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산업과 예술의 중심이 된 대도시 글라스고(Glasgow)에는 ‘피플즈 팰리스’(People’s Palace)라는 역사적인 명소가 있다. 당시 수상이던 로즈베리 백작에 의해 1898년에 건축되어, 지금까지 도시의 문화와 역사를 상징하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1998년에는 개관 100주년을 맞아 장기간 휴관에 들어가 대대적인 수리와 복원을 거쳤으며, 이 기간 중에 천장 돔 아래의 팔각형 벽면을 활용하여 글라스고의 역사를 상징하는 벽화를 남기기로 했다. 당시 박물관의 의뢰를 받고 벽화를 그린 화가가 바로 글라스고를 대표하는 켄 커리(Ken Currie)다. 그는 도시의 근대화 역사의 상징이 되었던 ‘칼튼 방직노동자 학살사건’(Carlton Weaver’s Massacre, 1787)을 묘사하는 어두운 색채와 강렬한 이미지의 벽화를 그려 놓았다.

글라스고의 명소 피플즈 팰리스 전경
켄 커리의 피플스 팰리스 벽화 중 하나

켄 커리는 1980년대 글라스고 예술학교(Glasgow School of Art)에 다닌 동료들과 함께 ‘뉴 글라스고 보이즈’(New Glasgow Boys)라 불리던 예술학파의 일원이다. 그 시절 대세를 이루었던 급진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대처 수상의 정책을 혐오했고, 글라스고의 산업화 과정을 상징하는 조선소와 항구, 그리고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그림의 모티프로 삼았다. 칼튼 방직노동자 학살사건을 그린 것도 관심사의 연장선에 있었다. 이 사건은 1787년에 임금 차감과 직장 폐쇄에 항의하여 파업을 일으킨 노동자와 이를 진압하던 경찰이 충돌하여 세 명의 노동자가 사살된 사건으로, 글라스고의 산업화 과정과 노동 운동에 중요한 기점이 되었던 사건이다.

Blind Dweller <The Haunting Paintings of Ken Currie>(2022)

켄 커리의 또 다른 관심사는 인간의 신체다. 그것도 아름답고 정상적인 신체가 아니라, 나이가 들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려서 왜곡되거나 뒤틀어진 허약한 신체를 추상적으로 해석하여 자신만의 그림체로 표현한다. 그는 종종 병원이나 학교의 위탁을 받아 업적을 기리기 위한 인물 초상화를 그리는데, 이 또한 흔히 볼 수 있는 사실적인 초상화와는 거리가 멀다. 세 사람의 암 전문의를 그린 ‘Three Oncologists’(2002)는 커리의 첫 초상화이자 대표작으로, 스코틀랜드 국립 초상화 박물관에 보존되었다. 이 그림은 암에 대한 인간의 공포를 투영하여 마치 악몽에서 유령이 출몰하듯 어두운 배경에서 경계가 흐릿하고 잔상이 남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에든버러 대학의 의뢰를 받고 그린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피터 힉스(Peter Higgs) 교수의 초상화도 널리 알려졌고, 근래에 그린 저명한 법의학자 데임 수 블랙(Dame Sue Black)의 초상화는 시신 앞에 선 그를 그려 ‘Unknown Man’(2019)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다.

<Three Oncologists>에 관한 켄 커리 인터뷰 영상

켄 커리는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화가지만, 그의 무섭고 으스스한 그림체 때문에 선뜻 그림을 구매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 기괴하고 독특한 예술을 다큐 형식으로 소개하는 리뷰 사이트 ‘Blind Dweller’에서 프란시스 베이컨을 소개했는데, 한 구독자가 그를 추천하는 댓글을 올리면서 다음 주제로 선정이 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제작한 영상 <The Haunting Paintings of Ken Currie>은 이제 6개월 만에 93만 조회 수를 넘어서며 온라인 상에서 점차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아래 온라인 사이트에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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