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경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더 미러(The Mirror)라는 이름으로 다섯 곡의 싱글을 발표한 음악가다. 그러다 지난 해 2월 22일, 신해경이라는 이름으로 첫 EP <나의 가역반응>을 발표했다. 총 여섯 곡이 담긴 앨범은 겹겹이 쌓은 기타 노이즈와 극적인 구성, 쉽게 잊히지 않는 멜로디를 들려준다. 신해경은 이 한 장의 앨범으로 수많은 리스너의 마음을 훔쳤다. 당장 SNS만 들여다봐도 사람들이 그의 음악에 얼마나 빠져들었는지 알 수 있다. 그동안 베일에 둘러 쌓여 있던 그에게 궁금한 것도, 묻고 싶은 질문도 참 많았다. 제법 차가운 강바람이 불던 어느 저녁, 수많은 궁금증을 안고 마침내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앨범 <나의 가역반응>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워요. 2월 22일에 발매한 CD 초판은 2주 만에 모두 소진됐다고 들었어요. 소감이 어때요?

사실 전혀 예상을 못 했어요. 그전에도 대표님(영기획 하박국 대표)이 보내주는 반응들 말고는 크게 느끼지 않았는데요. 이번에 초판이 매진됐다고 했을 때 '아, 반응이 좋구나!' 싶었어요(웃음).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건 별로 없어요.

 

음반을 사고 듣는 이들이 저마다 SNS를 통해 인증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사람들이 해경 씨의 음악적 의도를 잘 파악한 것 같나요?

음악을 만들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겸손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저는 정말로 반응이 많이 없을 줄 알았어요. 그래서 엄청 의아했어요. 초반에 리뷰 글이 몇 개 있을 때 감사하다고 답변을 달아 드린 것도 진심으로 감사드려서 그랬어요. 이런 반응이 너무 의외였거든요.

 

전체적으로 어떤 분위기의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기본적으로 록 앨범을 만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근데 스스로 목소리 등이 타 록 보컬과 비교해 힘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터라, 그런 부분을 없애려고 혼자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까 리버브도 넣게 되고, 리버브를 넣다 보니 음악 성향이 좀 바뀌면서 슈게이징 음악에도 관심을 두게 되고. 이런 식으로 커져 나갔던 것 같아요.

 

 

신해경과 이상의 연결고리가 한두 개가 아니에요. 앨범명 <나의 가역반응>은 이상의 시 ‘이상한 가역반응’에서 빌려왔고, 신해경이란 이름도 이상의 본명인 김해경에서 따왔죠. 과거 활동할 때의 이름인 ‘더 미러’도 그렇고, 수록곡 ‘권태’도 이상이 쓴 수필 이름과 같아요. 신해경에게 이상은 어떤 존재인가요?

고등학교 때 이상 전집을 사서 읽었어요. 제가 ‘더 미러’라는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때가 2014년도 말인데, 이전부터 밴드 ‘이상의 날개’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문정민 선생님과 친분이 있었어요. 어느 날 그분 작업실에 놀러 갔는데, 제 음악을 들어 보시더니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겠냐고 하시는 거예요. 근데 일주일 전까지 이름을 못 정했어요.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이상 전집을 발견했고, 이상의 시 '거울'을 좋아해서 '더 미러'로 정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 온 거예요. 이상을 너무 좋아하니까 꼭 넣어야지 이런 건 아니었고, 그냥 ‘내 곡에 이런 부분을 도입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서 넣었어요.

 

앨범 명은 왜 <나의 가역반응>인가요?

이상의 시 중에 ‘이상한 가역반응’이 있어요. ‘가역반응’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인터넷으로 찾아봤더니 화학반응 중 하나더라고요. 가역반응을 아니까 '화학평형'이라는 단어도 알게 되고, 그러다가 문득 이런 단어를 감정에 대입해서 이야기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의외인 점이 있어요. '다나에'는 클림트의 작품이라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이상의 흔적이 가득하다가 갑자기 클림트가 등장했네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 중 하나에요. 거기서 ‘다나에’라는 여자가 등장해요. 아마 클림트도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다나에>를 그렸을 거예요. 아크리시우스 왕이 딸 다나에가 왕위를 위협한다고 해서 오랫동안 탑에 가둬 놔요. 처음부터 영감을 받은 건 아니지만, 가사를 쓰다 보니 '갇힘'이나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아마 다나에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서 붙였습니다.

 

 

<나의 가역반응>은 콘셉트 앨범으로 CD의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간격 없이 재생돼요. 그래서 한 곡을 길게 풀어놓은 느낌도 들고요. 이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나요?

<나의 가역반응>은 타이틀곡 '모두 주세요'가 계기가 되어 만든 앨범이에요. 저는 앨범에서 '모두 주세요'가 감정의 정점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야기의 앞뒤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나머지 곡을 구성했죠. 이어진다는 건 크게 의식 하지 않았고, 그냥 이 곡 다음에 이런 곡이 나오는 게 유연할 거 같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이런 방식으로 듣는 이가 어떤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계산할 능력은 안 되는 것 같고요(웃음). 뭐랄까, 좋은 진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예를 들어 음악적으로 어느 부분은 강해져야 하고 어느 부분은 빠져야 하고, 그런 부분을 많이 의식하면서 작업했어요.

 

곡이 저마다 극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어요. 점차 고조되다가 휘몰아치는 부분이 확실히 나누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한 곡 안에 여러 구성이 들어간 방식이 해경 씨만의 스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모두 주세요'는 더 미러 시절에 만든 곡이에요. 그때 ‘너의 살롱’과 ‘플루토’를 만들고 사람들 반응이 너무 없어서 제가 음악 하는 방식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타파할 만한 곡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작업한 기억이 나요. 수정도 많이 거쳤고요. 기승전결이 나뉘는 부분도 처음부터 여러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는데 막상 구현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어요.

 

 

앨범 전체를 볼 때 4번째 트랙 ‘잊었던 계절’이 살짝 튀는 감이 있어요. 사운드 구성도 단출하고 곡 길이도 가장 짧고요. 어떻게 만들게 된 곡인가요?

‘잊었던 계절’은 훨씬 예전에 만든 곡이에요. 멜로디를 가져와서 포크 형식으로 바꿨죠. 사실 저도 만들고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대표님께 먼저 앨범을 들려드렸을 때, "여섯 곡 밖에 안되니까 4번 트랙도 비슷한 스타일이어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이 곡이 제일 좋다고 하시는 거에요(웃음). 3번 트랙까지 곡의 기조가 비슷해서, 4번째 곡까지 비슷하면 사람들이 질릴 거라고. 그런가 싶어 자꾸 듣다 보니 어느 순간 저도 이 곡을 넣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가사가 무척 시적이에요. 가령 ‘차가운 내 몸에 그대는 세상 같아 네 품에 무너질래. 이렇게 흔들린 난 찾아온 애틋함에 온몸이 물들었네’('다나에') 같은 문장은 곡의 분위기를 더욱 아련하게 만들어요. 작사할 때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합니다.

1, 2번 트랙인 ‘권태’나 ‘몰락’은 ‘모두 주세요’에 맞춰서 썼어요. 분위기에 맞춰 시간이 진행되는 형식으로요. 보통은 가사를 쓸 때 흥얼거리다가 몇몇 단어가 나오면 그 단어를 확장해서 가사를 써요.

 

본래 이 앨범은 2016년 7월에 발매를 목표로 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앨범 완성도 문제나 개인적인 일들이 겹쳐 반년이 더 지난 후에야 나왔죠. 어떤 부분이 어려워서 이렇게 늦춰지게 됐나요?

제가 작년 6월에 하박국 대표님을 만났어요. 그때 다 완성된 트랙이 '몰락', '다나에', '화학평형'이었어요. '잊었던 계절'은 원래 단출하게 갈 생각이었으니까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고, ‘권태’는 지금보다 더 힘을 많이 줘서 만들려고 했어요. 이후 대표님과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많이 바꿨죠. 전체적으로 제가 생각한 것보다 앨범 완성도가 낮게 느껴져서 후반에 공을 더 들이느라 늦어졌어요.

 

 

모든 곡을 혼자 만들고 연주하고 믹싱했다고 들었어요. ‘원맨(1인) 밴드’로 작업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팀을 일궈서 하는 일이 더 힘들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주도적으로 하는 일이 무척 재미있어요. 앨범을 준비하면서 힘든 점은 딱히 없었지만, 대신 자기확신이 안 들었어요. 악기를 백 퍼센트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드럼이나 베이스, 믹싱, 보컬을 구현하는데 오랫동안 확신이 안 섰어요. 그래서 시간이 더 걸렸죠. 아, 제가 실제로 연주한 악기는 기타에요. 다른 악기는 미디로 만들었고요.

 

편곡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바뀐 곡이 있다면요?

‘다나에’요. 원래 이 곡을 4번 트랙으로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이상하게 마무리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해봐야겠다.' 생각하고 코러스 부분을 많이 수정했어요.

 

신해경 <나의 가역반응> 앨범 커버

 

이강혁 사진가의 작품이 앨범 전체에 실렸어요. 신해경의 음악과 한 몸처럼 잘 어울리는데, 어떤 기준에서 사진을 골랐나요?

아, 안 그래도 오늘 인터뷰 사진을 찍어 주신다길래 너무 반가웠어요. 사실 앨범을 만들 때 앨범 자켓에는 크게 신경을 못 썼어요. 하박국 대표님, 장우석 디자이너, 이강혁 작가님이 회의를 하고 컨셉을 잡았는데요. 이강혁 작가님이 어두우면서 다홍색 색감이 들어간 사진을 많이 골라 주셨어요. 저도 마음에 들었고요. 사실 작가님의 다른 사진도 다 마음에 들어서 어떤 사진을 써도 괜찮았을 거 같아요.  

 

'모두 주세요' 뮤직비디오는 앨범 자켓과 다른 분위기를 풍겨요. 해경 씨가 뮤직비디오에 따로 관여한 부분이 있나요?

처음에 제게 어떤 영상을 만들고 싶냐고 물으셨을 때, 이와의 슌지 감독의 <언두>(1994)가 떠올랐어요. 고등학교 때 봐서 기억이 흐릿하지만, 영화에서 주인공인 두 사람이 되게 강박적인 사랑을 해요. 사랑하면서 무척 힘들어하는데, 그게 ‘모두 주세요’ 이야기와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부분을 최승윤 배우님, 정용 감독님과 스태프분들이 잘 살려주셨어요. 이와이 슌지 감독이 역광을 잘 사용하기로 유명한데, ‘모두 주세요’ 뮤직비디오도 역광을 잘 이용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신해경 ‘모두 주세요’ MV

 


‘더 미러’ 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곡도 들어봤어요.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훨씬 실험적이고 전자 사운드가 강해요. 이렇게 바뀐 계기가 있나요?

‘모두 주세요’를 만들면서 음악성이 많이 변했다고 해야 할까요? 원래는 군대를 전역하고 샘플링이 많이 들어간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샘플링을 모으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고, 이용하는 과정도 쉽지 않은 거예요. 어느 순간 샘플링을 넣는게 과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샘플링을 빼는 대신 근본적으로 편곡이나 작곡에 집중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모두 주세요’를 계기로 편곡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됐어요.

 

앨범을 들으면서 해경 씨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과생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실제로 신해경은 어떤 사람인가요?

우선 저는 문과생이고요(웃음). 성격은 소심한 편에 속해요. 그래서 사운드에 더 집착하는 것 같아요. 또, 생각할 때는 감성보다 이성적인 부분이 강해요. 주변에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나머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 그리고 제가 검수를 많이 해요. 숫자도 한번 센 걸 다시 한 번 더 세고(웃음). 그런 성격이에요.

 

언제부터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나요?

중학교 때 갑자기 기타가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기타를 배웠는데 잘 치지는 못하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배우면서 ‘곡을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기타로 작곡을 많이 했어요. 나중에는 음악을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고3 때 미디라는 걸 배우게 됐고요. 그때부터 이제 혼자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싹트게 됐어요.

 

신해경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음악가는 누구인가요?

좋아하는 음악가가 무척 많지만, <나의 가역반응>에 영향을 준 음악가를 뽑자면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이나 마이 블러드 발렌타인. 또 비치 보이즈 음악을 듣고 아, 이렇게 허밍을 사용할 수도 있구나! 생각했어요. 제 노래에도 허밍이 많이 들어가거든요.

 

국내 가수는요?

김현철, 유재하, 김수철 선생님을 좋아해요. 사실 누구 한 명을 엄청 좋아하면 종일 그분 음악을 듣고, 그러다 2주 정도 지나면 다른 분 음악을 좋아하고, 이런 식이에요. 하지만 그중에서도 김현철 1집은 정말 많이 듣고 좋아했죠.  

 

 

으레 인디 뮤지션은 홍대 인근 공연장에서 경험을 많이 쌓는데, 해경 씨의 행보는 남달라요. 무대에 서기보다 돌연 앨범으로 본인을 알린 이유가 있나요?

제가 음악을 한 계기는 앨범을 사면서부터예요. 라이브 공연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도 해야지’라는 생각은 못 했어요. 앨범 단위로 뮤지션을 접하고, 들으면서 존경하게 됐으니까요. 근데 최근에 <나의 가역반응> 앨범을 내면서 라이브 공연을 말씀하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책임감이 많이 생겼어요. 공연에 오시면 실망하시지 않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일렉트로닉 음악을 주로 발매하는 영기획(YOUNG GIFTED&WACK) 소속이라는 사실이 뜻밖이에요. 소속 아티스트 가운데 훗날 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저는 영기획 뮤지션들 다 좋아해요. 그중에서도 ‘사람12사람’을 특히 좋아해요. 사실 협업을 하기엔 그분들에 비해 제가 훨씬 못하고요. 훗날 협업을 하게 된다면 어떤 뮤지션이든 영광일 것 같아요. 저는 포크 같은 분야에도 관심이 많고, 하드한 록 사운드에도 관심이 있는데, 제가 구현하기 힘든 부분이 많으니까 그런 걸 배우고 싶어요.

 

추후 계획은요?

일단 앨범을 사 주신 분들, 노래를 들어 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꼭 써주세요(웃음). 그분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라이브를 잘 준비하는 게 첫 번째고, 다음으로는 정규 1집 앨범을 잘 만들고 싶어요. <나의 가역반응>을 내면서 제가 하고 싶었는데 못한 것들이 꽤 있어요. 그런 부분을 1집에서 풀어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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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이재

사진 이강혁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