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최장수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평가받는 <루팡 3세>. 만화가 ‘몽키 펀치’(카토 카즈히코)가 1967년부터 주간만화 <액션>에 연재를 시작하여, 1971년부터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극장과 TV에 상영할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서 익살스러운 코미디나 과장된 액션이 등장하는 결정적 장면마다 느긋한 재즈 음악이나 빠른 템포의 스윙 음악이 삽입되어 극적인 재미를 더했는데, 이제까지 모든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 사람이 바로 재즈 피아니스트 유지 오노(Yuji Ohno)다. 그는 두 번째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제작된 1977년부터 음악을 맡아 지금까지 약 1,200여 곡을 창작했는데, 모두 75편의 앨범이나 컴필레이션 음반에 수록될 만큼 양적으로 방대했다. 2021년 10월에는 <루팡 3세> 애니메이션의 50주기를 기념하여 대대적인 캠페인이 진행되었고,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집대성되어 그의 이름을 검색하여 쉽게 접할 수 있다.

유지 오노 <Café Relaxin’ Lupin>

우리에게 그의 명성이 칸노 요코(Kanno Yoko)나 히사이시 조(Hisaishi Joe)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루팡 3세>의 인기만큼 저명한 작곡가이자 애니메이션 음악가로 널리 알려졌다. 그의 지명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그의 음악의 뿌리가 팝보다 재즈에 두고 있어 대부분 성인 애니메이션의 음악을 맡았기 때문인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루팡 3세>의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재즈 바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간혹 그를 닮은 친근한 아저씨 이미지의 재즈 피아니스트가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삽입곡 모음

유지 오노는 일본의 휴양도시 아타미시(熱海市)에 있는 오오노야 호텔 창업자 가족의 일원으로, 어릴 적부터 여러 악기를 배웠고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재즈에 탐닉하였다. 명문 케이오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전공과는 상관없이 재즈 빅밴드에서 뮤지션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한동안 음악에서 손을 놓기도 했지만 1970년대부터 영화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코지 이시자카’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이누가미 일족>(1976)에 음악을 제공했는데, 영화와 함께 음악이 호평을 받으며 영화계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영화 <이누가미 일족>(1976) 주제곡

약 50여 편에 이르는 그의 영화음악 중 가장 호평을 받은 작품은 <루팡 3세>의 두 번째 시즌(1978~1980)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1979)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루팡 3세>의 메인 타이틀곡은 그의 작품을 대표하는 명곡으로, 크레용팝의 ‘꾸리스마스’(2013)의 전주곡 부분이 비슷하다는 표절 의심을 받아서 국내에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루팡 3세>는 이제까지 극장판 영화 11편, 애니메이션 시리즈 7 시즌이 제작되었고, 1989년부터 27편의 TV 영화가 꾸준히 제작되었는데, 그는 이제 80대의 고령이지만 여전히 음악을 전담하고 있다. 가장 근래에 제작되어 2020년 개봉작 <루팡 3세: 더 퍼스트>(2019)나 TV 애니메이션 <루팡 3> 파트 6에서도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다.

<루팡 3세> 주제곡 최신 라이브 버전(2021)

아쉽게도 <루팡 3세>의 대부분 작품이 국내에서 크게 흥행하지 못하여 작곡가 오노 유지의 명성 역시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초기에는 비디오로 반짝 발매했고, MBC에서 <칼리오스트로의 성> 더빙판이 방송된 적이 있으나, 늦은 밤에 방송되어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만화 전문채널 투니버스에서 연재되면서 조금씩 <루팡 3세>의 팬덤을 구축할 수 있었다. 넷플릭스에는 1989년부터 제작된 TV 영화 3편과 애니메이션 시리즈 4기(2015~2016) 24편, 5기(2018) 24편을 감상할 수 있으며, 아마존 프라임 TV에서 50주년 기념 최신작 영화 <루팡 3세 vs. 캣츠 아이>(2023)를 감상할 수 있다. <루팡 3세>를 창조한 만화가 카토 카즈히코(필명: 몽키 펀치)는 2019년 폐렴으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