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를 맞은 한국대중음악상의 후보가 어제 발표되었다. 형편과 상황에 따라 시상식의 형태와 분위기는 매년 조금씩 달랐지만, 명성이나 시장 논리와 상관없이 오롯이 그 해 좋은 음악과 진정한 음악인을 소개하려는 시상식의 취지와 의지는 20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 시상식의 이름인 '한국 대중음악'은 단지 상대적인 대중성이나 인기를 의식한 용어가 아닌, 그 음악이 유명하든 하지 않든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다는 절대적인 접근성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인디포스트는 2018년부터 꾸준히 한국대중음악상 후보 밖 올해의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매해 강조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누가, 어떤 음악이 후보에 오르고, 오르지 못했냐가 아니라 이토록 좋은 작품과 멋진 음악인들이 있었음을 다시 기억하고 꼽아보는 일이다. 올해는 특별히 외부 필자들이 함께 참여한 인디포스트의 선정 리스트를 이틀에 걸쳐 공개한다. 오늘은 록, 팝, 일렉트로닉 부문을 다룬다.

* 음반과 노래 부문을 가리지 않고 장르별 한 팀 혹은 두 팀씩 선정했습니다.
** 노래와 선정 리스트는 인디포스트 각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과정 및 결과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록 부문

리치맨과 그루브나이스

게이트 플라워즈, ABTB 등을 거치며 21세기 한국 록 신에 굵직한 족적을 남겨 온 박근홍은 2022년에 다시 한번 일을 냈다. 젊은 피를 발굴해 새로 결성한 밴드 OVerdrive Philosophy(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가 바로 대표적인 성취. 아니나 다를까 이들은 한국대중음악상의 호명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혜성처럼 등장해 탄력적이고 농도 짙은 블루스 사운드의 향연을 들려줬던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의 기타리스트 리치맨과 베이시스트 백진희, 여기에 또 다른 멤버 이의호가 가세해 결성한 리치맨과 그루브나이스는 그야말로 사고를 쳤다. 이들은 끈덕진 블루스의 질감과 농염한 펑크(funk)의 그루브를 초혼한 음악으로 패기와 재기, 테크닉을 두루 과시했고, 국내 시상식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블루스의 본고장 미국의 세계 블루스 대회에서 한국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그저 느끼면 된다. 여전히 블루스가 이렇게나 젊은 음악임을. | 정병욱

리치맨과 그루브나이스 프로필 페이지

 

스쿼시 바인즈

광활하게 생성적이고, 날카롭게 자기 파괴적인 세계가 어딘가 존재할 수 있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흔한 록 앨범에 손쉽게 기대하는 직선적인 호쾌함이나 진득한 그루브, 뻔한 기승전결의 구조는 잊어버리자. 2022년 발표한 스쿼시 바인즈의 첫 정규앨범에는 사이키델릭의 몽환과 뒤틀린 오리엔탈리즘의 주술적 상상력, 묵직한 날것의 헤비니스 사운드가 동시다발적으로 어우러진다. 정규앨범 스타트는 비록 조금 늦었지만, 스쿼시 바인즈는 꽤 오랜 역사를 지닌 밴드다. 로큰롤라디오, 아시안 체어샷과 같은 쟁쟁한 베테랑 밴드들과 함께 '2013 올해의 헬로루키' 무대에 오른 바 있다. | 정병욱

스쿼시 바인즈 인스타그램

 

 

모던록 부문

마콤마

단단하고 묵직한 어둠 사이로 하얀 연기가 짙은 향기와 함께 피어오른다. 나른함과 섬세함을 가진 신해경의 목소리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찬 사뮈의 목소리를 파고든다. 극과 극을 달리는 보컬을 이어붙인 실험은 날카로운 마찰 아닌 경이롭고 아름다운 화합을 이끌어냈다. 여기에 이능룡의 수려한 기타 연주가 함께하니 극락의 조합이 탄생했다. 마콤마의 세계는 불안정해 서로의 자리가 있어야만 살아낼 수 있는 세상 같다. 서로를 향한 동경과 견고하고 각별한 믿음은 깊은 심연 속에서 하나 된다. 이들의 음악적 실험이 영생을 탐하는 이룩할 수 없는 영원한 숙제처럼 풀리지 않고 끊임없이 지속되길 바란다. | 조혜림

사뮈 인스타그램
신해경 인스타그램

 

보수동쿨러 & 해서웨이

몽환과 낭만, 깊은 우울과 여린 사랑. 비슷한 듯 살짝 비켜나는 키워드를 가진 밴드들이 하나의 다정한 앨범을 냈다. 2022년은 부산 신에서 탄생한 밴드들이 하나의 물결을 만들어 파도처럼 서울을 뒤덮은 해다. 그 중심에 있는 보수동 쿨러와 해서웨이의 평화로운 우정의 힘을 모아 자신들의 대표곡을 이어붙인 <LOVE SAND>란 앨범 타이틀을 만들었다. 언뜻 해서웨이의 곡 같지만 보수동쿨러의 존재감이 노래란 공간 안을 가득 매운다. ‘우리는 어디에 있어도 다정한 친구가 되는 거야.’라는 두 팀의 우정의 화합은 반짝이는 단발성 찰나가 아닌 깊고 은은한 영속적 연대를 꿈꾸게 하고, 미소한다. | 조혜림

보수동쿨러 인스타그램
해서웨이 인스타그램

 

 

메탈&하드코어 부문

INPHASE

첨단성은 거침없는 수용과 혼종을 통해 발현된다. 복잡한 리프와 화려한 변주, 다운튜닝된 기타와 그로울링 및 클린을 역동적으로 오가는 보컬까지. 모던 헤비니스의 다채로운 경향을 한데 뒤섞고도 탄탄한 에너지와 속도감을 흔들림 없이 밀어붙이는 INPHASE(인페이즈)의 메탈코어는 앨범 타이틀 'The Fractal'의 뜻 그대로 일종의 기하학적 쾌감을 선사한다. 정교한 구조적 접근과 자연스러운 연주의 합으로 인해 이 앨범이 이들의 데뷔작임을 잠시 잊었다가도 비장한 진입과 거침없는 질주, 폭발적인 울분으로 인해 우리는 다시 혈기를 예찬하게 된다. | 정병욱

INPHASE 인스타그램

 

The Jaxx

아이돌 댄스팝 신에만 현란한 세계관이 존재하고, 나른하고 세련된 발라드팝 시장에만 레트로 붐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2021년 12월, 2014년 결성 이후 근 10년 만에 발표한 정규앨범에서 The Jaxx(더 잭스)는 1990~2000년대 헤비메탈과 팝메탈의 분위기와 감성,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과 미학, 모호와 명쾌를 오가는 미래 지향적 세계관을 두루 녹여내는 데 성공한다. 시원하게 뻗치는 보컬과 전진과 정지를 우직하게 교차 반복하는 서사가 이들의 매력 앞에 주춤거리거나 그것을 쉽게 놓치지 말라 강조하는 듯하다. 'Rock Will Never Die'의 정언이 마이클 쉔커 그룹(Michael Schenker Group)의 주류 팝메탈에서 출발했음을 떠올릴 때 당대 흐름을 캐치한 더 잭스의 'NEW WORLD' 주창은 꽤 정합적이다. | 정병욱

The Jaxx 인스타그램

 

 

팝 부문

RM

이렇게도 저렇게도 즐길 수 있는 음악이 팝이라면, RM(알엠)의 <Indigo>는 좋은 팝 앨범이다. <Indigo>는 다채롭다. 노래 10곡에서 모두 다른 장르 특색을 느낄 수 있다. 첫 트랙 'Yun'에서는 힙합, '건망증'에선 포크, '들꽃놀이'에선 록이 두드러지는 식이다. 참여한 뮤지션 라인업은 어떤가. 에리카 바두, 앤더슨 팩, 조유진, 타블로, 김사월 등 여러 음악가가 목소리를 더했다. 국적도, 하는 음악도 모두 다른 아티스트를 모아 '흐름'을 만들 수 있는 사람, 지금으로선 그 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각기 고유한 노래들은 '알엠'이라는 바탕을 가졌으므로 자연스레 이어지며 하나의 앨범으로 완성된다. 열 곡의 노래를 저마다 명료하게 빚은 데서 젊은 음악가의 담대함과 자신감을 본다. 그리고 이는 걸어온 길을 제대로 바라본 자만이 품을 수 있는 태도일 것이다. 덧붙이자면, 부러 감추지 않는 가사 역시 팝의 미덕 중 하나다. “끝없이 물었네. 그냥 흘러도 되는 거야? 속하고 싶지 않던 데 속해도 되는 거야?” ('No.2' 중에서)같은 노랫말엔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게 된다. | 김유영

RM 인스타그램

 

요조

작가와 책방 주인을 오가는 전방위적 활동과 명성을 얻었을 초기에 불렸던 ‘홍대 여신’이라는 프레임 및 혐오 탓에 요조의 가사 쓰기와 보컬은 적잖이 평가절하되어 있다. 직전 정규앨범 <나의 쓸모>(2013) 이후 꽤 오랜만에 여러 곡을 수록한 이번 EP에는 요조의 장점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잘 드러나 있다. 억지로 길게 늘어뜨리지 않고도 긴 호흡으로 전달되는 보컬의 근력과 서사, 반대로 정교하게 라임과 플로우를 형성하는 잘 쓴 랩 가사 마냥 분명 산문의 형태를 띠고도 절묘하게 곡과 맞아떨어지는 가사가 마치 읽지도 않은 그의 책을 따라가는 듯한 문장의 리듬을 생성한다. 무엇보다 이번 앨범 <이름들>의 프로듀스를 맡은 이능룡의 차분하고 예민한 편곡과 로맨틱하고 사이키델릭한 사운드 디자인에는 요조의 소재와 이야기를, 가사의 무게를 마냥 무겁게도, 가볍게도 바라보지 않는 아름다운 신중함이 묻어난다. | 정병욱

요조 인스타그램

 

 

케이팝 부문

스트레이 키즈

스트레이 키즈가 꽃을 피웠다. 이 그룹은 정체성을 스스로 구축해내는 데 성공한다. 멤버 방찬, 창빈, 한으로 구성된 자체 프로듀싱 팀 ‘쓰리라차(3RACHA)’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소리꾼'(2021), 'Back Door'(2020), '神메뉴'(2020) 등 스트레이 키즈의 색깔을 만든 노래가 모두 쓰리라차의 작품이다. 미니앨범 <ODDINARY>의 타이틀곡 'MANIAC'은 이들이 성실하게 고민하고 부지런히 만드는 창작자임을 증명한다. 기묘하게 강렬한 그룹 고유의 색깔을 이어가되, 가사나 멜로디 면에서 한층 세련되고 노련해진 감각이 돋보인다. 스트레이 키즈는 그들의 장점 중 하나인 '거침없는 에너지'를 유연하게 가지고 놀 줄 알게 된 것처럼 보인다. 이전 노래들이 에너지를 거칠게 뿜어냈다면, 이번 곡들은 딴딴한 힘을 내면에 품은 채로 정교하고 매끄럽게 깎은 인상을 준다. '거미줄', 'Charmer', '땡', 'Muddy Water' 등의 수록곡이 타이틀곡과 더불어 앨범의 성격을 확정한다. 사나운 듯 우아한 앨범. | 김유영

스트레이 키즈 인스타그램

 

 

카라

데뷔 15주년을 맞이한 카라는 7년간의 공백을 깬 컴백곡 ‘When I Move’를 비롯 지난 10개곡을 차트 200위 안에 안착시키며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다. 화려한 메인 보컬은 없지만 카라는 수많은 아이돌 중에서 멤버 간의 목소리의 합이 독보적이다. 멤버들 특유의 맑고 달콤한 화음과 밝은 에너지는 15년 동안 조금도 사라지거나 변하지 않았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에너지 넘치는 소녀들은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 여전히 세상에 빛나고 있다. 카라 전성기를 목격했고 기억하고 좋아했던 모두의 꿈과 사랑, 추억을 지켜주는 기분 좋은 활동이다. | 조혜림

카라 트위터

 

 

일렉트로닉 부문

MADDYXP

신나게 슬픔을 말할 수 있을까? 매디엑스피(MADDYXP)가 지난 9월 발매한 정규앨범 <EPOCALYPSE>는 그것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11곡의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채워진 이 앨범을 듣는 내내 당신의 몸은 움직일 것이다. 앨범은 예열도 없이 첫 트랙 ‘TOWER ATOM’부터 시원하게 내달린다. 잘게 쪼개지는 비트, 착실하게 고조되는 멜로디, 혼란스러우나 아주 낯설지는 않은 박자가 돋보이는 첫 곡은 이 앨범을 끝까지 듣게 하는 미더운 시작이다. 모든 노래는 꿈과 현실, 몽환과 불안을 묘하게 오간다. 그리하여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기운이 앨범 내내 감도는데도, 열한 곡의 노래는 서로 부대끼거나 부딪치지 않는다. 매디엑스피의 목소리와 노랫말이 큰 역할을 했다. 매디엑스피의 목소리는 단호하지만 맑아서 힘들이지 않고도 귀를 기울이게 한다. 그 목소리로 읊는 노랫말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그러나 지금도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를 둘러싼 한 편의 이야기 같아서, 이야기책을 펼친 사람은 그 끝을 알고 싶어지고야 만다. | 김유영

매디엑스피 인스타그램

 

Stainus

잊힌 것에는 지긋지긋하고 소름 끼치는 망령이 있고, 반대로 반갑고 아련한 이름도 있기 마련이다. 동향의 전자음악가(Wona)와 힙합 프로듀서(cjb95)가 의기투합한 Stainus(스테이너스)는 2022년의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진지하게 탐구하지 않을 거라 쉬이 생각하는 트립합, 잉글랜드 브리스톨 사운드의 현대식 변주와 초혼을 선보였다. 둔탁한 질감의 올드스쿨 힙합 비트, 안개처럼 번져가는 무드 위에 드문드문 그루브의 생기를 더하는 브레이크, 흐느낌과 속삭임을 오가면서도 선율의 존재감을 전시하는 보컬 등이 비단 과거 유령의 모습이나 미학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 기준으로 멋진 음악의 자격이 될 개성 있는 사운드 조합과 단단한 비트의 합을 완성한다. 단 4곡이지만 모두가 타이틀곡이 될 법한 매력과 완결성이 일회성 싱글 너머의 선명한 의지와 태도를 짐작하게 한다. | 정병욱

스테이너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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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콘텐츠 기획자, 하루키스트, Psychedelic rock. <중경삼림>의 영원한 팬. 읽고 듣고 보고 쓰는 것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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