묻어나는 개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한 지붕 아래서 가족이 되었다. 글 잘 쓰는 남자와 기획 잘하는 여자는 틀과 위계의 세계를 떠나 함께 일을 만들며 해방감을 마음껏 누린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인물은 대개 비범하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저자는 생각보다 허술한 면모를 마구 드러내며 한없이 친근해진다. 물건과 길을 시도 때도 없이 잃어버리지만 그래도 괜찮은 일상이라며 허허 웃는 듯하다. 이 책은 퇴사를 응원하는 콘텐츠가 아니다. 인생의 무게를 어디에 놓을지 결정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키를 이끌어가는 현장르포 같다. 힘들지만 어찌어찌 굴러가는 ‘일놀놀일’ 생활의 사례로 조직 생활에 염증이 난 사람들에겐 정감 가는 경험담이 될 것이다.

이 세 권의 책은 다정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희망찬 삶을 응원하지만, 감성에만 호소하지 않는다. 관찰과 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고, 몸소 도전하고 경험한 기록을 모아 읽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생각하도록 돕는다. 경각심을 일깨우는 ‘충격 실화’나 빌런과 빌런의 대결을 그리는 ‘피카레스크’와 달리 다정한 이야기는 힘이 부족하다는 오해를 차근차근 바로잡는 셈이다. 힘들었던 하루를 희망찬 서사로 중화하고 나면, 작은 변화를 조금씩 만들어 나갈 용기가 차오른다 .

 

Writer

넓고 깊게 이야기를 담고 싶은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