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프 발츠(Christopher Waltz)는 최고의 악역 배우로 정평이 났다.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에서는 유태인을 사냥하는 나치 장교, <장고: 분노의 추격자>(2012)에서는 냉혹한 현상금 사냥꾼, <007 스펙터>(2015)에서 제임스 본드를 고문하는 비밀조직 두목 블로펠트 배역을 맡아 교활하고 냉혹한 악인으로 등장했던 그가, 미국으로 진출한 후 첫 드라마인 <컨설턴트>(2023)의 주연을 맡았다. 위기에 빠진 게임 개발사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컨설턴트 ‘패토프’ 역인데, 드라마에서 그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포스터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의 역할이 진정 악역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엉뚱하고 기묘하며 실체를 알 수 없는 의문투성이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여덟 편으로 구성된 <컨설턴트>는 로튼토마토 75%의 괜찮은 평가를 받았으며, 올해 2월 말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 올라와 바로 상위에 랭크되었다.

아마존 드라마 <컨설턴트>(2023) 예고편

 

원작 소설과는 다른 설정

드라마의 원작인 동명 소설 <The Consultant>는 호러 작가 벤틀리 리틀(Bentley Little)의 2016년 작품이다. 데뷔 소설 <The Revelation>(1990)으로 브람 스토커 신인 작가상을 받은 이래, 지금까지 매년 한 권꼴로 신작 소설을 내고 있다. 애리조나의 자택에서 집필하며 방송이나 언론에는 별로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스티븐 킹에게 받은 ‘Horror Poet Laureate’라는 찬사를 전면에 내세우며 인기 작가로 등장했다. 그는 자신의 소설이 미스터리나 스릴러 장르가 아니라 호러 장르임을 명확히 드러내며, 책 제목도 단순하게 한 단어로 설정한다. <The Consultant>는 위기에 빠진 게임 개발사 ‘CompWare’에 중년의 컨설턴트 ‘패토프’가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나타난 후 기이하고 섬뜩한 일이 벌어진 끝에 회사는 회생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호러인 원작 소설과는 달리 드라마는 많이 코미디의 요소를 많이 담아 결이 상당히 다르다는 지적을 받았다.

<The Creepist Man in Media Right Now> by Prime Video

 

설명이 부족한 불친절한 드라마

여덟 편의 드라마가 끝난 후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하다. 드라마는 수많은 의문 사항을 제기하지만 그 어느 것도 명쾌히 설명하지 않는다. 회사의 젊은 오너는 사망하게 된 내막이나, 멤버십 클럽의 여인 ‘밀라니’의 정체는 무엇인지, 직원의 약혼녀 패티가 은밀한 자료실에서 했던 일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패토프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끝난 점이 가장 불친절하였다. 원작에서는 사악하고 초자연적인 보스 이미지로 ‘패토프’을 묘사했지만, 드라마에서는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우며 혼자서는 계단도 오르지 못하는 기이한 이미지로 등장했다. 어쨌든 사악한 내면과 엉뚱한 모습을 동시에 갖고 있는 크리스토프 발츠를 캐스팅함으로써 코미딕 스릴러(Comedic thriller) 양 극단의 요소를 모두 갖추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곤경에 처한 회사를 재기하게 만드는 게임을 찾아내는 패토프

 

점차 장르를 형성하는 사무실 호러

* 아래 줄거리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근래에 회사의 개념이 고도화되고 IT회사가 대형화되자 현대적인 사무실 환경에서 오는 직장 호러(Workplace Horror)가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훌루(Hulu)의 8부작 <Devs>(2020)나 애플 TV의 9부작 <Severance>(단절, 2022) 모두 첨단 IT회사를 배경으로 했으며,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다수의 에미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아마존의 <컨설턴트> 역시 모바일 게임 개발사를 배경으로 하지만, 주인공 패토프는 연필을 깎거나 수동 타자로 문서를 만들고 핸드폰을 ‘Hand Device’라고 부르는 등 첨단 기술에 익숙하지 않다.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들을 회사로 소집하여 시간 내에 도착하지 않으면 즉각 해고하였고, 몸에서 냄새가 나는 직원을 찾아내 몸을 씻게 하는 등 황당하고 생뚱맞은 조치를 취하며 빠르게 회사를 장악한다. 악몽과 같은 상사와 지옥과도 같은 직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다면, 사무실 호러 장르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지도 모른다. 애플TV의 <Severance>는 시즌 2 방영을 확정하였지만, <컨설턴트>의 후속 제작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비록 마지막 장면에서 페토프는 ‘마이웨이’ 음악과 함께 회사를 떠났지만, 그의 정체가 사람인지, 악마인지, 아니면 로봇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가 남긴 의문점들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라 시즌 2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Prime Video 편집 영상 <The Creepest in Media Right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