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플래쉬>(2014)와 <라라랜드>(2016)의 흥행으로 인기 감독의 반열에 오른 데미언 셔젤 감독의 신작 <바빌론>이 개봉되었다. 재즈 드러머의 꿈을 포기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던 그의 데뷔 영화 <위플래쉬>가 놀랍게도 아카데미 3관왕에 올랐고, 이를 발판으로 3천만 달러의 투자비를 모아 제작한 <라라랜드>는 무려 4억 7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초대박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로는 아카데미 6관왕, 골든글러브 7관왕을 안아,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를 모두 석권한 가장 젊은 감독으로 기록되었다. 대단한 실적을 보인 셔젤 감독이 6년 만에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맡은 신작이 새로 개봉하게 되니 세간의 관심이 집중될 만할 것이다. 그의 대학교 룸메이트였던 단짝 친구였던 저스틴 허위츠 음악감독 역시 <위플래쉬>와 <라라랜드>에 이어 자신의 오리지널 작곡으로 모든 트랙을 채웠다. 북미 시장에서는 12월 23일 개봉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내년 2월에 개봉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영화 <바빌론>(2023) 예고편

 

광란의 20년대, 할리우드

관람객으로 가득한 할리우드 차이니즈 극장 앞(1927)

미국의 1920년대 시절을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 부른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제조업, 특히 소비재 부문이 크게 성장했고, 예술과 문화 산업이 융성하여 음악적으로는 스윙 재즈가 번성한 시기다. 할리우드에서는 무성영화 시절이 끝나가고 ‘토키’(Talkie)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유성 영화가 막 시작하여,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영화 제작자와 배우들 사이의 스캔들이 무성했던 시절이다. 실험적인 단편영화를 제작하던 케네스 앵거(Kenneth Anger) 감독은 20세기 전반의 할리우드에 돌아다니던 가십이나 소문을 모아 <할리우드 바빌론>(1965)이란 책을 냈는데, 여기에는 찰리 채플린부터 마릴린 먼로까지 스타들의 은밀한 사생활이나 스캔들을 모두 망라했다. 데미언 셔젤은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 <바빌론>의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그는 1920년대 말 혼돈의 할리우드에서 사랑과 야망을 쫓던 수많은 캐릭터를 만들어냈는데, 실존 인물들을 참고하여 가공한 가상의 캐릭터는 물론, 실명으로 묘사한 캐릭터가 뒤섞여 있다.

비공식 ‘Nice’ 트레일러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캐릭터들

이 영화의 투탑은 그 시절의 할리우드 배우 역을 맡은 마고 로비(Margot Robbie)와 브래드 피트다. 셔젤 감독은 여우 주연으로 <라라랜드>에서 함께 했던 엠마 스톤과 협의를 시작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자 호주 배우 마고 로비로 최종 확정하였다. 일찌감치 출연을 결정한 브래드 피트의 ‘잭 콘라드’ 역은, 혼돈의 할리우드 시절에 배우와 감독으로 활약했던 존 길버트(John Gilbert)를 바탕으로 했다. 그는 1백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무성영화 시절의 대표적인 스타였으나, 유성 영화(Talkies)로 전환하는 시기에 입지가 점차 줄어들어 무대 뒤로 사라진 대표적인 케이스다. 마고 로비가 맡은 ‘넬리 라로이’ 캐릭터는 클라라 보(Clara Bow)와 조앤 크로포드(Joan Crawford)에서 영감을 받은 인물이다. 두 배우 모두 무성영화의 스타였고, 두 사람 모두 유성영화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배우로 평가된다. 클라라 보는 발랄한 매력을 가진 여성으로, 조앤 크로포드는 강인한 삶을 개척하는 여장부 이미지로 성공하였다. 할리우드 제작자 어빙 솔버그(Irving Thalberg)와 중국계 배우 제임스 웡 하우(James Wong Howe)는 모두 실존했던 할리우드 실력자들이다.

마고 로비 출연 장면

 

저스틴 허위츠의 스윙 음악

이 영화 역시 데미언 셔젤 감독과 다섯 번째 협업 파트너인 저스틴 허위츠의 영화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허위츠 음악감독은 1920년대 “재즈의 시대” 음악을 만들고 녹음하는데 3년이라는 긴 시간의 공을 들였다. 여기에는 당시 광란의 파티와 댄스 플로어가 연상되는 템포 빠른 스윙 음악을 포함하고 있는데, 당시의 스윙 악기로 현대적인 록과 댄스 음악을 표현했다는 평가가 있다. 사운드트랙 음반은 영화 개봉 2주 전인 12월 9일에 발매되었는데, 모두 48개 트랙이 1시간 30여 분의 분량에 담겨있다. 그 중 ‘Call Me Manny’와 ‘Voodoo Mama’와 같이 경쾌한 드럼 소리의 스윙 음악은 싱글로 발매되어 평론가들의 호평을 끌어냈다. 시카고 필름 크리틱 협회의 ‘오리지널 스코어’ 수상자로 이미 발표된 바 있고, 그 외에도 많은 영화제의 후보로 올라있어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음반사 인터스코프 레코드가 전체 트랙을 유튜브에 올려놓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영화 <바빌론>의 OST ‘Call Me Man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