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더 이상 하나의 유기체가 아니다. 우리의 신체는 스마트폰, 실리콘, 피어싱, 약물 등 온갖 외부 물질과 뒤섞여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고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변화시켜왔다. 외부와 내부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변화하는 인체는 이미 그 자체로 사이보그다. 큐레이터 예뻬 우겔비그(Jeppe Ugelvig)가 기획한 국제 그룹 전시 <메모리 오브 립 Memory of Rib>은 인간의 새로운 신체 감각을 '형태학적인 시'로 그려낸다. '형태학적인 시'란 신체에 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보다 신체와 접선적으로 유사하거나 신체를 상기시키는 것들을 통해서 몸을 표현했다는 의미다. 전시는 을지로 소재 전시 공간 N/A에서 11월 25일부터 오늘 1월 4일까지 진행된다. 총 10명의 국내외 작가가 참여했다.

2층 전시장 전경, 모든 이미지 출처 - N/A 제공

 

피부와 외부

을지로4가 골목에 위치한 작은 철문을 열고 좁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2층 전시장이 펼쳐진다. 전시장은 큰 창이 두 개 뚫린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방으로 나뉜다. 입구 계단과 바로 연결된 바깥쪽 방에서는 주로 '피부'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유성의 <Vita-more Note>(2020)는 나무판 위에 들꽃과 강아지, 창문, 빛, 캐릭터 등을 새겨넣은 평면 조각이다. 작가가 2018년에 트랜스휴머니즘 디자이너 나타샤 비타모어(Natasha Vita-More)의 스토리를 접한 것이 이 작업의 제작 계기였다. 비타모어는 젊은 시절 커다란 사고로 죽음의 위기를 직면하게 된 이후 과학기술을 통해 수명을 연장하고 신체의 능력을 강화하여 인간의 취약성을 극복하려고 해왔다. 비타모어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인체 강화를 꿈꿔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이유성은 트랜스휴머니즘이 단순히 "기술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경험과 감정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에 인간의 피부 결과 흡사하다고 여긴 나뭇결 위에 반려견 타니, 시들어가는 들꽃 등 자신의 주변에서 발견한 "취약하고 일시적인 것들"을 문신처럼 새겨넣기로 한다. 조각이 나무를 변형시키듯 문신도 신체를 변형시킨다. 피부에 그림이나 문장을 새겨넣음으로써 인체를 디자인하고 그것에 새로운 (때로는 강한) 느낌을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성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나무의 저항을 계속 느꼈다고 밝힌다. 나무와 마찬가지로 피부도 문신이라는 인체 디자인 작업에 얼마간 저항한다 — 문신을 새기는 일은 단순히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일과는 다르다. 인체에서 가장 연약한 조직 중 하나인 피부도 이미 그 자체로 저항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연약함 안에는 사실 강인함 역시 포함되어 있다. 작품 중앙부에 적힌 "What if your body ... was as sleek, as sexy and felt as comfortable as your new automobile?(당신의 신체가 새 자동차처럼 매끄럽고 섹시하며 편안하게 느껴진다면?)"이라는 문구는 비타모어의 인체 디자인 프로젝트 홍보 문구다. 인체는 과학기술을 통해 강화된다고 할지라도 그 취약성과 필멸성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꼭 약함의 증거인 것만은 아닐 테다.

3층 전시장 전경. 잭 오브라이언과 재클린 키요미 고르크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유성의 작품 옆에 걸린 티샨 수(Tishan Hsu)의 <grass-screen-skin: zoom>(2022) 또한 피부에 관해 말한다. MIT 환경 디자인 및 건축 전공자이자 비전 예술가인 티샨 수는 1980년대 중반부터 기술 변화를 통한 인간의 신체 및 인지 감각 변화를 추적해왔다. <grass-screen-skin: zoom>은 원래 더 규모가 큰 작품인데, 이번에는 일부가 크롭된 상태로 전시되었다. 직사각형 캔버스 위에는 구멍이 보일 정도로 확대된 스크린과 녹색 풀 그리고 인체 이미지가 겹쳐 배치되어 있다. 확대된 스크린은 화면 전체에 일렁이는 형태로 깔려있고 그 위를 푸른 잔디가 뒤덮고 있다. 상단부에는 인간의 귀 이미지와 엑스레이로 촬영한 인간의 팔뼈 사진이 포개져 있고, 하단부 쪽에서는 핏자국이 묻은 인간의 피부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확대된 스크린 구멍은 인간의 모공과 식물 재배용 유공 멀칭 비닐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풀, 기계, 인간은 구멍을 통해 서로에게 틈입하며 하나의 하이브리드 '스킨'을 형성한다.

(앞) 이유성, ‘Dandelion Acceleration’(2020), Wood, Aluminum, Fabric, 50x102x60cm, (뒤) 한선우, ‘Silent Companion’(2022), Acrylic on canvas, 290x198x 4cm(two panels -198x145x4 cm each)

그 옆에는 한선우의 회화 <Silent Companion>(2022)이 배치되어 있다. 한선우는 그간 인터넷상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하나의 '신체'로 취급하고, 회화를 통해 이를 변조시키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신체의 모습을 제시해왔다. 전시된 그림 전경에서는 남근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이는 양초가 힘없이 녹아내리고 있다. 하지만 금속 보철로 지탱되어 그 형태는 근근이 유지되고 있다. 작가는 중세 시대 갑옷과 무기, 보철물의 역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말한다. 강화하려는 욕망 저면에 깔린 가학성과 신체의 연약한 부분을 이와 같은 '폭력'에 노출시키는 피학성이 서로 교차하며, 기계를 통해 증강된 신체 내부에 잔존하고 있는 연약함이 드러나게 된다. 작가는 이전 작업에서는 주로 에어브러시를 사용해 매끄러운 표면을 선보여왔지만, 이번 작업에서는 유난히 붓 자국이 많이 보인다. 손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신체성을 강조한 것으로 추측된다.

 

사이에 놓인 것

제스 베이지(Jess Beige) <Mutual homes, many pieces, emotions>(2022) 연작은 바깥쪽 방과 안쪽 방에 각각 하나씩, 그리고 두 방 사이에 놓인 커다란 창틀 두 개에 하나씩 배치되어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관람자는 그의 작품을 통해 바깥쪽 방에서 안쪽 방으로 인도되며 서서히 신체 내부의 기억으로 다가가게 된다. 제스 베이지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자랐으며 지금은 영국을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출신 작가다. 전시된 작품은 인조 모피, 금속, 플라스틱 등 서로 다른 질감과 형태를 지닌 물질들을 연합해 새로운 형태를 이루도록 한 조각 작업이다. 각각의 물질은 여러 문화를 동시에 경험하며 성장한 작가의 기억 등을 담고 있으며, 서로 연결된 상태로 고정되지 않았기에 쉽게 분리된다. 예를 들어 조롱박, 솜, 콘 몰드, 스타킹, 나무판 등이 조합돼 남성의 성기 형상을 이루기도 하고, 인조 모피로 덮인 지붕 모양 판자와 알루미늄 포일로 감긴 듯한 칼 형태의 사물, 두 개의 검정 원뿔은 여성의 상반신을 떠올리도록 하기도 한다. 옛것과 새로운 것,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이 만나 새로운 형태를 만들고 새로운 감정을 자아낸다. 여기서 느껴지는 것은 작가의 개인적인 감정에 관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를 조우하며 자신의 내밀한 기억을 끄집어내게 될 관람자 자신의 감정일 수도 있다. 이 작업은 매개의 기능을 하며 기억을 통해 형성되는 일련의 감정들을 집단적인 무언가로 변환시킨다. 마치 한글처럼 서로 다른 요소들이 조합되어 새로운 형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언어는 서로에게 전적인 타자인 우리를 연결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이 작품을 조우하는 순간만큼은 그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로 함께 존재하게 된다.

3층 전시장 전경, (앞) 제스 베이지, ‘Mutual homes, many pieces, emotions’(2020), drying clay, glass, haircomb, paper, 30x9x9 츠, (뒤) 한선우, ‘Baggage,’(2022), acrylic on canvas, 182 x 142 x 4 cm.

 

내부의 기억

안쪽 방으로 들어가면 차학경의 영상 <입에서 입으로 Mouth to Mouth>(1975)를 볼 수 있다. 차학경도 제스 베이지처럼 12세에 미국으로 이민한 한국계 미국 작가다. <입에서 입으로>는 신체에 각인되어 있지만 발화되지 못한 모국어의 흔적을 소환한다. 영상은 'mouth to mouth'라는 영어 제목과 여덟 개의 한글 모음이 패닝으로 지나가며 시작된다. 그다음에는 한글 모음을 발음하는 입 모양이 클로즈업으로 재생되는데, 목소리는 지워져 있고 그 위에 노이즈와 같은 물소리가 덧입힌다. 물비늘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노이즈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미지에 덮여 입은 흐릿하게 보인다. 'ㅇ'이 포함된 모음을 발음하는 둥근 입 모양은 때때로 블랙홀 같아 보이기도 하며 그 속으로 노이즈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인상도 준다. 모국어로 발화되어야 했지만 영어 시스템에 들어맞지 않아 억압되어야 했던 어떤 욕망들이 신체에 의해 기억되고 또 소환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옆에 걸린 레이나 스기하라(Reina Sugihara)의 회화 <Memory of Rib>(2022) 역시 신체 내부의 기억에 관해 다루는 작품이다. 전시의 제목이 되기도 한 해당 작품은 한편으로는 갈비뼈 같아 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의 생식기 같아 보이기도 한다 — 작가는 이 그림을 어떤 방향으로 걸어도 상관없다고 밝혔다. 인간 뼈의 해부학적 이미지를 관찰한 뒤 그려낸 작업으로, 중앙에 놓인 자그마한 원형 형상을 중심으로 수많은 색과 결들이 겹친다. 우겔비그는 아트포럼에 실린 글에서 이 작품이 "신체의 형태보다는 신체 감각의 흐릿한 기억을 상기시킨다"라고 언급했다.[1] 실제로 이 작업은 신체 저면에 깊숙이 박혀 있는 감각의 기억들이 겹겹이 쌓여 응축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스기하라의 작품은 창 하나를 경계로 티샨 수의 작품과 마주 보고 있기도 하다. 티샨 수가 하이브리드화된 피부의 겉면을 다룬다면, 스기하라는 비가시적인 영역에 깊이 각인된 피부 자체의 기억을 다루는 듯하다.

2층 전시장 전경, 정면에 레이나 스기하라의 ‘Memory of Rib’(2022)가 보인다.

이후 3층으로 이어지는 전시장에서는 자전적 스토리를 바디호러적으로 풀어낸 조던 스트레이퍼(Jordan Strafer) 비디오 <SOS>(2021), 리넬라 알폰소(Rinella Alfonso)의 피부화된 캔버스 <TBA>(2022) 연작, 화이트셔츠와 와인병을 결합해 후기자본주의적 욕망의 풍경을 그려낸 잭 오브라이언(Jack O'Brien)의 조각 <No you're not>(2022), 소리를 담고 있는 재클린 키요미 고르크(Jacqueline Kiyomi Gork)의 <Noise Blanket No.5>(2017) 등 국내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우겔비그의 전시는 동시대 사회에서 인간이 자기 몸을 지각하고 또 몸을 통해 감각하는 방식을 그려낸다. 관람자는 이를 통해 신체가 재현되고 인식되는 지배적인 틀에 포함되지 않은 신체의 나머지 부분을 기억함으로써, 그 틀에 저항할 수 있는 정치적 가능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

3층 전시장 전경, 조던 스트레이퍼의 영상 <SOS>(2021)과 이유성의 ‘Pierce’(2019)가 보인다.

 

참고자료

“Spiraling cuts and lines (some faded, some fresh) dissect fields of pale silky pinks and yellows, orbiting around a darker yonic core and evoking not the figure of a body but rather a hazy memory of its sensations.", Jeppe Ugelvig, "Reina Suigihara - MISAKO & ROSEN", Artforum (2022), vol.61, no.2. 12월 31일 접속 -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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