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빌리지 뱅가드에서 스콧 라파로(좌), 빌 에반스(중), 폴 모션(우)

촉망받는 재즈 피아니스트로 평론가들의 관심을 받던 빌 에반스가 뉴욕의 재즈 클럽을 순회하며 연주를 하던 1959년, 인근에서 연주하던 스콧 라파로(Scott LaFaro)의 방문을 받았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가장 주목받는 베이시스트로 부상했고 마일스 데이비스나 스탄 게츠 같은 거물들의 구애를 받던 그가 돌연 나타나 재즈 트리오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드러머로는 에반스가 데뷔 앨범에서 함께 연주한 적이 있는 폴 모션(Paul Motian)을 추천했다. 그렇지 않아도 빌 에반스의 음반사 리버사이드(Riverside)의 오린 키프뉴스(Orrin Keepnews) 대표가 그에게 새로운 트리오를 구성할 것을 권유하였지만, 에반스는 새롭게 내놓을 것이 없다며 주저하고 있었다. 이제 새로 구성된 빌 에반스 트리오는, 이전과는 달리 ‘반주’라는 개념을 탈피하고 피아노, 베이스, 드럼이 동등한 비율로 구성되는 새로운 음악을 추구했다. 그 결과 트리오의 스튜디오 앨범 <Portrait in Jazz>(1960), <Explorations>(1961)은 별점 다섯을 채우며, 지금까지도 역대 최상의 피아노 트리오로 평가되고 있다.

Bill Evans Trio ‘Gloria’s Step’. 스콧 라파로의 오리지널로, 댄서인 여자친구 글로리아가 아파트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다.

최고의 트리오로 주가를 올리던 빌 에반스 트리오는 재즈 클럽 빌리지 뱅가드(Village Vanguard)의 초빙을 받아 2주 동안 공연하였는데, 리버사이드는 마지막 날 공연을 모두 녹음하여 실황 앨범을 내기로 하였다. 일요일이던 1961년 6월 25일 약 15분씩 다섯 차례 세션의 공연을 모두 녹음하였고, 스콧 라파로는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6월 30일~7월 2일)에서 스탄 게츠의 밴드에 일시 조인하기 위해 떠났다. 하지만 그는 뉴포트 공연을 끝내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20번 국도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것이다. 사고가 난 날은 7월 6일, 빌리지 뱅가드에서 공연을 한지 열흘 후였고, 스콧 라파로의 나이는 불과 25세였다. 사고 소식을 들은 빌 에반스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여 식음을 전폐하였고, 모든 공연 일정은 취소되었다. 여린 감성의 에반스는 집에 칩거하면서 피아노에 앉아 ‘I Love You Porgy’의 멜로디 만을 연주하였다고 한다. 이 곡은 빌리지 뱅가드에서의 스콧과 함께 연주했던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Bill Evans Trio ‘I Love You Porgy’(빌리지 뱅가드 실황)

스콧 라파로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리버사이드는 6월 25일에 녹음한 실황을 추모 앨범으로 수정하여 다시 기획했다. 그가 작곡한 오리지널 ‘Gloria’s Step’, ‘Jade Visions’을 처음과 끝에 배치하고, 거슈윈의 아리아 추모곡 ‘My Man’s Gone Now’을 두번째 트랙에 배치하고, 그의 베이스 솔로가 두드러진 곡들을 추가로 선정하였다. 앨범의 표지에는 “Featuring Scott La Faro”라는 부제를 달았고, 그가 사고를 당한 지 3개월 만인 10월 초에 서둘러 앨범 <Sunday at the Village>(1961)을 출반하였다. 이듬 해 2월에는 추가로 여섯 곡을 골라 두번째 실황 음반 <Waltz for Debby>(1962)를 출반하였다. 이 두 장의 실황 음반은 재즈 최고의 실황 음반으로 자주 분류되는 명반이다. 1980년 빌 에반스가 사망한 후에는 이 날 녹음된 곡들 중 미발표된 곡들을 모아 세번째로 LP <More From the Vanguard>(1984)가 출반되었고, 1987년 <Bill Evans: The Complete Riverside Recordings>란 제목의 박스세트에 12장의 CD에 담겨 출반되었다.

<Bill Evans: The Complete Riverside Recordings>(1961)

언젠가 최고의 재즈 뮤지션이 될 것이라는 평론가들의 전망에도 불구하고, 빌 에반스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엄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앞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밴드에서 나온 후 병든 아버지와 가족들과 함께 플로리다에 머물면서 연주 상의 돌파구를 찾아, 뉴욕으로 다시 돌아가 낸 앨범이 두번째 <Everybody Digs Bill Evans>(1958)이다. 이 앨범을 들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다시 그를 불러들여 역작 <Kind of Blue>(1959)에 참여시킨 것이다. 새로운 피아노 트리오를 구성하여 앨범을 내자는 ‘리버사이드’의 권유에 응하지 못하던 그가 스콧 라파로를 만나면서 그는 다시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최강의 피아노 트리오는 2년을 존속하지 못하고 단 네 장의 명반을 세상에 남긴 채 끝났다. 그와 너무나 잘 맞았고 음악적인 전환점이 된 동료를 잃고 실의에 빠졌던 에반스는 1년 넘게 은둔 생활을 한 끝에 새로운 베이시스트 척 이스라엘스(Chuck Israels)을 만나면서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스콧 라파로(1936~1961)