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쇼터의 하드밥 명반 <Speak No Evil>(1964)

그래미를 13회 수상한 테너 색소폰 거장 웨인 쇼터(Wayne Shorter)가 지난 3월 2일 로스앤젤레스의 병원에서 89년의 생을 마감했다. 그는 아트 블레키의 재즈 메신저 사단의 유망주였으며, 마일스 데이비스의 2기 퀸텟 멤버로 영입되어 <In a Silent Way>(1969), <Bitches Brew>(1970) 같은 명반에 이름을 올렸다. 그 후 조 자비눌, 미로슬라프 비토쉬와 함께 5인조 퓨전 그룹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의 창단 멤버로 활동하였고, 솔로 활동과 다른 뮤지션과의 콜라보를 통하여 재즈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올해 2월 그래미 어워드에서 레오 제노비스(Leo Genovese)와 함께 연주한 곡 ‘Endangered Species’로 최우수 즉흥연주상을 받아 13번째 그래미상 소식을 들은 지 불과 한 달이 되지 않은 시점이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그는 테너 색소폰과 소프라노 색소폰의 달인으로 수많은 재즈 스탠더드를 남긴 레전드였는데, 그에 대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 몇 가지를 알아보았다.

 

엉뚱한 생각과 행동의 ‘Mr. Gone’

어린 시절부터 공상에 빠지고 다소 엉뚱한 대답을 하던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Mr. Gone’이었다. 그를 잘 아는 지인은, “누군가 그에게 시간을 묻는다면 그는 우주에 대해 설명할 것이고, 이어서 우주와 시간 간의 연결고리에 대해 답할 것”이라며 그의 별명에 관한 예를 든 적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우주를 날아가는 마블 코믹스의 영웅들을 좋아하여 만화나 그림을 그려서 상을 타기도 했는데, 성인이 되어서는 찰리 파커나 디지 길레스피 같은 비밥 뮤지션이 그의 새로운 영웅이 되었다. 그래미상을 받은 최근 앨범 <Emanon>(2018)에는 DC 코믹스의 작가와 함께 작업한 74페이지의 그래픽 노블이 수록되어 있다.

재즈 메신저 시절의 웨인 쇼터(색소폰)와 리 모건(트럼펫)

 

일찍 예보된 ‘웨더 리포트’

웨인 쇼터가 조 자비눌(Zoe Zawinul)을 처음 만난 것은 ‘웨더 리포트’(1970~1986)가 결성되기 10여년 전이었다. 두 사람은 루키 시절에 메이나드 퍼거슨 빅밴드에서 만나 친분을 쌓았고, 언젠가는 함께 밴드를 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조 자비눌은 캐논볼 애덜리의 밴드에서, 웨인 쇼터는 아트 블레키의 밴드에서 음악적으로 진일보했고, 작곡 능력이 있는 젊은 뮤지션들을 선호했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퀸텟에서 다시 만나 재즈 퓨전의 꿈을 구현하였다. 처음에는 외향적인 조 자비눌과 내성적인 웨인 쇼터가 만나 각자의 개성을 키웠지만 밴드는 점점 조 자비눌의 의지와 방향성에 따라 운영되었고, 1986년 2월 웨인 쇼터는 솔로 활동에 매진한다며 밴드를 탈퇴하였다. 하지만 혼자가 된 웨인 쇼터는 한동안 음악적인 슬럼프에 빠졌다.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Footprints’(1967, 스웨덴)는 그의 대표적인 재즈 스탠더드다

 

조니 미첼과 티나 터너와의 인연

웨인 쇼터는 퓨전을 추구하면서 다른 장르의 뮤지션들과 친하게 지냈다. 조니 미첼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다가 중도에 사라져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은 베이시스트 자코 패스토리우스를 찾으러 갔다가, ‘웨더 리포트’ 일행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프리즈비(원반)를 던지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자코가 혼자 연주하던 웨인 쇼터를 향해 프리즈비를 던지자 그가 곁눈질로 프리즈비를 잡아채던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조니 미첼은 웨인 쇼터가 마치 도인이나 수행자처럼 비범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를 자주 세션 뮤지션으로 초빙하면서 평생 우정을 나누었다. 티나 터너의 경우에는, 남편 아이크 터너의 폭력을 피해 아이와 함께 그의 집으로 도주하여 웨인 쇼터의 가족과 함께 6개월을 숨어 지내며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며, 그를 생명의 은인이라 표현한 바 있다.

웨더 리포트의 최고 히트곡 ‘Birdland’(1978 실황)

 

불행한 사건이 이어진 가족사

웨인 쇼터의 명반 <Speak No Evil>(1964)의 표지에 나오는 여성은 그의 일본인 아내로, 그와의 사이에서 딸 ‘미야코’을 낳았다. 그가 작곡한 오리지널 ‘Miyako’와 ‘Infant Eyes’는 딸을 위해 만든 곡이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고 두 번째 아내를 맞았지만, 그와의 사이에 낳은 딸은 14세의 나이에 갑작스러운 병으로 요절하였다. 게다가 이로부터 10년 후인 1996년, 아내는 이탈리아에서 공연 중이던 그를 만나러 가다가 TWA-800으로 알려진 비행기 사고로 조카와 함께 사망자 명단에 올랐다. 웨인 쇼터의 임종을 지킨 마지막 부인은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내의 친구로 알려졌다. 그는 두 번째 아내를 통해 일본에서 건너온 니치렌 불교를 소개받았으며, 지난 50여 년 동안 독실한 신앙 생활을 유지하였다.

웨인 쇼터, 에스페란자 스폴딩 ‘Footprints’(2014)

 

웨인 쇼터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