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운슬러>(2013)는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요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카데미 4관왕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퓰리처 수상 작가 코맥 맥카시(Cormac McCarthy) 원작이며, 막 <프로메테우스>(2012)을 끝낸 리들리 스콧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명감독의 영향력을 반영하듯, 주인공 ‘카운슬러’ 역에 마이클 패스벤더, 그의 상대역에 페넬로페 크루즈, 그리고 페넬로페 크루즈의 실제 남편 하비에르 바르뎀이 함께 출연했다. 모든 사건의 배후인 악녀 역에 카메론 디아즈, 마지막 퍼즐은 무려 브래드 피트가 맞춘 초호화 캐스팅이다. 영국 배우 토비 켑벨(Toby Kebbell)이 레스토랑에서 주인공에게 시비를 거는 단역으로 잠깐 나와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다. 다시는 한 영화에 모으기 힘들 ‘캐스트 앤 크루’ 조합이다 보니 영화 팬들의 기대감은 엄청 높았고, 전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필적할 만한 걸작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2013년 10월의 개봉 결과는 실망스러웠고, 영화에 대한 평가는 양 극단으로 나뉘어졌다. 제작비 2,500만 달러를 두배 이상 넘어선 7,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으나, 개봉 전에 형성된 기대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영화 <카운슬러>(2013) 예고편

최근에 이 영화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오래 지나 대중에게 잊혔거나 저평가된 명작을 골라내어 상기시켜 주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그 중 하나다. 그는 “나 자신이 멕시코 출신으로 영화 <카운슬러>의 죽음과 비극은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한번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면 다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코멘트로 이 영화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21세기 최고로 섹시한 영화라 불리기도 하는 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지나치게 무겁고 지루한 대화체

로튼토마토 34%, 메타크리틱 48점(50점 만점)이 말해주듯,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가장 많이 지적된 점은 대화가 너무 길고 너무 장황하다는 것, 특히 범죄로 가득한 미스터리 영화가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소설과 시나리오는 전개 방식과 결이 다른데, 소설가였던 코맥 맥카시가 직접 영화 대본을 썼으니, 이런 문제를 자초했다는 말이 영화계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당시 시나리오를 읽어본 영화 관계자들은, 전반적으로 구성은 좋았으나 어떻게 영상으로 옮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다수 있었다. 가령 카운슬러와 다이아몬드 상인 간의 7분간 이어진 대화, 카운슬러와 ‘웨스트레이’(브레드 피트)와의 8분간 대화가 너무 장황하며, 카운슬러가 약혼녀를 구명하기 위해 다급하게 접촉한 카르텔 간부 ‘제페’(Jefe)와의 통화에서는 스페인의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Antonio Machado)가 언급될 정도로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대화가 오간다.

말키나의 유명한 ‘Truth has no temperature’ 언급에서 사건의 전조가 전해진다.

 

마케팅 전략에서 실패한 20세기폭스

리들리 스콧 감독은 박스오피스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20세기폭스사의 마케팅 전략이 부실했다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이 영화를 매우 사랑한다며 애정과 자신감을 표현했던 감독은, 개봉 첫 주에 박스오피스 성적 780만 달러로 4위에 주저앉자, 영화사가 제대로 마케팅을 했으면 충분히 5,000만 달러를 거둘 수 있는 영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출연배우 이름을 하나씩 거론하며 인기 배우의 스타 파워를 충분히 살렸어야 하는데, 그 대신 영화사는 설정이나 줄거리를 일찍 공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영화사의 잘못된 마케팅 때문인지 북미시장에서는 제작비 2,500만 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1,700만에 머물렀지만, 해외에서 5,4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체면치레는 했다. 평론가 중에는 “리들리 스콧의 비주얼을 담은 코맥 맥카시의 오디오북”이라며 일반적인 평가와는 달리 ‘비운의 역작’이라 칭찬하는 이도 있으며, 광적인 팬들은 이 영화를 컬트 클래식으로 규정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재평가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화하고 있다.

영화 본편과는 별도로 만든 단편 <카운슬러: 란제리>에는 마이클 패스벤더와 영화의 마지막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나탈리 도머가 나온다.

 

폭력과 섹스, 그리고 패션

* 줄거리에 관한 중요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코맥 맥카시의 작품이 그렇듯, 이 영화 역시 멕시코의 위험한 도시 ‘후아레즈’를 배경으로 잔혹한 폭력 장면과 파격적인 성적 묘사가 나온다. 그 중 폭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용어가 ‘볼리토’(Bolito)와 ‘스너프 필름’(Snuff film)이다. ‘볼리토’는 당시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입소문을 타며 화제가 되었던 암살 도구인데, 마지막에 웨스트레이가 대낮의 런던 거리에서 이 방식으로 살해되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안톤 예거’의 악역에 대비되는 인물이 <카운슬러>에서는 카메론 디아즈가 연기한 ‘말키나’인데, 그는 욕망에 가득 차 폭력과 섹스 장면의 중심에 서는 인물이다. 하지만 폭력 장면이 지나치게 선정적이며 성적 묘사가 쓸데없이 길고 자세하게 묘사된다는 지적도 있다. 패션 또한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인데, 조지오 아르마니와 폴라 토마스(‘Thomas Wylde’ 설립자)가 제공한 화려한 의상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카운슬러>에서 화제가 되었던 ‘볼리토’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