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없는 전시가 무사히 작동할 수 있을까? 무사히 작동할 수 있다면 제도권 미술은 극복될 수 있는 것일까? 갤러리스트이자 출판업자, 큐레이터였던 세스 시겔럽이 1968년에 장소로부터 자유로운 전시를 기획했다. 일명 <제록스 북> 프로젝트였다 — 원제목은 <칼 안드레, 로버트 베리, 더글러스 휴블러, 조셉 코수스, 솔 르윗, 로버트 모리스, 로렌스 위너>다. 제록스 복사기를 사용해 초판 1,000부를 발행한 (도록이 아닌) 책으로서의 전시로, 원본 오브제 개념을 부정함으로써 제도권 미술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시도였다. <제록스 북>은 언제라도 독자-관객에 의해 임의로 복제될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도 디지털 파일의 형태로 넷상을 떠돌아다닌다. 칼 안드레, 로버트 베리, 더글러스 휴블러, 조셉 코수스, 솔 르윗, 로버트 모리스, 로렌스 위너 등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한 개념미술 작가 7인이 참여했다.

전시를 기획한 세스 시겔럽(Seth Sigelaub), 이미지 출처 – 링크

<제록스 북>은 그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여 일견 새로운 형태의 화이트큐브를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얀 겉표지에는 참여 작가들의 이름이 나열돼 있을 뿐이고, 큐레이터는 그 어떤 위계도 부여하지 않기 위해 작품 배치에 개입하지도 않았다 — 작업들은 작가 이름을 기준으로 알파벳 순으로 배치되었다. 작품 제목도, 전시 서문도, 해설과 비평도 일절 실리지 않았다. 작가들에게는 25페이지의 지면이 동일하게 주어졌고, 주어진 조건 안에서 자신의 작업을 선보이도록 요청받았다. 이미 제작한 작품의 기록만 아니면 된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중립성을 표방하는 것이 시겔럽의 의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전시의 조건들을 표준화함으로써 각 미술가들의 프로젝트나 작품에서 결과된 차이들이 정확히 미술가 작품의 내용일 것이라는 생각이었죠. 그것은 하나의 전시, 책 혹은 프로젝트의 방식으로 전시 과정에 내재해 있는 제작 조건들을 의식적으로 표준화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요컨대, 시겔럽은 각 작품의 특이성을 포착하기 위해 마치 실험실처럼 균일한 전시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특이성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을까?

세스 시겔럽이 기획한 <제록스 북>의 표지 이미지, 이미지 출처 – 링크

 

복제 사회의 물질성

칼 안드레는 25페이지를 넘기는 과정에서 사각형이 하나씩 늘어나는 작업을 선보였다. 별다른 계산 없이 정사각형 판지 25개를 하나씩 떨어뜨려 무작위 패턴을 만들어냈다. 훈련받은 작가의 숙련된 기술이 있어야 하는 작업은 아니며, 기본적인 매뉴얼만 따른다면 실상 누가 제작을 하든 크게 상관이 없었다. 실제로 안드레는 시겔럽과 전시 제작을 지원한 컬렉터 존 웬들러에게 작품 제작을 일임했다.

<제록스 북>에 실린 칼 안드레 작업의 일부, 이미지 출처 - 링크

이 작업은 안드레의 초기 미니멀리즘 작품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그 시기에는 작품과 작품 아닌 것의 경계가 뚜렷한 편이었으며, 물질 그 자체와의 직접적인 만남이 크게 강조되었다. 그런데 <제록스 북>에 실린 작업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작품인지 명시할 수 없을 정도로 윤곽선이 모호하고, 물질의 현존 역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사각형 복사 이미지는 실제 물질의 그림자를 담고 있는 '비물질적인' 이미지에 더 가깝다. 이런 식으로 물질은 언제 어디서든 복제 및 순환될 수 있는 '아이디어'에 더 가까워진다. 그렇지만 작품은 책-전시라는 환경으로 인해 비물질적 상태로 증발해버리지는 않는다. <제록스 북>이라는 매체가 윤곽도 물질성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 작품에 윤곽과 물질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 덕택에 손에 잡히지 않던 사본 이미지가 비로소 손에 쥘 수 있는 사물로 변화해 관객-독자와 조우하게 된다. 거의 모든 것이 복제되는 동시대 사회에서 사본에 형태를 부여하는 지지체의 역할에 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전시의 본질은 무엇인가?

한편 조셉 코수스는 ‘프로젝트의 제목’, ‘사용된 제록스 복사기의 사진’, ‘제록스 복사기의 사양’ 등 <제록스 북>을 이루는 구체적인 요소들을 25페이지에 걸쳐 하나씩 나열하였다. 원래는 사진을 실을 예정이었으나 출판 과정에서 사정이 여의치 않아 문자 언어로 대체했다고 한다. 경위야 어찌 되었든 언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 작업은 비슷한 시기에 제작한 코수스의 다른 작품들과 기본 방법론을 같이 한다. 미학적 경험을 제공하는 작품의 시각적 형태보다 작가의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는 기본적인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 1965년에 제작된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에서는 의자의 사전적 정의와 의자의 사진 그리고 실제 의자를 병치하여 놓고, 관람자로 하여금 의자와 재현 및 예술의 본질 등에 관해 사유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에게 작품의 형태 자체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전시 장소가 바뀔 때마다 사용되는 의자도 바뀌었다. 그럼에도 코수스가 작품을 통해 던지고자 했던 질문은 일관성 있게 유지되었으며, 그에 따르면 바로 이것이 예술적인 것이다.

조셉 코수스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One and Three Chairs)(1965), 이미지 출처 - 링크

<제록스 북>에서는 전시라는 매체의 본성이 탐구된다. 하지만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와는 달리 독자-관객은 페이지를 넘기면서 전시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순차적으로 하나씩 인식하게 된다. 이미지 중심이었던 안드레의 작품과 달리 코수스의 작품은 확연히 독서에 가까운 경험을 제공한다. 책-전시는 작품의 시각적 형태보다는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정보’를 더 중시하는 코수스의 태도를 잘 반영한다. 독자-관객은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책-전시의 의미와 전시 매체의 본질 등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작가가 나열한 요소들을 모두 합친다면 그걸로 어엿한 하나의 책-전시가 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전시가 비로소 전시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대체 어떤 요소가 이를 산출해내는 것일까? 여러 가지 질문이 줄을 잇지만 이는 미학적 체험이 아닌, 독서를 통한 사유에 가까운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록스 북>에 실린 조셉 코수스 작업의 일부, 이미지 출처 – 링크

 

오브제 아닌 작품

마지막으로 솔 르윗은 <월 드로잉> 연작의 초기 모델을 보여줬다. 페이지마다 넷으로 나뉜 네 개의 정사각형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각각의 정사각형은 수직선, 수평선, 대각선으로 채워져 있었다. 총 24개의 경우의 수가 25페이지에 걸쳐 겹치지 않게 나열되었다. 르윗 역시 작품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가 작가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고, 그 아이디어가 잘 존중되기만 한다면 작품을 누가 제작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이렇게만 봐서는 앞서 살펴본 칼 안드레의 작품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우연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안드레의 작품과 달리 르윗의 작품은 대단히 논리적이고 계산적이며 '작가의 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직접 개입하기도 한다 — 드로잉 자체가 단순해 누구라도 대신 제작할 수 있지만 말이다.

<제록스 북>에 전시한 솔 르윗의 작업은 책-전시라는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월 드로잉>과는 조금 성격이 달라진다. '월 드로잉'의 경우 전시 형장에서 직접 제작되며, 제작하는 이의 손에 새겨진 습관에 따라 (제아무리 매뉴얼을 따른다고 할지라도) 작품의 형태가 미묘하게 바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제록스 북>의 경우에는 전시 자체가 복제되기에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드로잉이 동일한 방식으로 제시된다. 따라서 형태상의 미묘한 변화는 발생하기 어렵다. '원본'이라는 개념은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부정되고, 작가의 의도는 완전히 동일한 형태로 끊임없이 반복되고 이곳저곳으로 퍼져 나가게 된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작가의 의도는 정말로 항상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을까? 관람자는 여기서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것이 예술가의 의도라는 것에 앞서 오브제로서의 작품이 송두리째 부정되고 있는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부유하고 정박하는 전시

세 작품은 오브제로서의 작품을 부정한다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전시 역시 작품 및 전시의 원본성을 적극적으로 부정함으로써 그 어디에도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 전시를 기획해 제도권 미술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모색하였다. 물론 '원본' 책이 현재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기는 하지만, 디지털 버전으로는 얼마든지 무료로 <제록스 북>에 접근할 수 있다. 오히려 복사기 문화가 인터넷 문화로 확장되며 책-전시의 반항적 힘이 더욱 배가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제록스 북>이 제도권 미술에서 벗어나는 데 완전히 성공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제도권 미술 역시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록스 북>이 낱장으로 분해되어 전통적인 전시장에서 전시한 사례도 있다. 액자 처리되어 하얀 갤러리 벽에 걸리는 순간 <제록스 북>은 일종의 원본성을 다시 획득하게 된다. 이때 <제록스 북> 프로젝트는 완전히 새로운 전시로 재탄생해 제도 안에 병합되게 된다. 게다가 이 책-전시는 개념미술의 중요한 축으로서 공식 미술사 안에 편입되었으므로 제도권 미술 안에 흡수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참고문헌

Chris Rawcliffe, ‘THE XEROX BOOK: The Book Was an Exhibition That Became an Artwork’, <Ambit> no.214(2013)
김명진, ‘세스 시겔롭의 '전시로서의 출판' 연구: 1960-70년대의 개념미술과 출판의 관계’(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학위논문, 2021).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큐레이팅의 역사>(서울: 미진사, 2013), 송미숙 옮김, pp.18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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