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회귀(Recurrence), 환생(Reincarnation), 빙의(Possession)는 이제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재가 되었다. 웹툰 원작의 인기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현우’가 ‘도준’으로 환생했듯이 최근 웹툰이나 웹소설의 로맨틱 판타지 장르에 자주 등장하면서 ‘회빙환’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과거로 돌아가거나, 다른 사람 몸에 내 혼을 덧씌우거나, 아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남으로써, 현실의 팍팍한 삶을 잠시나마 벗어나기를 원하는 세태를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회귀와 환생, 그리고 빙의를 주요 소재로 삼은 대표 영화 다섯 편에 대해 알아보았다.

 

<피터 프라우드의 환생>(1975)

1973년에 출간한 엘리히(Max Ehrlich)의 동명 미스터리 소설을 바탕으로, 대학교수 ‘피터 프라우드’가 자신의 악몽에 자세히 묘사되는 전생을 파헤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나바론의 요새>(1961), <케이프 피어>(1962), <혹성탈출>(1972)로 유명한 명감독 J. 리 톰슨(J. Lee Thompson) 감독이 맡았지만, 스토리라인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따분하다며 평가가 좋지 않았다. 원래 TV 방송용으로 제작된 영화지만, 영화관에도 제한적으로 상영되어 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선방했다. 원작의 힘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에 따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설이 꾸준히 제기되었으며, 2021년에 영화사 빌리지 로드쇼가 시나리오를 다시 쓰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영화 <피터 프라우드의 환생>(1975) 전편

 

<천국의 사도>(Heaven Can Wait, 1978)

유쾌한 스포츠 판타지 코미디 장르의 영화다. 평소에 동양적인 신비주의와 환생을 열심히 추종했던 배우 워렌 비티(Warren Beatty)가 기획하고 감독과 주연까지 맡았다. 슈퍼볼 우승을 꿈꾸던 미식축구 선수가 저승사자의 실수로 하늘로 올라갔다가, 원래의 몸이 화장되자 부득불 다른 사람의 몸으로 환생하면서 일어나는 유쾌한 이야기를 담았다. 백만장자로 다시 태어난 그는 슈퍼볼 우승을 위해 자신이 속했던 미식축구팀을 사들이고 몸을 만들어 쿼터백으로 경기에 출전한다. 제작비 600만 달러로 만든 저예산 영화였으나, 로튼토마토 87%의 호평을 받았고 박스오피스 수입은 1억 달러에 근접하였다. 아카데미 9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골든글러브 3관왕 및 새턴 어워즈 4관왕에 올랐다.

영화 <천국의 사도>(1978) 예고편

 

<환생>(Dead Again, 1991)

남자와 여자의 얼굴이 겹쳐 보여 마치 심리학 테스트 같은 포스터로 유명한 네오 느와르 장르의 영화다. 셰익스피어 연극을 영화로 제작하던 케네스 브래너(Kenneth Branagh) 감독의 첫 일반 영화로 감독과 연기를 겸했고, 엠마 톰슨이 그의 상대역을 맡았다. 부부간 치정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환생한 두 사람이 45년이 지나 기억상실증 환자와 사립탐정으로 다시 만나 자신들의 전생과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아 나선다는 미스터리물이다. 과거 장면은 흑백 화면으로 처리하여 이야기 진행 상의 혼돈을 줄였다. 로튼토마토 82%를 받는 등 탄탄한 스토리와 짜임새 있는 영화로 평이 전반적으로 좋았고, 극장에서도 선전하여 미국에서만 3,8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영화 <환생>(Dead Again) 예고편

 

<탄생>(Birth, 2004)

죽은 남편이 10살 나이의 어린이로 환생하여 재혼 직전에 나타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상업광고와 뮤직비디오로 유명한 조나단 글레이저(Jonathan Glazer)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로, 그의 전작 <섹시 비스트>(2000)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니콜 키드먼이 주인공 ‘애나’로 출연하고 싶다고 요청하였고, 짧은 헤어스타일로 바꾼 미망인을 연기하였다. 이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후 열띤 환호를 받았지만, 결국 평가는 양극단으로 나뉘었다. 더군다나 니콜 키드먼이 아역 배우와 키스를 하거나 함께 목욕하는 장면에서 아동에 대한 성 학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평론가들의 평은 그리 좋지 않았고, 극장 수입은 제작비 2,000만 달러를 간신히 넘어서는데 그쳤다.

영화 <탄생>(2004) 예고편

 

<천년을 흐르는 사랑>(The Fountain, 2006)

대런 애러노프스키(Darren Aronofsky) 감독이 30대에 접어들어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이 다가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기획을 시작한 문제작이다. 과거, 현재, 미래 시제의 세 가지 스토리라인을 매치 컷 방식으로 구성하여, 마치 시공간을 넘나들며 연인의 환생을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스페인의 정복자, 마야의 종교, 생명 과학, 우주 여행 등 난해하고 복잡한 구성 요소를 모아 놓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컬트 영화가 되었다. 원래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을 캐스팅하여 7,000만 달러 제작비 규모를 생각하였으나,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자 휴 잭맨과 레이첼 와이즈로 대신하고 시나리오를 축소 조정하여 예산의 절반에 맞추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10분간 기립박수를 받았으나, 결국 박스오피스에서 제작비의 반 정도 건진 흥행 실패작이 되었다.

영화 <천년을 흐르는 사랑>(The Fountain)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